공영홈쇼핑이 국내 생산 제품만 팔겠다는 '메이드 인 코리아' 선언식을 가진 1일 납품 중소기업들은 패닉에 빠졌다. 언론을 통해 갑작스레 이 소식을 접한 중소기업 임직원들은 "이런 일이 어디 있느냐"며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인건비 문제로 중국·베트남·미얀마 등에서 주문자상표부착방식(OEM) 생산을 해온 중소 의류·전자기기·주방용품 업체들이 이번 결정으로 주력 제품 퇴출 위기에 놓였다는 것이다.

1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디지털큐브에 있는 공영홈쇼핑 사무실. 중소기업 전용 홈쇼핑 채널인 공영홈쇼핑은 이날‘메이드 인 코리아’선언식을 열고 100% 국내 생산 제품만 판매하겠다고 밝혔다. 해외 생산을 해오던 국내 중소기업들은 반발하고 있다.

선풍기 등 생활 가전제품 전문 기업인 대웅의 강곤 회장은 "어떠한 사전 통보도 없었다"며 "아무리 수퍼갑(甲)이라도 너무하다"고 했다. 그는 "인건비가 너무 올라 국내 생산이 어려운 지금 이런 조치를 하면 살아남을 중소기업이 없다"며 "국내 중소기업을 보호하자며 만들어진 공영홈쇼핑이 정작 중소기업 현실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대웅은 선풍기, 전기 주전자, 냉풍기를 중국 업체에서 OEM을 통해 만들어 국내에서 판매하는 업체다. 현재 대웅의 중국 OEM 선풍기 생산 단가는 1만7000~1만8000원 정도지만, 국내 생산을 할 경우 3만8000원 선으로 2배 이상 뛴다. 브랜드에서 뒤지는 중소기업으로서는 국내 생산을 선택하기 어려운 것이다.

◇중기 현실과 동떨어진 일방적인 발표

온매트·냉풍기 등을 중국에서 생산해 들여오는 한 가전 업체 임원은 "우리 제품은 중국 OEM이라고는 해도 기획부터 디자인까지 모두 국내에서 했다"며 "소비자가 원하는 가격에 만들려면 해외 생산밖에 없는데 이런 점은 생각하지도 않은 것 같다"며 억울해했다. 이 업체는 전체 매출의 약 10%를 공영홈쇼핑을 통해 올리고 있다. 캄보디아에서 의류를 들여오는 중소 의류업체 관계자는 "국내 주요 봉제 업체들이 대부분 해외로 이전한 상황이라 제품을 안정적으로 생산할 국내 공장을 찾기조차 어렵다"며 "어떻게 중소기업을 보호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 의류업체 관계자는 "우리에게는 회사 존폐가 걸린 일인데 간담회 한 번 없이 일방적으로 발표하고서는 따르라고 한다"며 "국내 인건비가 베트남의 4배인 상황에서 국내에서 생산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공영홈쇼핑 관계자는 "올해 4월부터 상품 개발자를 통해 이번 조치를 중소기업들에 전달해왔다"며 "해외에서 국내 생산 시설로 전환하는 업체에 대해서는 방송 판매를 재개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발표는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강하게 밀어붙인 것으로 알려졌다. 홍 장관은 지난 23일 기자간담회에서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에 따라 해외 공장 이전이 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자 "국내에 공장을 둔 제조 기업들을 돕기 위해 공영홈쇼핑에서 순수 국산품만 팔도록 하는 정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장관 발언 1주일 만에 이 같은 결정이 나온 것이다. 홈쇼핑 업계에서는 "홍 장관이 밀어붙이자 공영홈쇼핑에서 급하게 3주년 기념식에 맞춰 발표한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홍 장관은 19대 국회의원 시절이던 2012년 면세점 면허를 입찰에 부치는 관세법 개정안인 일명 '홍종학법'을 발의해 통과를 주도했다. 결국 2015년 면허 갱신이 되지 않은 면세점들이 문을 닫게 되면서 직원 2000여명이 고용 불안에 떨어야 했다.

◇공영홈쇼핑, 중소기업 공멸 우려

홈쇼핑 업계에선 이번 결정이 이미 적자에 빠진 공영홈쇼핑 채널 경쟁력을 약화시켜 피해가 입점 기업 전체로 확산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다양한 상품을 취급하는 다른 채널과 경쟁에서 밀려 전체 거래액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 홈쇼핑 업계 관계자는 "이번 결정은 인건비가 싼 곳에서 대량으로 제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홈쇼핑의 특성을 간과한 것"이라며 "퇴출 기업뿐 아니라 입점 중소기업들도 결국 피해를 볼 것"이라고 말했다.

공영홈쇼핑은 이번 결정에 더해 가공식품도 국내산만 취급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외국산 원료를 들여와 만든 가공식품에 대해서도 입점 기준을 까다롭게 하기로 방침을 정하고 세부 규정을 만드는 것이다. 예컨대 브라질 아마존이 원산지인 열매 아사이베리로 만든 '아사이베리 분말'은 현재 인기 건강식품이지만, 앞으로는 퇴출 대상이 될 수 있다. 아사이베리로 만든 건강식품을 사고 싶은 소비자는 공영홈쇼핑이 아닌 다른 홈쇼핑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러시아산 명란으로 만든 명란젓, 베트남산 어육으로 만든 어묵 등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