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곤해도 별수 있나요. 신혼살림은 빠듯하고 생활비 충당하려면 뒤차라도 열심히 몰아야죠."

주 52시간 근무 시행 첫날이었던 지난 2일 오후 8시, 서울 성동구 마장동에서 만난 김모(34)씨는 눈이 붉게 충혈돼 있었다. 김씨는 경력 5년 차의 대기업 임원 수행 기사다. 이날 오전 8시 회사 차고지로 출근해 오후 5시 퇴근했다가 이제 막 '두 번째 출근'을 한 상태였다.

김씨는 '뒤차'를 몬다. 대리운전 기사가 술 취한 승객 차를 몰면 김씨는 자기 차를 몰고 뒤를 따라간다. 일을 마친 대리운전 기사를 다음 지점으로 태워주는 게 그의 일이다.

김씨가 뒤차를 몰기 시작한건 지난 4월 부터다. 주 52시간 도입에 따라 회사가 근무시간을 주 70여 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였다. 퇴근은 3시간 빨라졌지만 일하는 시간이 줄자 300여만원이던 월급이 100만원 가까이 줄었다. 김씨는 결혼한 지 6개월 된 신혼이다. 월급이 준다는 것은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김씨는 "아이를 낳고 키우려면 10만원이라도 더 저축해야 한다"고 했다. 김씨 회사는 사내 규정으로 '투잡(two job)'을 금지하고 있다. 다른 일을 하면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 대리운전 뒤차를 몰게 된 것도 소득 신고를 안 해도 되기 때문이다.

기자는 이날 오후 8시부터 새벽 1시까지 김씨 차에 동승했다. 이날 김씨와 한 조(組)를 이룬 '앞차'(고객 차) 대리 기사는 50대 최씨였다. 김씨가 대리운전 기사 온라인 카페에 올린 글을 보고 연락을 해왔다. 김씨는 이날 서울 강남과 경기 하남을 오가며 대리 기사를 실어날랐다. 태풍의 영향으로 폭우가 쏟아졌지만 계기판 속도 바늘은 시속 100㎞를 오갔다. 뒷좌석에 탄 기자의 손에 땀이 나기 시작했다. 김씨는 "대리 기사가 모는 차(승객 차)보다 목적지에 먼저 도착해 있어야 대리 기사가 콜(호출)을 잡고 다음 승객이 있는 곳으로 갈 수 있다"고 했다. 과속을 하다 보니 사고가 나는 경우도 있다. 김씨는 "접촉 사고라도 나면 일주일 번 돈 날아간다"고 했다.

올 들어 대리운전 시장에 뛰어든 사람은 김씨만이 아니다. 중소기업 과장, 생산직 근로자 등 근로시간 단축으로 소득이 줄어든 사람도 많다. 대리운전 연결 서비스인 '카카오 드라이버'에 따르면 지난달 대리 기사로 등록한 사람은 11만명이다. 작년 6월 등록자 수(8만명)보다 3만여 명이 늘었다. 전업 대리 기사 사이에선 "직장인들이 너도나도 대리운전에 뛰어들어 고객 잡는 게 너무 어렵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유치원생 아들이 있는 중견기업 직원 최모(34)씨도 한 달 전부터 퇴근 후 2~3시간 정도 뒤차 운전을 하고 있다. 최씨는 "아이가 한창 클 때인데 월급이 60여만원 깎여 용돈 벌이 삼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부가 함께 대리운전 시장에 뛰어든 경우도 있었다. 서울 강서구에 사는 정모(여·44)씨 부부는 모두 수도권 중소기업에서 과장급 직책을 맡고 있었다. 남편 직장이 52시간 근무 체제에 들어가면서 월급이 80만원 줄었다고 한다. 정씨는 "여덟 살, 열 살 아이들이 있어 돈 들어갈 데가 많다"며 "퇴근 후 3~4시간씩 남편은 앞차, 내가 뒤차를 몰고 있다"고 했다. 아이는 부모님 집에 맡기는데 부모님이 못 봐줄 때는 정씨가 모는 뒤차에 태우기도 한다고 했다.

김종용 전국대리기사협회 회장은 "뒤차는 업체에 등록된 게 아니기 때문에 앞차 기사가 수익을 나누지 않고 도망가거나 앞차만 보고 따라가다 행인을 치어 인명 사고를 내기도 한다"고 했다.

김씨는 새벽 1시에 일을 마쳤다. 함께 다닌 대리 기사 최씨가 5명을 태워 14만원을 벌었다. 대리운전 업체에 수수료 20%(2만8000원)를 내고 두 사람이 5만6000원씩 나눴다. 김씨는 "시간당 1만~1만5000원 정도 번다"고 했다. 한 달 100만원을 벌려면 이런 식으로 일주일에 4일 이상 뒤차를 몰아야 한다. 줄어든 월급만큼이다. 뒤차를 몰기 시작하면서 잠자는 시간을 포함한 김씨의 휴식 시간은 하루 11시간에서 6시간 내외로 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