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 KT(030200), KT&G등 민영화된 옛 공기업의 최고경영자(CEO)가 중도하차, 경찰수사, 연임 성공 등 서로 다른 모습을 보이며 희비가 갈리는 모습이다. 이들 기업은 모두 민간기업으로 변신했으나 정부가 바뀔 때마다 CEO 교체 압박을 받아왔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후 ‘민간기업 인사 불개입’ 원칙을 강조했으나 직간접적인 경로로 이들 기업 CEO의 사퇴를 종용해 논란이 됐다.

권오준 포스코 회장이 4월 18일 서울 포스코센터에서 열린 이사회에서 사의를 표명하고 나오면서 취재진의 물음에 답하고 있다.

포스코는 지난 23일 이사회를 열고 최정우 포스코켐텍 사장을 차기 회장 후보로 단독추대했다. 최 사장은 7월 27일 열리는 임시 주주총회와 이사회를 거쳐 회장으로 취임할 예정이다. 권오준 회장은 다음달까지 회장직을 유지한다.

권오준 회장은 2017년 3월 연임에 성공해 임기가 2020년 3월까지였다. 그러나 지난 4월 18일 돌연 “외압은 없다”며 돌연 사퇴의사를 표명했다. 권 회장이 임기 중 물러나면서 고(故) 박태준 회장을 포함해 총 8명의 역대 포스코 회장은 모두 마지막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나게 됐다.

최 사장이 단독 회장 후보로 추천되는 과정에서도 잡음이 일었다. 회장 후보 선정작업 초기에는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과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김준식 전 포스코 사장, 권오준 회장 라인으로 분류되는 장인화 포스코 사장 등이 유력 후보로 거론됐으나 포피아(포스코 마피아), 낙하산 논란이 일며 최 사장이 낙점됐다.

구자영 전 SK이노베이션(096770)대표이사 부회장 등 외부 인사가 포스코 회장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으나 포스코 CEO후보추천위원회는 글로벌 경영역량, 혁신역량, 핵심사업에 대한 높은 이해 및 사업추진 역량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최정우 사장을 회장 후보로 뽑았다고 밝혔다. 한 재계 관계자는 “포스코는 일사불란, 상명하복으로 대표되는 특유의 문화가 있어 외부 인사가 오면 조직을 다루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황창규 KT 회장이 4월 17일 오전 피의자 신분으로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 출석해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지난 4월 권오준 포스코 회장이 사의를 표명하면서 재계의 시선은 황창규 KT 회장에게로 쏠렸다. 권 회장이 ‘관례’대로 임기 도중 물러나기로 하면서 황 회장도 곧 물러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많았다. KT는 올해 1월 31일 평창 동계올림픽 홍보관 문을 열던 날 경찰의 압수수색을 받기도 했었다. 당시 황 회장은 5G 시범서비스 준비 완료를 선언할 예정이었으나 압수수색에 관심이 집중되며 행사장에서 급하게 자리를 떠야했다.

황 회장은 전·현직 임원 3명과 함께 불법 후원금 4억여원을 2014년 5월부터 작년 10월까지 국회의원·정치인 등 99명의 계좌로 보낸 혐의를 받고 있다. 법인자금으로 이른바 상품권깡(상품권을 산 뒤 되팔아 현금화하는 방법)을 해 비자금을 조성한 뒤 임직원 명의로 여야 의원들의 후원금 계좌로 보냈다는 것이다. 쟁점은 황 회장이 불법 후원금 지원 여부를 알고 있거나 지시를 내렸는가인데, 경찰은 황 회장이 미리 알았다고 보는 반면, KT 측은 황 회장이 몰랐다고 주장하고 있다.

KT도 포스코와 마찬가지로 회장이 중도 퇴진하는 경우가 많았다. 2002년 민영화 이후 황 회장 이전에는 이용경, 남중수, 이석채 회장이 있었는데, 이용경 전 회장은 연임을 포기했고 남중수·이석채 전 회장은 비리, 배임·횡령 등의 혐의로 수사를 받자 중간에 사퇴했다.

2015년 10월 KT&G 사장으로 취임한 백복인 사장은 포스코, KT와 달리 정부의 개입 시도에도 올해 3월 성공적으로 연임에 성공했다. KT&G 사외이사로 구성된 사장후보추천위원회는 올해 2월 백 사장을 차기 사장후보로 단독 추천하면서 연임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 보였다. 그러나 KT&G 2대 주주인 기업은행이 “백 사장이 사장후보추천위원회를 통해 스스로 연임하려고 한다”고 반대 목소리를 내면서 제동을 걸었다.

백복인 KT&G 사장

기업은행이 백 사장에 반대 목소리를 내자 업계에서는 “정부가 기업은행을 통해 개입하려고 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후 기획재정부가 올해 1월 말을 전후해 ‘KT&G 관련 동향 보고’란 문서를 작성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의혹이 더 커졌다. 이 문서에는 ‘현실적으로 정부의 사장 선임 과정 개입은 불가능. 다만 기업은행을 통해 사추위(사장추천위원회)의 투명·공정한 운영 요구’라는 내용이 있다. 정부가 직접 개입할 수는 없지만, 기업은행을 통해 정부 방침을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재부는 당시 “실무자가 동향 파악 차원에서 작성한 것을 뿐 인사에 영향력을 미치기 위해 작성한 것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기업은행의 반대에도 KT&G 지분 절반 이상을 보유한 외국인 투자자들이 백 사장의 손을 들어주면서 백 사장의 사장 연임안은 주주총회를 통과했다. 백 사장이 사실상 정부의 반대에도 연임에 성공했지만, 앞날이 순탄할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백 사장이 연임에는 성공했지만, 정부 뜻을 거스른 것처럼 보이게 됐으니 KT&G로서도 부담스러울 것”이라며 “경영 투명성을 더 강화하고 실적으로 입증해야하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