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일 반대 세력들이 과장된 얘기를 (기자에게) 흘려서 기사로 쓴 것 아닙니까?”

지난 7월 19일 ‘금융감독원의 채용 비리가 감사원 감사에서 추가로 발견됐다’는 단독 보도를 하자 한 금감원 고위 간부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금감원 변호사 특혜 채용 의혹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김수일 전 부원장을 두고 한 말이다. ‘금감원 내 김 전 부원장을 비토하는 세력들이 김 전 부원장과 그의 측근을 공격하기 위해 기자에게 과장된 사실을 흘렸다’는 것이 이 간부의 주장이었다.

금감원 모 국장도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단순 착오에 의한 것이지 채용 비리는 절대 아니다”고 했다. 이 국장 역시 앞선 간부와 비슷한 취지의 해명을 했다. 감사원과 금감원은 물론 여러 취재원을 통해 취재한 필자는 황당할 따름이었다.

지난 3월부터 한 달여간 금감원을 대상으로 감사를 벌여 온 감사원은 지난 20일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결과에 따르면 52건의 위법·부당 사항이 발견됐다. 감사원은 8명의 직원에게 면직·정직 등 문책 권고를 했고, 이 가운데 5명은 검찰 수사 요청까지 했다.

감사 결과의 압권은 단연 채용 비리다. 2016년 5급 신입 채용 당시 총무국장은 지인으로부터 지원자 합격문의를 받은 뒤 필기전형 합격자를 부당하게 늘려 불합격 위기였던 지원자를 합격시켰다. 총무국장은 직접 면접위원으로 참석해 이 지원자에게 10점 만점에 9점을 줬다. 당시 면접을 본 지원자 중 최고 점수다.

채용 비리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당시 총무국장과 인사팀장은 서울 소재 대학 졸업자가 입사원서에 ‘지방 대학 졸업’으로 허위 사실을 기재한 것을 알고도 이 지원자를 ‘지방인재’라며 합격시켰다. 2차 면접을 1, 2순위로 통과한 지원자들 ‘평판이 나쁘다’는 이유로 탈락시키고 평판이 좋지 않은 지원자를 별다른 이유 없이 합격시키기도 했다. 금감원의 직원 채용에 복마전이 만연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기자에게 해명했던 금감원 고위 간부와 국장은 채용 비리를 이미 알고 있었다. 감사원 감사 결과에는 채용 비리에 대한 이들의 소명이 그대로 적시돼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감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채용 비리 보도를 ‘특정인을 공격하기 위한 과장된 것’이라고 했다. 철저한 반성 대신, ‘매는 나중에 맞자’는 심리가 작용했는지 모른다. 이런 안일한 인식이 지금의 금감원을 만들었다.

금감원이 2016년 5급 신입직원 채용을 진행하던 2015년 청년 실업 통계를 찾아봤다. 통계청에 따르면 그해 청년(15~29세) 실업률은 9.2%(39만7000명)였다. 직장을 구하고 있는 청년 10명 중 1명이 ‘백수’라는 뜻이다. 올해 청년 실업자는 그때보다 10만명이 늘었다. 청년들의 취업은 그만큼 절박하다. 그래서 금감원의 채용 비리가 드러났을 때 한 취업 준비생은 ‘취업 비리는 살인죄’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금감원은 그동안 반관반민(半官半民)의 성격 탓에 임직원 비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감사 결과를 본 금감원 임직원들도 “어쩌다 조직이 이 지경이 됐나”라는 한탄이 나온다. ‘금융 검찰’로 불리던 금감원은 비리 조직으로 추락했다. 금융권에서는 ‘금감원이 아니라 명예에 금간 원’이라는 비아냥까지 나온다.

이번 일을 계기로 금감원은 철저한 쇄신의 길을 걸어야 한다. 금감원 임직원들도 어느 직업군보다 철저한 준법정신과 직업의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새겨야 할 때다. 금감원에 첫 민간 출신 수장에 오른 최흥식 금감원장도 바닥에 떨어진 금감원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말 그대로 ‘뼈를 깎는’ 조직 쇄신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금감원이 지속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