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적으로 대물림되는 질환을 근본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길이 열릴까.

최근 김진수 기초과학연구원(IBS) 유전체교정연구단장(서울대 화학부 교수)과 미국 오리건 보건과학대 슈크라트 미탈리포프 교수 공동 연구팀은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기술로 인간 배아에서 유전병을 일으키는 돌연변이 유전자만 골라 제거하는 데 성공했다.

유전자가위는 변이된 유전자를 잘라내고 정상 유전자를 붙이는 혁신적인 기술이다. 특정 유전자에만 결합하는 효소를 이용해 원하는 유전자를 잘라낸다. 유전자가위 기술은 1세대(징크핑거), 2세대(탈렌), 3세대(크리스퍼)로 나뉘는데, 3세대인 크리스퍼(CRISPR-Cas9) 유전자가위는 기존 기술에 비해 간편하고 정교하다.

연구진은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기술로 인간수정란에서 비대성 심근증의 원인이 되는 돌연변이 유전자를 제거했다. 인공 수정 과정에서 유전자가위로 정자의 돌연변이 유전자를 먼저 없앤 뒤 난자와 수정을 시키는 방식이다. 정자에서 잘려나간 돌연변이 유전자 자리는 난자가 갖고 있는 정상 유전자로 교체됐다.

정상인의 난자(왼쪽)에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효소가 녹은 수용액과 정자를 함께 주입하는 모습.

연구진은 이 사실을 확인한 뒤 수정란을 수정후 일주일이 되기전 폐기해 유전자가 바뀐 아기가 실제로 탄생하지는 않았다. 이번 연구에서 한국은 핵심 기술인 유전자 가위를 제공했다. 인간 수정란을 다루는 실험은 미국에서 진행됐다. 국내에서는 인간 수정란의 유전자를 변형하는 연구가 불법이기 때문이다.

미국 하버드대 연구팀은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기술을 이용해 돼지 장기에 존재하는 25가지 ‘내인성(內因成) 레트로바이러스(pervs)’를 세포에서 모두 편집해 비활성화하는 데 성공했다,

연구팀은 편집된 유전자를 돼지의 난자에 주입해 배아를 만들어낸 뒤 내인성 레트로바이러스가 없는 37마리의 새끼돼지가 태어나게 했다. 이 중 일부는 추가 연구를 위해 도축됐으며, 15마리는 건강하게 살아있다.

조선 DB(사이언스 제공)

이번 연구를 주도한 하버드대의 유전학자인 조지 처치(George Church) 박사는 뉴욕타임스에 “돼지의 장기를 인간에게 이식하는 것이 2년 안에 현실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새끼 돼지의 장기를 이식 받은 사람이 바이러스에 감염될 위험성 여부는 밝혀지지 않았다. 안전성이 완전하게 확인되기까지는 앞으로 수 년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다.

미국의 장기이식 시스템을 관리하는 비영리기관인 ‘장기공유 통합 네트워크’의 데이비드 클라센(David Klassen) 박사는 “장기 공급과 수요 사이에 커다란 불균형이 있다”면서 “만약 돼지 장기가 안전하고 효율적이라는 점이 밝혀진다면 ‘진정한 게임 체인저(a real game changer)’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