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현대·기아자동차의 상반기 실적 부진으로 협력업체들이 일시적 유동성 위기를 겪을 수 있다고 보고 시중은행에 모니터링 강화를 주문했다. 일부 시중은행은 현대·기아차 협력업체를 점검한 뒤 여신을 축소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다만 과도한 여신 축소를 자제해줄 것을 시중은행에 당부했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시중은행이 현대·기아차의 매출 의존도가 크고 부채비율이 높은 협력업체를 대상으로 여신 점검을 진행하고 있다”며 “일시적인 유동성 위기로 협력업체들이 어려움을 겪을 수 있기 때문에 모니터링 강화를 주문했다”고 14일 말했다.

한 시중은행 임원도 “재무구조가 취약한 현대·기아차 협력업체를 점검하고 있다”며 “이번 점검에는 규모가 큰 1차 협력업체도 포함됐다”고 했다.

이번 여신 점검은 상반기 현대·기아차의 판매 실적이 저조한 데 따른 것이다. 특히 두 완성차 업체의 지난 달 실적은 전년 동기 대비 10% 이상 감소했다. 현대차는 지난달 내수에서 6만1837대, 해외 31만4272대 등 전 세계에서 지난해보다 15.5% 감소한 37만6109대의 실적을 냈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내수는 11.6%, 해외는 16.2% 줄었다. 기아차도 6월 국내외 시장에서 23만2370대를 판매했다. 이는 전년 동월대비 13.3% 감소한 수치다. 내수 판매는 4만7015대로 전년보다 10.5% 줄었으며, 해외 판매는 14% 감소한 18만5355대로 집계됐다.

그래픽=조선일보DB

현대·기아차의 실적이 부진하면 협력 업체의 수주 물량이 감소하고 대금 결제가 지연되면서 유동성 위기를 겪게 된다. 특히 2·3차 협력업체의 경우 수익 저하를 만회하려는 원청업체의 원가 절감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도산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2·3차 협력사까지 포함하면 현대·기아차의 협력업체는 5000여개에 달한다. 이 가운데 재무구조가 비교적 안정적인 중견기업은 111개사(지난해 말 기준)에 불과하다.

시중은행들은 필요할 경우 이들 협력업체의 여신 규모를 단계적으로 축소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시중은행들은 현대·기아차의 실적 부진이 장기화될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다. 다만 일시 유동성 위기를 겪는 협력업체에 대해서는 여신 만기 연장 등의 지원도 고려 중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현대·기아차는 실적이 부진해도 재무구조가 탄탄해 당장 어려움을 겪을 일은 없지만 소규모 협력업체는 상황이 다르다”며 “부채비율이 지나치게 높다고 판단되는 기업은 여신을 단계적으로 줄일 예정이지만 일시 유동성 위기를 겪는 기업의 여신을 줄일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