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가 14일(현지 시각)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렸다. 동시에 글로벌 금융위기 때 연준이 사들인 국채, 주택저당증권(MBS) 등 자산도 연간 3000억달러(약 340조원) 축소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연준이 자산을 줄이면 채권 시장엔 채권 공급이 늘어나 채권 가격이 떨어지는(금리는 상승하는) 효과를 준다. 기준금리 인상과 같은 것이다. 전문가들은 3000억달러 축소가 기준금리 0.25%포인트 인상과 맞먹는다고 분석한다. 미 연준은 2019년까지 현재 연 1~1.25%인 기준금리를 연 3%까지 올릴 계획인데, 여기에 더해 추가로 시장 금리를 더 올리는 조치를 취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것이다.

14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 증권거래소의 트레이더들이 재닛 옐런 미연방준비제도 의장의 TV기자회견 방송을 켜 놓은 채 금융시장 상황을 확인하고 있다. 이날 연방준비제도는 올 3월 이후 3개월 만에 미국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렸다.

기준금리를 연 1.25%에서 12개월째 묶어 놓고 있는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로서는 고민이 커지고 있다. 경기 회복세에 들어선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여전히 2%대 저성장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한은이 미국을 따라 당장 금리를 올리긴 어렵다. 하지만 한·미 간 기준금리가 역전되고 여기에 더해 미국 시장금리가 더 오른다면 금리가 높은 미국으로 자금이 빠져나갈 우려는 커진다. 한은으로선 '경기 살리기'냐 '외국인 자금 유출 막기'냐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美, 연준 자산 줄이기에도 나서

미국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제로 금리 정책'으로 기준금리를 0~0.25%로 낮췄다. 더는 기준금리를 낮출 수 없자 2014년까지 '양적 완화 정책'으로 국채, MBS 등 채권을 사들여 시장 금리를 낮췄다. 이 와중에 연준이 보유한 자산은 2007년 8000억달러에서 4조5000억달러(약 5000조원)까지 불어났다.

미국 연준이 이번에 줄이겠다고 하는 자산은 위기 때 불어난 4조5000억달러의 일부다. 자산 축소의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보유한 채권을 시장에 내다 팔지는 않고 채권 만기가 돌아오면 원금을 돌려받는 방식으로 자산을 줄일 계획이다. 재닛 옐런 미 연준 의장은 15일 기자회견에서 "자산 축소는 앞으로 몇 년에 걸쳐 진행될 것"이라며 "비교적 빨리 진행할 수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언제 시작할지는 밝히지 않고, 1년에 3000억달러를 줄인다는 일정표만 제시했다. NH투자증권은 이날 "1년에 연준 자산 3000억~3500억달러가 축소되는 것은 연간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하는 효과가 있다"고 분석했다.

자산 축소 시작 시점으론 골드만삭스, 뱅크오브아메리카 등이 9월로 전망하고 있다. 미국은 금리 인상도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2015년 말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금리를 0.25%포인트 올린 후, 작년 말에 다시 한 차례 올리고, 올 들어서는 벌써 두 차례 금리를 올렸다.

외국인 자금 유출 나타날까

우리나라보다 미국의 금리가 높아지면 외국인 자금의 유출 우려가 커진다. 미국이 오는 9월 기준금리를 한 차례 더 올리고 한은이 금리를 계속 동결한다면 10년 만에 한·미 간 기준금리가 역전되는 현상이 벌어지게 된다. 그렇게 되면 올 들어 유입되던 외국인 주식·채권 자금이 방향을 바꿀지가 관심사다. 과거 한·미 간 기준금리 역전기는 1999년 7월~2001년 3월, 2005년 8월~2007년 9월 두 차례 있었다. 당시 외국인 주식 투자금이 빠지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외국인 직접투자까지 포함한 전체 자본시장을 볼 때 외국인 자금 유출은 없었다. 다만 당시는 금리 역전 후 2~8개월이 지나 한은이 미국을 따라서 금리를 올렸고, 성장률이 높아 외국인들이 자금을 회수할 이유가 적었다.

1999~2001년 평균 성장률은 11%대, 2005~2007년은 성장률이 5%대였다. 2%대 성장을 하고 있는 지금과 비교하긴 어렵다는 것이다.

글로벌 IB "한국은 내년에나 올릴 것"

이주열 총재는 지난 12일 경제 상황이 뚜렷이 개선돼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지만 2014년 4월 취임 후 처음으로 향후 금리 인상 가능성을 시사했다. 한은 내부에선 정부가 추진하는 확장적 재정정책이나 가계부채 대책이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부담을 덜어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한 금통위원은 "확장적 재정정책은 경제 성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통화정책 완화 기조를 장기간 지속할 필요성을 줄이는 요인이 될 수 있다"며 "정부의 가계부채 대책은 금융안정 리스크를 줄여줌으로써 한은이 통화정책을 신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여지를 넓혀 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한은이 기준금리를 급하게 올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금리를 올리면 1360조원대에 달하는 가계부채의 상환 부담이 커지고, 경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총재도 "미 연준이 금리를 몇 번 올려도 경기 회복을 지원하는 수준이라고 한다"며 "우리도 경기 흐름을 도외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골드만삭스·노무라 등 글로벌 IB들은 한은이 올해엔 기준금리를 동결하고 내년부터 금리 인상에 나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