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에 다니는 김대웅(35)씨는 최근 은행 대출을 꽉 채워 서울 용산의 한 소형 아파트를 구입했다. 7월부터 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가 강화돼 담보 대출이 크게 줄어들 것이란 말을 듣고 내 집 장만을 서두른 것이다.

전세살이를 하던 김씨는 “어차피 집은 살거고, 주택담보대출은 금리도 3%대로 높지 않아, 더 오르기 전에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는게 낫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가계빚이 가파르게 증가하며 LTV·DTI 규제 강화와 총부채 원리금상환비율(DSR) 도입 등 정부의 가계부채 대책이 예고됐지만 김씨처럼 규제 전 ‘대출 막차’를 타고 집을 사겠다는 실수요자들이 늘고 있다.

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가 강화되기 전에 은행 대출을 받아 집을 사려는 실수요자들이 늘고 있다.

최근 가계부채 증가는 분양 성수기라는 계절적 요인이 작용해 집단대출 증가분이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대출 조건이 강화되기 전에 미리 대출을 받아 집을 사두려는 주택 수요자들이 늘어난 것이 오히려 가계부채 증가에 한몫했다는 분석도 있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지난달 은행권 전체 가계대출은 전월(4월)보다 6조원가량 증가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KB국민은행, 신한은행, 우리은행, KEB하나은행, NH농협은행 등 5대 은행의 5월 가계대출 잔액은 502조7911억원으로, 전월보다 3조994억원 증가했다. 지난 4월 증가한 1조4610억원보다 2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5대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올해 1~2월 감소했다가 3월부터 증가하고 있다.

가계 대출이 증가한 이유는 집을 사기 위해 담보 대출을 받은 경우가 늘었기 때문이다. 은행권에 따르면 국내 4대 은행(KB국민∙신한∙우리∙KEB하나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신규 취급분 중 주택 구입 용도 비중은 지난해 1~5월 50~60%에서 올해 같은 기간 70~80%까지 올랐다. 정부의 대출 규제가 시행되기 전인 올해 상반기에 주택 구입을 위해 빚을 낸 사람이 늘어난 것이다.

최근 담보대출을 받아 집을 산 이상규(40·가명)씨는 “장기적으로 봤을 땐 대출에 기대지 않고 자기 자본으로 사는게 맞지만, 어차피 은행 융자를 얻을 수밖에 없는 사정이라면 담보대출 한도가 줄기 전에 대출을 받아 사는게 낫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서울 역삼동 KB국민은행 대부계 직원은 “새 정부가 LTV·DTI를 강화할 것으로 알려진 뒤로 내 집 마련 실수요자들의 대출 문의가 평소보다 2배 정도 늘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고준석 신한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장은 “금융 규제로 담보 대출이 줄면 주택을 마련하려는 사람들은 집 장만을 앞당기거나 아예 뒤로 미룰 수밖에 없게 된다”며 “투기 수요를 잡으려다 실수요자들도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에 가수요만 골라 규제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 2014년 부동산 경기 활성화를 위해 LTV를 50~60%에서 70%로, DTI를 50%에서 60%로 상향했다. 문재인 정부는 가계부채 문제가 심각하다고 보고 LTV·DTI 적용 기준을 원래대로 돌려 놓을 것으로 보인다. 또 대출 심사를 할 때 신규 대출뿐 아니라 기존 대출을 포함한 총부채량을 고려하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도입도 검토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