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005930)는 시스템LSI에서 반도체를 위탁생산하는 파운드리(Foundry) 사업부를 분리해 독자 사업부를 만든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에서 반도체를 담당하는 DS(Device Solutions) 부문은 메모리 사업부·시스템LSI 사업부·파운드리 사업부 3개 사업부 체제로 운영된다. 파운드리는 반도체 설계만 하는 팹리스(Fabless) 기업으로부터 설계도면을 받아 반도체를 생산해 넘겨주는 사업이다.

반도체 연구원이 생산된 칩을 살펴보고 있는 모습

삼성전자 DS부문은 12일 팹리스를 담당하는 파운드리사업으로 분리하고 신임 사업부장을 선임하는 내용의 조직개편을 단행했다고 밝혔다.

한태희 성균관대 반도체학과 교수는 “파운드리 사업부 분리는 지난해부터 나오던 얘기”라며 “반도체 슈퍼사이클 속에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사업 매출도 성장하면서 사업부를 승격한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초대 파운드리 사업부장에 정은승 반도체연구소장(부사장)을 임명했다. 정 부사장은 1985년 서울대 물리학과 석사를 졸업한 뒤 30년이 넘는 기간 시스템LSI사업부 내 기술개발실과 파운드리사업팀 주요 보직을 거쳤다. 지난 2012년 12월부터 최근까지는 반도체연구소장을 역임했다. 정 부사장은 파운드리 분야에서 뼈가 굵은 삼성전자 내 최고 반도체 생산 전문가로 꼽힌다.

정은승 파운드리 사업부장

◆ 파운드리 분리 왜?…시장확대와 고객사 불만제거

전문가들은 삼성전자의 이번 파운드리 사업부 신설을 놓고 반도체 호황에 따른 사업 확대 전략으로 풀이한다. 시장조사기관인 IHS마켓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사업 매출은 지난해 45억1800만 달러(약 5조1000억원)를 기록했다. 이는 전년의 25억2900만 달러(약 2조8600억원)와 비교할 때 무려 78.6% 급증한 수치다.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사업부 신설을 통해 현재 전 세계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을 3위권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이다. 지난해 말 기준 파운드리 업계 1위는 대만의 TSMC이며, 2, 3위는 대만의 UMC, 미국 글로벌파운드리(GF)이다. 삼성전자는 4위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사업부 형태의 독립 조직을 신설하면 책임 경영이 강화되고 실적 개선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며 “사업부가 될 경우 인력과 물량 투자에 관한 권한도 커져 시장에 유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최근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고객 사이에서 불만이 터져 나온 것도 파운드리 사업부 신설을 촉진시켰다는 분석이 나온다. 삼성전자는 설계부터 제조까지 하는 종합반도체 회사(IDM)다. 그러다보니, 삼성전자 파운드리의 주요 고객사들은 삼성전자 시스템LSI 반도체와는 경쟁 관계에 있는 곳이 많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는 퀄컴의 최신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스마트폰 중앙처리장치) 스냅드래곤 835를 위탁생산해주고 있는데 동시에 AP 엑시노스를 만들어 퀄컴 스냅드래곤과 품질 경쟁을 하고 있다.

한때 애플은 아이폰에 들어가는 AP를 삼성전자에게 맡겼지만, 애플의 아이폰과 삼성전자의 갤럭시폰이 경쟁하면서 애플은 아이폰7부터 삼성전자에 맡겼던 AP 물량을 대만 파운드리 전문업체 TSMC에 몰아줬다. 애플은 내년 출시되는 아이폰8의 AP 위탁생산업체로 대만 TSMC 한곳만 선정, 삼성전자는 배제했다.

스마트폰의 두뇌인 AP분야에서 퀄컴과 함께 최대 고객사였던 애플을 대만 TSMC에 빼앗기면서 파운드리 사업부 독립이 시급하다는 필요성이 제기돼왔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가 독립하면 칸막이 효과가 생겨 영업이 자유로워질 것으로 보인다”며 “그동안 고객 일각에서는 기업 기밀이나 노하우 등을 삼성전자 다른 사업부에 줄 수 있다며 경계하는 분위기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 삼성전자, 애플 아이폰 AP 위탁생산 재도전 하나?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사업부 분리를 계기로 애플에 다시 러브콜을 보낼 수 있다고 전망한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는 자체 모바일AP(엑시노스)를 만드는 개발실과 애플의 AP를 생산하는 파운드리사업팀이 같은 사장, 사업부 아래 있는 것이 애플 입장에서 불편할 수 있다”며 “사업부 분리로 고객의 불만 요소를 없앤 만큼 애플의 AP 위탁 생산에 재도전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폰8에 탑재될 것으로 알려진 애플 A11 AP 칩셋의 모습. A11 칩셋은 대만 TSMC에서 10나노 공정으로 생산된다.

특히 삼성전자 내부에서는 삼성디스플레이가 아이폰8(가칭)의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공급사로 선정된 것도 긍정적인 신호로 보고 있다. 지난달 일본 닛케이아시안리뷰는 애플이 올해 아이폰 7000만대에 사용하기 위해 삼성디스플레이에 OLED 패널을 주문했다고 보도했다.

이번 조직 개편으로 삼성전자의 반도체사업은 김기남 반도체 총괄사장의 진두지휘 아래 ‘메모리반도체-시스템반도체-파운드리’의 삼각 편대가 된다. 이에 앞서 삼성전자는 지난해 말 반도체연구소에서 일하는 파운드리 관련 인력을 파운드리사업팀으로 배치한 바 있다.현재 파운드리 사업팀의 인력은 약 1200명 수준이다.

시스템LSI사업부의 남은 인력은 4800명이다. 시스템LSI 사업부는 AP를 설계하는 SoC개발실과 CIS(CMOS 이미지센서), DDI(디스플레이구동드라이버IC) 등을 개발하는 LSI개발실이 주력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