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진이 생각만으로 거북이 가는 길을 바꾸는 데 성공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이필승 교수 연구팀은 "사람이 머릿속으로 특정 행동에 대해 생각할 때 발생하는 전기 신호인 뇌파(腦波)의 변화로 거북을 움직이게 하는 실험에 성공했다"고 29일 밝혔다. 사람 뇌파로 로봇이나 기계 팔을 조작했던 이전 연구와 달리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 동물의 행동을 조종한 것이다. 연구 논문은 국제 학술지 '바이오닉 엔지니어링' 최신호에 실렸다.

연구진은 여성 대학원생에게 뇌파를 측정하는 두건을 쓰게 했다. 거북에게는 앞만 볼 수 있도록 가운데만 뚫린 큰 원통 모양 눈가리개를 씌웠다. 거북 등껍질 위에는 눈가리개를 좌우로 36도씩 회전시킬 수 있는 소형 모터와 와이파이(무선 랜) 장비, 카메라도 설치했다.

실험은 거북등에 달린 카메라가 찍은 전방 영상을 보면서 거북을 목표 지점까지 이동시키는 것이었다. 학생은 거북이 경로에서 왼쪽으로 이탈하면 오른쪽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머릿속으로 생각을 반복했다. 이때 사람 뇌파의 패턴이 바뀌는데, 거북 등껍질에 달린 모터가 이 신호를 무선으로 수신해 눈가리개의 뚫린 부분을 오른쪽으로 이동시켰다. 거북은 빛이 있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성질이 있어, 눈가리개가 뚫린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거북이 다시 오른쪽으로 쏠리면 눈가리개의 뚫린 부분을 왼쪽으로 옮겨 진행 방향을 수정했다.

실험 결과 거북은 천천히 갈지(之)자를 그리면서 목표 지점까지 도달했다. 사람이 거북과 5㎞가량 떨어져 진행한 야외 실험에서도 거북은 목표 지점에 골인했다. 거북의 이동 경로는 최적 경로와 비교해도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

연구진은 "앞으로 인간의 뇌파를 직접 동물 뇌에 전달해 조종하는 연구도 진행할 계획"이라며 "이 기술을 발전시키면 전쟁터나 군사 위험 지역에서 사람의 조종을 받는 동물이 사람을 대신해 정찰과 감시 역할을 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