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해운산업이 위기에 처했다. 국내 1위, 세계 7위였던 한진해운은 청산 절차를 밟고 있고 현대상선은 해운동맹에 정식 가입을 하지 못했다. 현대상선을 세계 5위권 선사로 키우겠다고 한 정부 계획은 모조리 빗나갔다. 그러나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는 핵심 수출 인프라인 해운산업을 반드시 다시 일으켜 세워야한다. 한국 해운업을 대표하는 전문가들로부터 최근 이슈에 대한 진단과 함께 한국 해운업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들어본다.[편집자주]

전준수 서강대 경영학부 석좌교수는 최근 해운업계에서 가장 바쁜 사람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그는 서강대에서 강의하고 있을 뿐 아니라 부산항만공사 항만위원장, 해양수산부 총괄자문위원, 현대상선 감사위원장 등 해운업계 주요 직책을 두루 맡고 있다. 전 석좌교수는 지난 12일에도 수출입은행과 해운 구조조정 방안을 논의했고, 오는 16일에는 부산에서 열리는 항만 회의에 참석한다.

전 석좌교수는 한국 해운업의 경쟁력 회복을 위한 방안으로 24노트(1노트는 1.852km/h)로 속도를 높인 1만3000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급 컨테이너선 20척을 국내 대형 조선소에서 일시에 건조해 해상운송의 ‘비즈니스 클래스’를 만들어 새로운 패러다임을 주도해 나가자고 제안했다. 속도를 장점으로 내세운 선박을 확보하면 운송 시간이 중요한 고가 화물 시장을 노릴 수 있을 뿐 아니라 조선‧해운도 상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 석좌교수는 “정부가 추진 중인 자본금 1조원 규모의 한국선박회사(가칭)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며 “한국 해운업계에 가장 필요했던 것은 선박 전문 회사였고 선박 건조 대금의 10%만 내고 나머지를 파이낸싱하는 방식을 이용하면 자본금 1조원으로도 10조원의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또 “1만3000TEU급 선박 20척을 일시에 건조하면 국내 해운업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조선업도 살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 석좌교수는 현대상선이 2M 얼라이언스에 정식 가입을 하지 못했다는 논란에 대해 “현대상선이 2M 얼라이언스에 가입했다고 보는 것이 좋다”며 “머스크, MSC가 자선기관도 아니고, 지금보다 더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만하면 최선의 결과를 얻어냈다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안 되는 게임이었다”고 했다. 다만 “협상 과정에서 아쉬웠던 점은 현대상선 경영진이 2M과 계속 협상하되 실무자들은 디얼라이언스와 계속 접촉해 다른 협상카드도 만들어 협상력을 높였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 석좌교수는 현대상선의 이번 2M 협상이 현대상선 입장에서는 성공적이었지만 한국 해운산업으로 보면 실패라고 규정했다. 그는 “현대상선 입장에서 보면 2M과 미주‧구주 노선에 투입할 선박을 새로 건조하지 않기로 했는데 이는 당분간 재정 부담을 덜 수 있다는 의미”라며 “2M의 선복량(적재용량)을 일부 받은 것도 영업력을 키울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가적으로 봤을 땐 이번 협상은 실패”라며 “한국은 당분간 대형 컨테이너선을 건조할 수 있는 길이 막혔고 세계 5위 원양선사라는 꿈이 꺾였다. 조선업과의 상생 발전도 한 걸음 뒤로 후퇴했다”고 말했다.

전 석좌교수는 서강대 영문학과를 졸업한 뒤 1974년 1월 한진해운 전신인 대한해운공사 공채로 입사해 해운과 인연을 맺었다. 1976년까지 대한해운공사에 근무한 뒤 미국 뉴욕주립대 대학원에서 운송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전 석좌교수는 1979년 한국으로 돌아와 대한선주(대한해운공사 후신)로 재입사한 뒤 같은해 영국으로 떠나 웨일즈카디프대 대학원에서 해상운송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87년 한국해운산업연구원(현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연구실장을 맡았고, 1989년부터 서강대 경영학부 교수로 근무했다. 이후 인천항만공사 항만위원, SK해운 상임고문을 역임하는 등 해운업계에서만 42년째 경력을 쌓고 있다.

지난 14일 오전 10시 서울시 마포구 서강대 마태오관에서 전 석좌교수를 만났다. 다음은 전 석좌교수와의 일문일답이다.

지난 14일 전준수 서강대 경영학부 석좌교수가 서울 마포구 서강대 마태오관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 “저운임 경쟁에서 승산 없어…속력 높인 1만3000TEU 선박 20척 일시 건조해야”

-한국 해운업계가 위기다.

“해운은 자산관리가 중요한 산업이다. 불황에는 낮은 가격에 선박을 구매하거나 건조한 뒤 호황이 됐을 때 선박을 장기 용선해주거나 매각해서 차익을 챙기는 산업이다. 그런데 김대중 정부 때 부채비율 200%를 요구하면서 현대상선 등 해운업체들이 알짜 사업부를 다 팔았다. 수익성이 높은 사업부만 아직까지 남아 있어도 회사들이 이정도로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역사적으로 보면 대한민국 정부가 나서서 해운업을 망하게 했다.

최근 정부가 한진해운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라는 국가적인 재난을 통해 해운업의 중요성을 비로소 깨달은 것 같다. 지난 10월 31일 정부가 해운업 경쟁력 강화 방안을 발표했는데, 우리나라 해운 역사상 가장 획기적인 조치라고 생각한다. 5개 부처가 모여서 해운업에 대해 같이 고민한 것 자체가 처음이다.”

-정부가 발표한 해운 경쟁력 강화 방안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정책은?

“정부는 세계 5위 수준의 강력한 국적 컨테이너 원양 선사를 만들겠다는 명확한 비전을 세웠다. 문제는 어떻게 하느냐다. 그런 측면에서 자본금 1조원 규모로 설립될 한국선박회사(가칭)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본다.

사실 한국 해운업계에 가장 필요했던 것은 선박 전문 회사였다. 선박 건조 대금의 10%만 내고 나머지를 파이낸싱하는 방식을 이용하면 자본금 1조원으로도 10조원의 효과를 낼 수 있다. 이를 이용해 1만3000TEU급 선박 20척을 일시에 건조하면 국내 해운업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조선업도 살릴 수 있다.”

현대상선의 1만3000TEU급 선박

-1만3000TEU급 선박 20척을 일시에 만들어 공급하는 방법으로 해운업 경쟁력이 강화될까?

“머스크는 2010년 1만8000TEU급 컨테이너선 20척을 대우조선해양에서 일시에 건조하면서 낮은 원가를 기조로 한 저운임 정책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었다. 원가가 높은 회사는 시장에서 쓸어내겠다는 것이었다. 해운업을 포기할 수 없는 세계 각국이 무리해서 따라가다 보니 지금은 엄청난 선복 과잉이 됐다.

최근 컨테이너 선박 폐선이 계속되고 있다고 하지만 소형 선박일 뿐이다. 1만8000TEU 이상 초대형 선박은 대부분 건조된지 4~5년 밖에 되지 않았고, 이미 건조 계약이 체결된 선박도 70척 이상 있다. 앞으로 최소 5~10년간은 주요 정기선 노선에서의 선복 과잉이 지속된다고 봐야 된다. 그렇게 저운임 경쟁이 계속되면 초대형 선박이 없는 한국 선사만 뒤처질 수 있다.

그렇다면 이번엔 우리가 패러다임 변화를 주도해야 되지 않나 생각한다. 국내 대형 조선소에서 경제속도를 24노트로 설계한 1만3000TEU 선박 20척을 일시에 건조해 해상운송의 ‘비즈니스 클래스’를 만드는 것이 해결 방법이다. 선박 운항 속도를 높이면 운송 시간에 민감한 전자제품, 기계부품 등 고가의 화물 시장을 다른 선사로부터 빼앗아 올 수 있다. 항공편은 비싸고, 선박은 느리다고 생각하는 화주들이 분명 있다. 그들 입장에서 운송비는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운송 시간을 30% 줄이고, 정시 운항률을 90% 이상 달성하면 분명 비싼 운임을 감수할 것이다.

한국선박회사를 이용해 선박 20척 건조하고, 현대상선 별도 자회사가 이를 운영하면 된다. 2M 얼라이언스에서 신규 선박 건조를 못 하게 하면 현대상선과 전혀 다른 회사라고 하면 된다. 이 회사에서 현대상선 인력 뿐 아니라 한진해운 인력도 채용해 기항지를 최소화한 노선을 구성하면 승산있다.

현실성 없는 아이디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안 되는 이유만 생각하면 100개도 넘게 찾을 수 있다. 지금은 참신한 아이디어를 내야 할 때다. 새로운 수요를 창출해야 한다. 1만3000TEU 선박이 시장성이 있느냐. 화주들이 운임을 두 배 가량 낼 수 있느냐.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이것만이라도 제대로 연구해보자.”

부산신항 현대상선 컨테이너터미널

◆ “2M 얼라이언스 협력 결과는 현대상선의 성공이자 한국 해운업의 실패”

-최근 현대상선이 2M 얼라이언스에 정식 가입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대상선이 2M 얼라이언스에 가입했다고 보는 것이 좋다. 머스크, MSC가 자선기관도 아니고, 지금보다 더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만하면 최선의 결과를 얻어냈다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안 되는 게임이었다.

다만 협상 과정에서 아쉬웠던 점은 경영진이 2M과 계속 협상하되 실무자들은 디얼라이언스와 계속 접촉해 다른 협상카드를 만들었어야 했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중플레이를 해야 했는데 오히려 머스크가 월스트리트저널 등 외신에 현대상선을 받아줄 수 없다는 식으로 이중플레이했다. 현대상선이 불리한 조건에서 협상을 진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현대상선이 이번 협상으로 얻은 것이 있나?

“현대상선 입장에서 보면 이번 협상은 성공이다. 2M과 미주‧구주 노선에 투입할 선박을 새로 건조하지 않기로 했는데 이는 당분간 재정 부담을 덜 수 있다는 의미다. 2M의 선복량(적재용량)을 일부 받았는데 이 역시 영업력을 키울 기회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국가적으로 봤을 땐 이번 협상은 실패다. 한국은 당분간 대형 컨테이너선을 건조할 수 있는 길이 막혔다. 세계 5위 원양선사라는 꿈이 꺾였다. 조선업과의 상생 발전도 한 걸음 뒤로 후퇴했다.”

-2M은 3년 뒤 현대상선의 재무 구조가 개선되면 선복 공유 협정을 맺기로 했다. 정식 회원사로 받아줄 수도 있다는 의미인데, 현대상선이 2M과 계속 협력하는 것이 좋은가?

“3년 뒤 상황을 봐야 한다. 2M이 알아서 다 챙겨줄 것이라고 보는 건 순진한 생각이다. 그들도 장사꾼이다.

머스크는 덴마크 회사고, MSC는 스위스 회사다. 덴마크와 스위스 모두 자국 내 화물창출력이 없다. 둘 다 다른 국가 화물을 실어 나르는 회사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면서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되는 분위기다. 보호무역주의에 민감한 2M은 화물창출력이 강한 국가랑 손을 잡으려고 할 것이다. 한국은 아시아에서 화물창출력이 강한 국가 중 하나다. 2M도 지금 한국 선사와 제휴하는 것이 이득인 상황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협력을 결정한 것 아니겠나. 머스크, MSC는 절대 손해보는 장사는 안 하는 회사들이다. 이런 점을 고려해 협력 지속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미국 롱비치터미널 게이트

-현대상선은 스페인 알헤시라스터미널에 이어 미국 롱비치터미널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두 터미널 인수가 현대상선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는지?

“터미널은 무조건 확보해야 한다. 스페인 알헤시라스터미널은 좋은 자산이다. 근처에 머스크 터미널이 있지만, 노후 시설이라 조만간 개보수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현대상선이 이를 이용하면 알헤시라스터미널을 잘 활용할 수 있다. 나중에 남미, 대서양, 아프리카 지역 등 다양한 곳에 노선을 개설하기 위해서라도 확보할 필요가 있다.

롱비치터미널은 개인적으로 안타깝게 생각한다. MSC가 롱비치터미널을 실질적으로 소유하게 되면서 한국 터미널이 외국 터미널이 됐다. 하지만 MSC가 우선협상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현대상선이 협상을 안 할 수가 없었다. 롱비치터미널 정도는 확실하게 확보를 해야 했는데 정부와 법원에서 관심이 없었다.”

◆ “SM그룹 저운임 정책, 국내 선사에는 독 될 수도”

-한진해운 일부 노선을 인수한 SM그룹은 앞으로 저운임 전략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성공 가능성이 있다고 보나?

“SM그룹의 성공 여부는 지켜봐야 안다. 새롭게 시작해야 되는데 기존 선사들이 자리 잡고 있는 틈을 비집고 들어가기 어려울 것이다. 특히 한진해운의 후광을 이용하기는커녕 ‘한진해운’ 이름이 붙으면 화주들이 화물을 안 주는 상황이다. 쉽지 않다.

SM그룹의 전략은 명확하다. 저가항공사와 같다. 지금 시장에 나와 있는 싼 배를 사거나 빌려서 저운임으로 영업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장 운임이 바닥인 상황에서 SM그룹이 저운임 전략을 펼치면 오히려 현대상선이 죽을 수 있다. 아시아 역내에서 안정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고려해운, 흥아해운, 장금상선 등 중견 선사들도 운임 전쟁에 휘말리게 된다.

물론 SM그룹은 비즈니스적 측면에서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다. 하지만 SM그룹의 전략으로 한국 선사들만 죽으면 도대체 대한민국 해운 정책이라는 것은 뭐가 되는 것이냐.”

-그렇다면 SM그룹이 한진해운 노선을 인수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보는 건가?

“그렇다. SM그룹이 한진해운 자산을 가져간 이유는 해양수산부가 힘이 없기 때문이다. 해수부는 법원이 절차대로 진행하는 것을 어떻게 하겠냐고 한다. 하지만 해수부는 법원에 해운 정책 방향을 설명하고 현대상선을 우선적으로 고려해달라고 하든지, 산업은행이나 금융위원회를 붙잡고 비싸더라도 현대상선이 인수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했어야 했다.

SM그룹이 한진해운 자산을 인수하면서 한국 해운업은 한진해운 법정관리 이전 체제로 돌아가게 됐다. 세계적인 추세를 봐라. 인수합병(M&A)이 활발하다. 심지어 조심스럽고 신중하기로 소문난 일본 선사들도 컨테이너 부분을 합치기로 했다. 우리나라만 후퇴하고 있다. 국가적인 해운 비전이 없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다.

잘못된 결정이었지만 이젠 어쩔 수 없다. SM그룹은 SM그룹대로 가고, 현대상선은 2M 얼라이언스 일원으로 다른 길을 가야 한다. 대신 아까 말한대로 24노트의 1만3000TEU급 선박 20척으로 새로운 길을 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