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IT 공룡들이 앞다퉈 인공 지능(AI) 기술을 공개하고 있다. 구글의 자회사 딥마인드(Deepmind)는 AI 훈련에 활용한 모든 소스코드(프로그래밍 언어로 나타낸 설계도)를 공개하기로 했으며, 애플의 루스 살라쿠디노프(Russ Salakhutdinov) AI 개발 책임자는 최근 한 강연에서 연구 결과 공개를 암시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애플이 그간 연구 결과를 공개하는 데 인색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주목할 만한 움직임이다.

업계 전문가들은 이들 기업의 기술 공개가 AI 생태계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분석한다. 애플리케이션 프로그래밍 인터페이스(API)를 공개함으로써 고객사가 될 만한 업체들을 우군(友軍)으로 두고, 자사에 유리한 AI 생태계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주 목적이라는 얘기다.

◆ 딥마인드 훈련 플랫폼 개방한 구글...페이스북도 “AI 연구 논문 공개해야”

딥마인드는 지난 5일(현지 시간) AI 훈련에 활용한 모든 소스코드를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딥마인드랩의 미로 게임 플랫폼. AI는 미로안의 사과를 찾아 점수를 획득해야 한다.

딥마인드는 머신러닝 플랫폼 ‘딥마인드랩(DeepMind Lab)’의 소스코드를 개발자 커뮤니티 ‘깃허브(GitHub)’를 통해 공개할 계획이다. 딥마인드랩의 소스코드가 깃허브에 공개되면, 구글 소속이 아닌 개발자들도 딥마인드의 AI 시험 방식을 활용해 자체 AI를 테스트해볼 수 있다.

셰인 렉(Shane Legg) 딥마인드 공동 창업자는 최근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다른 회사 개발자들이) 딥마인드의 AI 훈련 방식을 잘 활용한다면, 딥마인드를 이길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블룸버그는 “이번 결정은 AI 관련 연구 결과를 더 많이 개방하겠다는 딥마인드의 의지를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구글은 최근 미국 게임 개발사 블리자드와 협력해 게임을 활용한 AI를 연구하기로 했는데, 이 업무 제휴 역시 구글의 기술 개방 의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IT 업계 관계자들은 구글의 소스코드 공개가 ‘오픈 AI’를 의식한 결정이라고 분석한다. 오픈 AI는 일론 머스크(Elon Musk) 테슬라 CEO, 피터 틸(Peter Thiel) 페이팔 공동 창업자 등이 설립한 비영리 연구 기관이다. 지난 4월 ‘오픈 AI 짐(Open AI Gym)’이라는 자체 AI 훈련 플랫폼을 공개한 바 있다.

이런 의견에 대해 셰인 렉 딥마인드 공동 창업자는 “구글 딥마인드의 머신러닝 연구 커뮤니티는 (오픈AI의 등장 이전부터) 언제나 개방돼왔다”며 “딥마인드는 연간 100여개의 AI 관련 연구 논문을 발행해왔다”고 말했다.

페이스북 역시 AI 기술 개방에 찬성하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얀 레쿤(Yann Lecun) 페이스북 AI 부서 책임자도 지난달 인터뷰에서 “AI 개발자들의 연구 논문 발행은 지적 영향력을 보여주는 수단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논문을 통한 기술 공개에 힘을 실어준 것이다.

◆폐쇄적이던 애플도 결국...AI 분야 연구 공개 결정

구글·페이스북 뿐 아니라 애플 역시 AI 연구 결과를 공개하고 외부 개발자들의 참여를 허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미국 블룸버그, 더버지 등 외신들은 6일(현지 시간) 애플이 AI 연구 결과 중 일부를 공개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애플은 그동안 보안을 중요시해 음성인식 AI 비서 ‘시리(Siri)’, 자율 주행차 등의 연구를 폐쇄적으로 진행해왔다.

폐쇄적인 AI 연구는 결국 애플의 패인(敗因)이 됐다. 더버지는 시리가 AI 전문가들 사이에서 아마존 ‘알렉사(Alexa)’, 마이크로소프트(MS)의 ‘코타나(Cortana)’, ‘구글 어시스턴트(Google Assistant)’ 등에 비해 기능이 단조롭고 멍청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고 전했다.

루스 살라쿠디노프 애플 AI 개발 책임자가 NIPS 컨퍼런스에서 발표하고 있다.

AI 기술 공개에 폐쇄적이던 애플이 ‘개방’ 쪽으로 돌아선 것은 최근의 일이다. 살라쿠디노프 애플 AI 개발 책임자는 6일(현지 시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신경정보처리시스템(NIPS) 컨퍼런스’에 참석, 시리 실행 화면을 연상시키는 프리젠테이션 화면을 보여주며 “애플이 연구 논문을 발행할까요? 네! 애플이 AI 학계에 참여할까요? 네!”라고 말했다.

◆아마존, 인텔과 손잡고 인터페이스 공개…"AI 비서 우리 것"

아마존 AI 비서 알렉사를 탑재한 인텔의 스마트 홈 스피커 소개 영상 캡쳐

스마트 홈 기기의 선두주자 아마존 역시 AI 비서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인텔과 손잡고 기술 개방에 나섰다.

아마존은 지난달 30일 ‘아마존 웹 서비스 컨퍼런스(AWS)’를 개최하고 음성 인식 AI 비서 알렉사를 기반으로 제품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 인텔과 제휴를 맺었다고 발표했다. 아마존과 인텔은 내년 1분기 중 알렉사를 탑재한 인텔 스마트 홈 스피커의 레퍼런스 디자인을 내놓을 예정이다. 레퍼런스 디자인이란 다른 제조사가 모방할 수 있도록 공개된 기술 청사진을 뜻한다.

아마존은 지난해에도 알렉사용 API와 소프트웨어개발자키트(SDK)를 공개해 서드 파티(주어진 규격에 맞게 제품을 생산하는) 개발자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아마존의 알렉사와 연동한 LG전자의 스마트씽큐 허브. 냉장고, 에어컨, 세탁기 등 가전제품에 스마트씽큐 센서를 부착해 기기들을 손쉽게 관리, 제어할 수 있다.

알렉사의 기술 개방은 효과가 있었다. LG전자는 지난 9월 스마트홈 서비스인 ‘스마트씽큐(SmartThinQ) 허브’에 알렉사를 연동한다고 밝혔으며, 로지텍 역시 지난 10월 스마트 홈 서비스인 ‘하모니 홈 허브(Harmony Home Hub)’와 알렉사를 연결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외에도 알렉사와 연동되는 스마트 워치, 태블릿 PC 등이 잇달아 등장하고 있다.

더버지는 “그동안 아마존 ‘에코(스마트 홈 스피커)’를 따라한 제품은 많았지만, 누구도 뛰어넘지는 못했다”며 “하물며 인텔과 손 잡은 아마존 에코가 시장을 장악하는 것은 시간 문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