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약 내년에 죽는다면 계속 병원에서 약물 치료로 고통 받을까? 아니면 집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마지막을 준비할까?’

비현실적인 고민이 아니다. 미국의 한 헬스케어 스타트업이 환자의 ‘죽음 시기를 예측하는 알고리즘(death predicting algorithm)’을 만들어 죽음이 얼마 남지 않은 환자들이 집에서 말기 환자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해 관심을 끌고 있다.

2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헬스케어 기업 ‘애스파이어 헬스(Aspire Health)’가 환자의 여생을 측정하는 알고리즘을 개발해 환자들이 치료비를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남은 생을 병원에서 고통받으며 보내지 않을 수 있도록 했다고 보도했다.

죽음 시기를 예측하는 알고리즘의 도움으로 미리 집에서 말기 환자 치료를 받는 환자

전문가들은 환자들이 죽음 예측 알고리즘을 이용하면 환자의 상태를 정확히 파악해 과한 의료비 지출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미국 연간 치료비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1500억달러(약 175조8600억원)가 환자들이 죽기 직전 해에 지출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애스파이어 헬스가 자체적으로 미국 19개주에서 우대보험에 가입된 2만명의 환자들을 조사 한 결과에 따르면, 죽음을 미리 예측해 집에서 말기 환자 치료를 받으면 환자 한 명당 8000달러에서 2만달러까지 의료비 지출을 줄일 수 있었다. 애스파이어 헬스는 죽음 예측 알고리즘이 의료비 지출을 줄일 수 있다는 이유로 의료보험사와 협업 중에 있다.

애스파이어 헬스의 공동 창업자 윌리엄 프리스트(William Frist)는 “의료보험사들은 죽음을 준비해야 할 환자들에게 너무 많은 치료비를 지출한다”며 “애스파이어 헬스와 협업한다면 더 적은 돈으로 환자들에게 더욱 만족스러운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애스파이어 헬스는 죽음 예측 알고리즘으로 특정 환자의 의료 기록을 분석해 환자의 죽음 시기를 일주일, 6주 혹은 1년 단위로 알 수 있다고 밝혔다. 또 에스파이어 헬스 소속 전문의들이 환자 주치의와 상의해 언제쯤 그 환자가 말기 환자 치료를 받는 게 좋을지 최종 결정한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이 알고리즘에 대해 환자들이 거부감만 없다면 마지막까지 병원에서 고통받기 보다는 죽음 시기를 예측해 미리 집에서 고통 완화 치료만 받는 게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최근 애스파이어 헬스는 죽음 예측 알고리즘의 경제적 가치를 인정받아 구글 벤처 투자회사 GV(Google Ventures)에서 3200만달러(약 375억6100만원)의 자금을 투자받았다.

다만 애스파이어 헬스는 알고리즘을 통해 죽음 시기를 예측한 것이 빗겨나갈 때도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판단했지만 더 오래 사는 환자들도 있었다는 것이다.

데이비드 티몬스(David Thimons) 애스파이어 헬스 수석 의사는 “우리가 가끔 틀릴 때도 있는데, 그 때가 우리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강조했다.

애스파이어 헬스가 환자들의 의료 기록을 분석하는 것을 두고 사생활 침해라는 주장도 나왔다. 뉴욕대 의학윤리학자 아서 캐플란(Arthur Caplan)은 “한 민간 기업이 환자들의 진료 기록을 염탐하고 환자들의 사전 동의 없이 그들의 주치의와 상담하는 행위는 명백한 사생활 침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애스파이어 헬스는 “환자의 의료서비스의 질적 향상을 위해 의료보험사와 협력해 환자의 의료 데이터에 접근하는 것은 의료보험법에도 전혀 접촉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브래드 스미스 애스파이어 헬스 공동창업자 겸 최고경영자

다만 애스파이어 헬스는 환자의 죽음을 예측한다는 데서 나오는 윤리적 거부감을 완화하기 위해 소속 의사와 간호사들이 환자들에게 ‘기대수명’ 또는 ‘말기 환자 치료’ 등의 단어를 사용하지 말라고 권고하고 있다.

애스파이어 헬스의 또다른 공동창업자인 브래드 스미스(Brad Smith) 최고경영자(CEO)는 “우리는 환자들에게 그들이 이미 아프고 앞으로 더 아파질 것이란 걸 이해시키려고 노력한다”며 “그리고 나서 우리가 무엇을 하는 회사인지 천천히 설명해준다”고 말했다.

애스파이어 헬스는 실제로 환자들이 말기 환자 치료에 편히 적응할 수 있도록 치료는 완전히 환자의 집 안에서 이뤄지도록 한다. 또 육체적 치료뿐만 아니라 심적, 감정적 안정을 위한 치료도 병행한다. 이와 함께 간호사들이 환자를 정기적으로 방문하고 사회복지사들도 항시 전화 상담을 위해 대기하고 있다.

하지만 애스파이어 헬스는 모든 환자들이 이 방식에 동의하는 건 아니라며 약 15%의 환자들이 애스파이어 헬스의 말기 환자 치료를 거부한다고 밝혔다.

애스파이어 헬스 간호사이자 의학 디렉터인 티파니 룬스포드(Tiffany Lunsford)는 “이 프로그램의 핵심은 환자들이 삶을 완전히 포기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환자 개개인과 함께 진정한 치료의 목적에 대해 상의하고 그들이 진짜로 원하는 치료 방식을 택하게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