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저의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
현대자동차는 지난 22일 국내 준대형 세단 최강자로 군림해온 그랜저의 6세대 모델인 '그랜저IG'를 출시했다. 올해로 출시 30년을 맞은 그랜저는 세대를 거치면서 계속 젊어졌다.
현대차는 광고를 통해 그랜저 세대별로 추구하는 가치를 보여줬다. 처음에는 클래식함을 강조하며 '그랜저=회장님의 차'를 내세웠던 현대차는 이제 차량의 역동성을 부각해 '그랜저=성공한 젊은 사업가의 차'라는 이미지를 앞세우고 있다.
현대차는 지난 3일 발표한 그랜저IG 사전 광고에 도심을 질주하는 그랜저가 드리프트(차량을 미끌어뜨려 코너를 도는 주행)하는 장면을 넣었다. 정숙성과 편안함을 강조하는 고급 세단의 광고로선 '파격'이다.
시장의 반응은 좋은 편이다. 지난 2일 사전 예약 첫날에만 1만6000대의 계약 건수를 기록하며 종전 예약판매 첫날 기록을 깼다. 21일까지 진행된 사전 판매에서 2만7000만대의 계약이 체결됐다.
◆ 1986년 선보인 1세대 그랜저 "고급 승용차의 최고봉"
선 굵은 클래식한 디자인. '각 그랜저'로 불리는 그랜저 1세대의 경우 TV 광고 없이 신문 지면 광고만 했다.
'고급승용차의 최고봉 그랜저 출시'라는 문구 속 고급승용차는 한자로 적혀있다. 당시 현대차가 포드 독일 법인에서 들여와 조립 생산해 판매하던 고급차 '그라나다'를 능가한다는 문구도 눈에 띈다. 그라나다는 1978년부터 1985년까지 판매됐다. 1986년 출시한 1세대 그랜저는 그 후속 모델 격이다.
당시 그랜저는 운전기사가 모는 '쇼퍼 드리븐(Chauffeur Driven)'차로 기획됐다. 지금으로 치면 제네시스 EQ900이다.
현대차는 그랜저(Grandeur)라는 이름에 웅대, 장엄, 권위라는 의미를 담았다. "품위도 정상, 사업도 정상"이라는 카피도 눈길을 끈다. 대형세단답게 정숙성과 넓은 실내 공간도 강조했다.
◆ 2세대 "톱 클래스 세단 - 뉴 그랜저"(1992년)
트렌치코트를 걸치고 중절모를 쓴 중년 신사 두 명이 길을 걷는다. 중후한 클래식 음악이 배경에 깔리고 유선형의 검은색 세단이 화면에 비친다. 1992년 출시한 '뉴 그랜저'의 TV 광고다.
그랜저 2세대인 뉴 그랜저는 유선형 디자인을 채택했다. 2세대 그랜저는 현대적인 디자인에 넓은 실내 공간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광고에선 '가장 많이 팔리는 차'라는 것을 강조한다.
두 중년 신사가 등장하는 '두 정상' TV광고에서 "한 시대를 이끌어가는 사람이 있다. 한 시대를 이끌어가는 명차가 있다"는 내레이션은 당시 중장년층으로부터 호응을 얻었다.
신문 광고에서도 '정상의 자리가 하나이듯 정상의 세단도 하나입니다'라며 최정상 세단임을 부각했다. 그 당시 그랜저와 경쟁하는 대형차는 없었다.
하지만 1996년 현대차가 '다이너스티'를 발표하면서 그랜저는 최고급 차의 지위를 넘겨주게 된다. 다이너스티는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마지막으로 탄 차다.
◆ 3세대 "큰 남자의 여유 - 그랜저XG"(1998년)
1998년 '그랜저XG'가 출시되면서 그랜저는 최고급 세단에서 부유층의 대중 세단으로 포지션을 바꿨다. 제품 출시 당시 대형 세단을 대표하는 검정색이 아닌 흰색·금색 차량을 광고 모델로 삼아 대중적인 이미지를 살렸다.
신문 광고에선 '클래식은 오래된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이다'는 카피로 클래식을 재해석하며 변화를 강조했다. 2001년 발표한 후속 신문 광고에선 '내가 이끌어가는 세상', 2002년 광고에선 '오늘 변화하지 않으면 내일을 이끌 수 없다'라는 카피를 사용했다.
그랜저XG를 시작으로 그랜저는 다이너스티나, 에쿠스 등 상위 차량과 타깃 고객을 확실히 나눴다. 그랜저XG는 '성공한 한국 중장년의 상징' 또는 '사모님의 차'로 자리잡는다. 오너 드리븐(Owner Driven)차로 자리매김한 것도 이때부터다.
◆ 4세대 "누리고 싶은 특별함 - 그랜저TG"(2005년)
"당신, 멋지게 사셨군요"
출시 20년을 맞은 그랜저는 국내 대표 자동차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이런 자신감을 반영하듯 광고에선 '그랜저를 타면 누구나 인정한다'는 문구를 강조했다. 자동차 성능 소개를 해외 수상 경력으로 대체한 것도 눈에 띈다.
그러나 2008년 일부 페이스 리프팅 한 '그랜저 뉴 럭셔리' 광고가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어떻게 지내냐는 친구의 말에 그랜저로 대답했습니다"는 TV 광고 대사가 물질만능주의의 전형적인 사례로 당시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이 광고는 숱한 패러디를 양산하며 '저런 친구라면 만나지 않겠다'라는 비난까지 받아야 했다.
그랜저TG 자체에 대한 평가도 좋지 않았다. 비슷한 시기에 출시한 NF쏘나타와 같은 엔진을 사용해 소비자의 원성을 샀다. 게다가 현대차가 2008년 '제네시스'를 출시하면서 그랜저가 갖고 있던 '프리미엄 세단' 이미지도 약해졌다.
◆ 5세대 "다섯번째 그랜저이자 첫번째 그랜저 - 그랜저HG"(2011)
2011년 5세대 그랜저인 그랜저HG부터는 역사성을 강조하며 이전과는 다른 광고전략을 선보였다. 볼리비아 우유니 소금사막을 배경으로 촬영한 광고에선 1986년 1세대부터 5세대까지 다섯 모델이 모습을 바꾸며 질주한다.
'26년의 혁신'을 언급하는 다른 광고에선 한 땀 한 땀 바느질로 양장본 도서를 만드는 장인을 비춘다. 이 광고는 'New & Original'이라는 대사로 끝난다. 새로움과 정통성을 함께 강조하는 '투 트랙' 전략을 썼다.
그랜저HG는 디젤, 하이브리드 모델로 라인업이 세분화됐다. 세 모델이 한 광고에 나오기도 했다. 배트맨, 슈퍼맨 등 미국 히어로 캐릭터를 딴 광고도 인상적이다.
이때부터 현대차는 TV와 지면 광고를 벗어나 체험형 마케팅 기법들을 활용하기도 했다. 폭넓은 고객 시승행사와 4D 영화관을 이용한 광고 등이 화제가 됐다.
◆ 6세대 "다시 처음부터 그랜저를 바꾸다 - 그랜저IG"(2016년)
6세대 그랜저IG의 광고는 혁신에 방점을 찍고 있다. 모바일 시대에 맞춰 웹무비와 웹툰을 통해 차를 처음 공개했다. 젊은 세대를 노린 디지털 마케팅 전략이다.
출시와 함께 공개한 영상 광고에는 그랜저IG가 도심을 고속으로 질주하는 모습을 담았다. '이건 내가 알던 그랜저가 아닌데?', '다시 처음부터 그랜저를 바꾸다' 등의 문구로 변화를 강조한다.
그랜저 광고를 제작한 이노션 월드와이드의 관계자는 "기존의 그랜저 수요층보다 더 젊은 3040 소비자를 위해 '다시, 처음부터 그랜저를 바꾸다'로 캠페인 방향성을 잡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사전 마케팅 단계에서는 광고가 아닌, 웹무비, 웹툰 등 컨텐츠로 3040 신규 수요층에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려 했다"며 "그랜저가 변화와 혁신의 브랜드로 새롭게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하는데 초점을 맞췄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