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외유천(天外有天)’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늘 밖에도 또 다른 하늘이 있다는 뜻입니다. 신진 과학자들이 무한한 꿈을 꾸며 미래를 위한 연구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힘이 있었다. 꿈이나 미래라는 단어를 얘기할 땐 눈을 빛내며 손짓으로 감정을 전하기도 했다.

서경배 과학재단이 1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재단 운영 계획과 포부를 밝혔다. 서경배 과학재단은 기초과학 연구의 중요성 및 장기적 지원의 필요성을 바탕으로 설립된 공익재단이다.

이날 서경배 회장은 손짓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등 적극적으로 재단 운영 계획을 설명했다. 재단의 미래를 묻는 질문엔 허공을 응시하며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생명과학' 분야의 기초 과학 연구를 지원할 예정이며, 지원 대상은 국내외 한국인 신진연구자 중에 선발한다. 재단은 매년 공개 모집을 통해 3~5명의 연구자를 선발하고, 각 과제당 5년 기준 최대 연구비 25억원을 지원할 예정이다. 우수 연구자에 대해서는 중간 심사를 거쳐 보다 장기적인 지원을 계획 중이다.

재단 이사장은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이 맡으며, 서 회장이 기부한 3000억원 규모의 개인 보유 주식을 기반으로 운영한다.

서 회장은 “외국에는 솔크연구소(Salk Institute), HHMI(Howard Hughes Medical Institute)처럼 장기적인 지원으로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는 재단이 많다”며 “3000억원의 기금으로 30년간 운영할 수 있을 것이라 예상한다. 앞으로 재단 기금을 1조원까지 늘려 50년, 100년 이상 장기적으로 운영하고 싶다”고 말했다.

서 회장은 이날 기자 간담회에서 40여 분간 질의 응답 시간을 가지며 재단 설립 의도를 전했다. 그는 90년대 어려움에 빠진 회사가 연구 투자로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며, “그때 느낀 과학의 위대함에 재단 설립을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어렸을 적 만화 ‘아톰'을 즐겨 봤던 일화를 전하며 과학에 대한 애정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날 서 회장은 ‘미래’, ‘희망’, ‘꿈', ‘인연’이란 단어를 힘주어 말했다. 그는 “돌이켜보면 참으로 오랫동안 많은 사람으로부터 관심과 사랑을 받으며 살아왔다”며 “제가 받아온 과분한 관심과 사랑을 우리 사회에 반드시 돌려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연단에 선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

문학적 수사로 뜻을 전하기도 했다. 재단의 연구 결과가 아모레퍼시픽의 상품 개발에 쓰이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을 받자, “재단이 지원하는 순수 과학과 회사가 활용하는 기술은 별개”라며 “새도 높이 날아야 멀리 본다. 회사는 낮게 나는 새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높이 날아야 한다. 그래야 바다를 건너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에 일조할 수 있다”고 답했다. “꿈은 혼자 꾸면 ‘백일몽'이지만 함께하면 현실이 된다”며 미래를 위한 투자임을 역설하기도 했다.

서경배 회장은 이미 기업 내 복지재단이 있음에도 특별히 본인의 이름을 내건 재단을 만드는 이유가 있느냐는 질문에 “록펠러, 빌 게이츠도 이름을 걸고 재단을 운영한다. 잘못 운영하면 내 이름에 먹칠하게 된다. 책임감을 보여주기 위해 이름을 걸게 됐다”고 말했다.

아모레퍼시픽은 서성환 선대회장 시절 태평양장학문화재단(현 아모레퍼시픽재단), 태평양복지재단(현 아모레퍼시픽복지재단)을 1973년과 1982년에 각각 설립한 바 있다.

서경배 과학재단 연구 지원 사업의 1차연도 과제는 2016년 11월에 공고할 예정이며, 2017년 1월부터 2월까지 과제 접수 후 1차 심사(3~4월)와 2차 심사(5월)를 거쳐 6월에 최종 선정자를 발표한다.

선발 과정은 1차 서류 심사, 2차 연구계획서(Full Proposal) 서류 심사 및 토론 심사 등으로 진행된다. 연구 과제의 독창성, 파급력, 연구 역량 등을 중심적으로 심사할 예정이다.

과학자문단과 심사위원단은 국내외 전문가들로 구성할 계획이다. 과학자문단은 재단의 전반적인 운영 사항 및 해외 연구 지원 사업의 자문을 맡으며, 심사위원단은 분과별 전문가들로 이루어져 연구 지원 사업의 심사를 맡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