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 심장을 둘러싼 그물망 형태의 소프트 심장 자극기.

심장이 멈추면 온몸에 피가 돌지 못해 죽음에 이른다. 국내 연구진이 망가진 심장을 되살리는 심장 자극기를 개발했다. 동물 실험에서 심장에 흐르는 전기신호를 읽고 문제가 생기면 바로 새로운 전기신호를 보내 심장 기능을 정상화시켰다.

기초과학연구원 나노입자연구단의 김대형 연구위원(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교수)은 "나노선과 고무를 소재로 한 심부전(心不全) 치료용 '소프트 심장 자극기'를 개발했다"고 22일 밝혔다. 심부전은 심장이 혈액을 제대로 보내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심장은 체내에서 발생하는 전기신호에 따라 심장 근육을 수축했다가 늘리기를 반복해 온몸으로 혈액을 내보낸다. 심장 근육에 있는 혈관이 막히면 근육세포가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받지 못해 죽는다. 결국 이곳으로 전기신호가 전달되지 못해 심부전이 일어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국내 심부전 환자는 2011년 11만명에서 작년 12만명으로 증가 추세이다. 심부전증은 진단 환자의 30~40%가 진단 후 1년 내 사망하고, 60~70%는 5년 내 증상 악화나 급성 발작으로 사망할 만큼 치사율이 높다.

연구진은 고무에 전기가 잘 흐르는 은(銀) 나노선을 섞어 뱀처럼 구불구불한 선들이 연결된 그물망을 만들었다. 나노선은 지름이 150㎚(나노미터, 1㎚는 10억분의 1m)에 길이 30㎛(마이크로미터, 1㎛는 100만분의 1m)이다. 고무 재질이라 심장이 늘어날 때 같이 늘어나 심장의 운동을 방해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실험용 생쥐에게 심근경색을 일으킨 다음, 그물망으로 심장을 감싸고 미세한 전기 자극을 줬다. 심장은 다시 정상적으로 뛰기 시작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김대형 연구위원은 "이번 심장 자극기는 기존 기술의 장점을 결합한 형태"라고 말했다. 기존 심장 자극기는 전극이 닿는 심장 일부만 자극할 수 있다. 원칙적으로 한쪽에 전기 자극을 주면 심장 전체로 전류가 전달돼야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심부전에 걸리면 심장 근육이 손상된 부분이 많아 전류가 막히기 때문이다. 또 심장 전체를 탄성이 있는 그물망으로 감싸 심장을 강화하는 심근 성형술이 있지만 전기 자극은 주지 못했다. 소프트 심장 자극기는 두 방법을 결합한 것이다.

김대형 연구위원은 "해외 기업과 상용화 논의를 진행 중"이라며 "심장이식 수술을 받기 전까지 6개월 동안 심장 기능을 유지하는 장치로 먼저 상용화될 것"이라고 밝혔다. 상용화까지는 추가 동물 실험과 인체 임상 시험을 거쳐야 하므로 최소 5년은 걸릴 것으로 전망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인 '사이언스 중개의학' 23일자 인터넷판에 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