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하반기 구조조정 중 실업대책 등 추경 불가피"
국민의당 "추경 편성해야"...새누리와 더민주는 유보적, 정부는 재정건전성 우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지난 9일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 수준인 연 1.25%로 낮춰 선제적인 경기대응 의지를 드러내면서 정부의 재정정책 공조 여부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전문가들은 하반기 본격화될 산업 구조조정이 경기를 위축시킬 수 있다며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 등 확장적 재정정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그러나 정부는 재정건전성 악화를 우려하며 손사래를 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국민의당이 추경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밝힌 반면, 새누리와 더민주는 아직 유보적인 입장이다.

◆ “경기 살려라” 기준금리 전격 인하에 재정확대 목소리도 높아져

12일 정부와 한은 등에 따르면 경제성장률 하락 등 경기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재정·통화 정책패키지가 필요하다는 각계의 목소리가 높다. 통화당국인 한은은 지난 9일 금통위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역대 최저 수준인 연 1.25%까지 낮추면서 공은 재정당국인 기획재정부로 넘어왔다.

이주열 한은 총재(사진)는 기준금리 인하 직후 기자회견에서 "정부도 재정이 성장에 미칠 영향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통화정책만으로는 지금의 저성장과 성장잠재력 악화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이달 중 기획재정부가 발표할 예정인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는 경기부양을 위한 재정 확대 방안이 어떤 식으로든 포함될 전망이다. 정부는 이미 연초부터 '소비절벽' 우려에 대응하기 위해 재정 조기집행 규모를 확대해온 상황이다. 지난 4월에는 상반기 중앙정부의 재정집행률 목표치를 58.0%에서 59.5%로 올렸고, 지방재정 집행률 목표도 56.5%에서 58.0%로 상향 조정했다. 하반기에는 공기업 투자를 확대하고 지방자치단체들의 추경 편성을 독려해 재정을 6조5000억원 이상 더 푸는 '재정 보강' 효과를 내겠다는 방침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하반기에는 6조5000억원 이상으로 재정을 보강하겠다는 방침"이라며 "다만 구체적인 규모는 검토중이며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통해 발표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무리하지 않고 재정을 확대하는 방안으로는 ▲기금지출 증액 ▲정책금융 확대 등을 꼽고 있다. 그러나 전자는 직접적인 예산 지출보다 효과가 떨어지고 후자는 구조조정으로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자본확충이 어렵게 성사된 상황에서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 전문가들 “추경 등 강력한 재정확대 필요”...정부는 손사래

전문가들은 추경을 포함한 강력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문하고 있다. 하반기 본격화될 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야기될 실업대책 등을 위해서는 추경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반면 정부는 추경에 대해 국가채무 부담 증가 우려 등으로 아직까지는 손사래를 치고있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완화적 재정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부는 추경을 하지 않는다고 얘기하고 있지만, 전향적으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며 “투자를 늘리기 위한 규제 완화 및 세제 지원도 계속돼야 한다”고 말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재정정책 역시 필요한 시점이다. 금리정책을 쓴 이유 중 하나는 구조조정 과정에서의 경기 악화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며 “특히 정부가 실업대책과 관련된 자금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천구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통화정책 효과를 더 발휘하려면 재정정책이 같이 가야 한다. 추경이 필요할 수도 있다”며 “결국 경기가 계속 안 좋으면 금리 인하만으로는 사실 경기 하강을 막기 어렵다. 강력한 재정정책이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좀 더 분명한 경기 확장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한은 금리인하 뿐 아니라 정부의 재정정책도 이에 호응할 필요가 있다”며 “다만 이미 금리가 인하됐기 때문에 확장적 거시정책을 쓰는 것과 동시에 미시적 구조조정 노력도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정부는 국가재정법에서 추경 편성요건으로 경기 침체·대량실업 등 대내외 여건에 중대한 변화 발생 등을 명시하고 있어 현 상황이 이에 해당하는지도 따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직 구조조정에 따른 대량실업 사태가 현실화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재정건전성을 우려해 추경이나 재정 대폭 확대에 신중한 입장이다.

◆ “추경 재원은 적자 국채 발행 필요...재정건전성 우려”

유일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사진)은 지난달 구조조정을 위한 추경 편성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필요하다면 그렇게 할 수도 있다"고 원론적으로 답했다. 물론 추경 편성의 결단을 내리더라도 재원 마련은 또 다른 문제다. 통상 추경은 국고채 발행, 한국은행 잉여금, 세계잉여금(정부가 전년도에 쓰고 남은 돈), 정부기금 자체 재원 등으로 조달된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전까지만 해도 추경의 주요 재원으로는 세계잉여금과 한은 잉여금이 활용됐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인 2009년부터는 세수가 크게 줄면서 적자 국채를 발행하는 수밖에 없었다.

4년만에 '세수 펑크'를 면한 지난해 세계잉여금은 2조8139억원이었다. 이중 지방교부세 교부금과 공적자금상환기금에 쓰일 부분을 빼면 1조7000억원 가량 정도가 올해 추경에 쓰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2조원이 안되는 세계잉여금을 활용한 추경만으로는 기대효과를 내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결국 올해도 추경을 편성한다면 국채 발행이 불가피한 셈이다. 정부는 국가채무에 부담을 준다는 점을 걱정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는 40% 수준으로 다른 국가들과 비교해 매우 양호한 수준이다. 그래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나 국제통화기금(IMF)는 우리 정부에 재정정책을 확대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고령화에 따른 정부지출 자동증가분 때문에 중장기적으로 건전성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걱정하고 있다.

◆ 정치권 추경론 불 뗀 국민의당...거대 2당은 유보적

향후 추경 논의가 본격화될 경우 국회 통과도 중요한 변수다. 추경 등 재정 확대에 대한 논의는 국민의당에서 가장 먼저 운을 뗐다.

김성식 국민의당 정책위의장(사진)은 지난 10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기준금리 인하만으로 경제 위기에 대응할 수 없다"며 "추경 편성을 통한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 정책과 가계부채 증가를 억제할 수 있는 미시적 금융 정책이 함께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김 정책위의장은 이어 “국민 경제 위기가 고조되는 가운데 한국은행이 금리를 인하한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며 “바람직한 정책 패키지가 되기 위해서는 금리 인하가 가뜩이나 부푼 가계부채 증가로 이어지지 않도록 지난 2014년 완화된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을 정상화하고 추경을 편성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12일 조선비즈와의 통화에서 "구조조정에 대처하기 위해서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정책이 필요하다"며 "그간 야당은 정부가 추경안을 가져오면 실갱이하고 시간을 끄는 것이 관행이었고 정부는 국회를 피해가려고 재정정책을 왜곡시켰다"고 비판했다.

이어 "우리 경제당국이 남해안(조선업 분포 지역)에서 무슨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아는지, 알아도 그걸 피부로 느끼고 있는지 궁금하다"고 질타했다.

그러나 원내 절대 다수를 차지고 하고 있는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은 정부가 먼저 추경 논의를 꺼내지 않는 이상 국회에서 적극적인 논의가 어렵다는 입장이다.

김광림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은 이날 조선비즈와의 통화에서 "한국은행에서 정부에서 뭔가 해야할 것 아니냐고 했는데, 추경을 겨냥했다기 보다는 재정 조기 집행과 공기업 이런 쪽으로 본다"고 말했다. 김 정책위의장은 그러면서 "법률안은 국회가 제출할 권한이 있지만 추경예산안은 정부만 제출할 수 있다"며 "정부가 제출하지 않는데 당이 지금 내라 말아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국가재정법상 추경요건 조항이 엄격한데 현 상황이 거기 해당하는지 여부도 판단해야 하고 현재로서는 추경을 한다는 입장을 정한 게 없다"고도 했다.

다만 김 의장은 내년도 예산에 대해서는 "경기가 더 풀리지 않으면 재정을 좀 더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하지 않겠냐"고 말해 여지를 남겼다.

변재일 더민주 정책위의장도 "국가 부채가 얼마인데, 우리가 빚을 얻어서 추경을 하자고 할 수는 없지 않나"며 "구조조정하면서 돈이 얼마나 많이 들어가갰나, 그런데 야당이 어떻게 또 빚을 얻자고 이야기하나"라고 말했다. 그간 정부가 "경제가 잘되고 있다"는 입장이었는데, 야당이 "빚을 얻어서 추경하자"고 굳이 나설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