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부가 미세먼지 문제 해결 방안의 하나로 전기차를 포함한 친환경차·인프라 보급 확대를 제시했다.

2020년까지 신차 판매의 30%(연간 48만대 규모)를 친환경차로 대체하고, 전기차 충전소도 전국 주유소의 25% 수준인 3100곳까지 늘리기로 했다.

전기차, 수소차의 고속도로 통행료를 올 하반기에 한시적으로 감면하고, 2018년까지 모든 고속도로 휴게소에 전기차 충전소도 설치하기로 했다.

하지만 전기차 시장 육성에 가장 중요한 보조금 관련 내용은 미세먼지 대책에서 빠졌다. 자동차 제조사나 일반 소비자 입장은 고려하지 않고 ‘보여주기식 전시행정’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정부가 제시한 4년 후 친환경차 보급 목표를 달성하려면 시장이 지금보다 10배 커져야 한다. 현실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전기차 후진국’ 대한민국이 분위기 전환에 성공할 수 있을까?

올해 6월 부산모터쇼에서 공개된 GM의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카 볼트.

◆ 보조금 지원 줄이면서 시장 어떻게 키우나

올해 1~4월 국내에 신규 등록된 친환경 자동차는 1만5000대. 친환경 자동차에는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카,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카가 포함된다.

올해 1~4월 국내에 신규 등록된 전체 자동차 규모가 48만대인 것을 감안하면 친환경차 비중은 3%에 불과하다. 2020년까지 친환경 신차 판매 비중을 30%로 높이기 위해서는 시장을 10배 이상 키워야 한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올 들어 현대차 아이오닉, 기아차 니로의 인기에 힘입어 사상 최대 수준의 친환경차 판매가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올 연말까지 3만대 팔면 많이 팔리는 것”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파격적인 보조금 제공 없이 친환경차 시장의 성장만 기대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우리 정부는 친환경차 시장을 육성하겠다고 하면서도 정작 보조금은 축소했다. 전기차 구입 보조금은 작년 1500만원에서 올해 1200만원으로 20%가 줄었다. 완속 충전기 지원금은 600만원에서 400만원으로 줄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올해 전기차 보급대수는 8000대에 불과하다. 작년보다 5000대가 늘어났지만 전체 자동차 시장에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하다.

공공 전기차 급속충전시설이 올해 4월부터 유료로 전환된 것은 전기차 운전자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은 소식이다. 공짜로 쓰던 전기를 돈을 내고 써야하는데, 정부는 충전요금을 1킬로와트(㎾h)당 313.1원으로 책정했다. '1㎾h'는 전기 1㎾를 1시간 사용했을 때 전력량이다.

환경부는 "공공 급속충전시설의 전기료가 휘발유 가격의 44%, 경유 가격의 62% 수준"이라고 했지만 시장 확산에 방해가 되는 성급한 판단이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부산모터쇼에 등장한 도요타의 수소연료전지차 ‘미라이’.

◆ 휘발유보다 싼 경유…자동차 회사들도 경유차에 집중

국내 전기차, 하이브리드카 성장 부진은 정부 정책의 실패가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정부는 2009년부터 경유차를 친환경차로 분류, 각종 혜택을 제공했다. 자동차 회사들도 정부 정책에 발맞춰 경유차 개발에 집중했다.

정부는 '클린디젤' 차량을 확산하겠다며 유로6(디젤차 배기가스 규제) 기준을 충족하는 중소형버스 등을 구입할 경우, 휘발유차와의 차액을 지급하는 안도 검토했다. 2011년부터 5년간 사업비 1871억원을 들여 '클린디젤차 부품산업 육성 사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가장 큰 디젤 육성 정책은 세금 정책이었다.

소비자들의 경유차 선택을 유도하기 위해 휘발유에 더 비싼 세금도 물렸다. 국제 시장에서는 경유가 휘발유보다 비싸다.

하지만 한국은 반대다. 6월 2일(현지시각) 두바이유 가격 기준으로 배럴당 휘발유와 경유 가격은 각각 58달러(7만원)와 59달러(7만1000원)였다. 6월 3일 기준 서울 평균 휘발유 가격은 L당 1529원, 경유 가격은 L당 1313원이었다. 경유가 휘발유보다 가격 경쟁력을 갖자, 소비자들은 연료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경유차로 몰렸다.

하지만 이 같은 정책은 미세먼지와 배출가스 등 논란만 남긴채 정부는 과거 정책의 과오를 인정하고 경유차를 규제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권문식 현대자동차그룹 부회장(연구개발본부장) 1일 부산모터쇼 미디어 행사에 참석해 "디젤차 배기가스를 조절할 기술이 있지만 결국은 비용이 문제다. 디젤 차량 제작비가 더 늘어나더라도 친환경차에 대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뉴욕의 한 주유소. 전기차 판매만 허용하는 법안이 통과되면 2025년 이후 네덜란드에서는 주유소를 찾기 어려울 수도 있다.

◆ 신차 개발에 5년…”지금 시작해도 늦어”

자동차 업계는 신차 개발에 통상 5년 정도가 걸리는 것을 고려하면 2020년까지 국내 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친환경차 모델은 한정될 수 밖에 없다고 전망한다.

디자인과 성능, 연비 등을 고려해 신차를 시험하고 가격까지 책정하는데 시간이 걸리는데, 준비도 안된 상태에서 정부가 제시한 숫자를 맞출 수는 없다는 것이다.

현재 현대·기아차가 보유한 친환경 모델은 K5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K7하이브리드 등 12종. 권문식 현대차그룹 부회장은 “2020년까지 (친환경 차량) 28개 모델을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차 값도 문제다. 현재 경유차는 친환경차보다 가격 경쟁력이 좋다.

기아차의 중형 세단 K5는 2.0 가솔린(MX)모델 가격이 2204만~2817만원이다. 1.7 디젤(MX)는 2435만~2867만원으로 가솔린 모델보다 비싸지만, K5 2.0GDi 하이브리드(2824만~3139만원)보다 싸다.

경유차와 하이브리드카의 가격은 400만원 가까이 차이가 나지만 연비는 비슷하다. K5 경유차는 L당 16.5~16.8km, K5 하이브리드는 17.0~17.5km를 달릴 수 있다. 배출 가스 문제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소비자 입장에서는 경유차가 더 매력적이다. 보조금 확대 등의 특단의 대책이 나오지 않으면 시장이 하루 아침에 바꾸기 어렵다는 진단이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지금 살 수 있는 친환경차가 몇 종 안되는데 무조건 많이 팔겠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미세먼지가 문제라면 비현실적인 친환경차 육성 정책보다 중국처럼 5부제 확대 실시 같은 방안이 더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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