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7일 오전, 경기 화성시 현대·기아자동차 남양연구소 환경기술센터. 현대차 연구원들이 독자 개발한 전기자동차 ‘아이오닉 일렉트릭’의 출시를 앞두고 막바지 성능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아이오닉 일렉트릭은 1회 충전 주행거리가 191㎞로 국내에서 판매중인 전기차 중 가장 길다. 도심 기준 1회 충전 주행거리는 206㎞로, 국산 전기차 중 처음으로 200㎞ 고지를 밟았다는데 의미가 있다. 아이오닉 일렉트릭은 현대차의 전기차 사업에서 중요한 이정표가 될 차량이다.

이기상 현대차 전무(58·환경기술센터장)는 국내 친환경차 개발 역사와 궤를 같이 하는 산증인이다. 그는 현대차그룹 내에서 전기차·하이브리드카·수소연료전지차 등 친환경차 사업을 총괄하고 있다.

이기상 현대차 전무가 전기차 아이오닉EV의 성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 전무는 “전기자동차의 성능 척도를 ‘1회 충전시 주행거리’로만 따지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내연기관 차량에서 연비가 중요하듯이 전기차에서도 에너지소비효율이 중요하다. 현대차의 ‘아이오닉 일렉트릭’은 에너지소비효율이 동급 전기차 중 세계 1위”라고 했다.

이 전무는 “테슬라의 사업모델(독자 충전 인프라 구축)이 100~200대를 팔 때는 가능하지만, 세계 각국을 대상으로는 한계가 있다. 전기차의 핵심부품인 배터리 기술은 특허의 양이나 질적인 측면에서 도요타가 가장 앞서있다”고 했다. 그는 “현대차는 보급형 전기차의 주행거리를 확대하고, 향후 고성능 장거리 전기차 개발계획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전무는 또 “지금은 전기차 인프라 구축에 신경을 써야할 때”라며 “한국전력 같은 사업자가 관심을 가져야한다. 한전이 100% 주도하기 어렵다면 정부와 지자체, 자동차 회사가 힘을 합쳐 국가적인 인프라 구축을 위한 재원을 조성할 수도 있다”고 했다.

-현대차의 전기차 경쟁력을 우려하는 견해가 많다.

“쏘울EV는 노르웨이 ‘올해의 차’, 프랑스 ‘환경차 어워드’, 캐나다 ‘올해의 차’를 수상했다. 전기차의 천국으로 불리는 노르웨이에서는 아우디 A3(2위)와 폴크스바겐 파사트(3위) 같은 차량보다 더 좋은 평가를 받았다.

많은 사람들이 중국에서 만든 전기차도 250㎞(1회 완전충전시)를 달리는데, 현대차가 만든 아이오닉 일렉트릭은 왜 190㎞ 밖에 못 달리냐고 한다. 이것은 1회 충전시 주행거리의 측정방식 차이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한국과 미국은 실제 측정치의 70%만 인정한다. 유럽과 중국은 실제 측정치의 100%를 모두 주행거리로 인정한다.

다시 말해 유럽에서 인증 시험중인 아이오닉 일렉트릭은 1회 충전시 주행거리가 270㎞ 이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대차도 도심용 근거리 전기차에 이어 장거리 전기차, 고성능 장거리 전기차와 같은 개발계획을 가지고 있다.”

-전기차 개발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전기차 개발 경쟁에서 1회 충전으로 ‘얼마나 달릴 수 있느냐’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왜냐면 용량이 큰 배터리를 달면 얼마든지 멀리 갈 수 있다. 아이오닉 일렉트릭도 배터리만 키우면 1회 충전으로 320㎞를 갈 수 있다. 문제는 효율성이다. 배터리 용량이 커지면 그만큼 충전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운전자들이 하루에 주행하는 거리가 보통 80㎞ 정도다. 320㎞를 달릴 수 있게 무거운 배터리를 달게 된다면 불필요한 에너지를 낭비하는 셈이다. 배터리 용량이 커지면 가격도 두배 이상 비싸지고, 결국 소비자에게 부담이 된다.

이기상 현대차 전무가 전기차 시장 전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자동차의 중요한 성능은 ‘연비’다. 전기차 역시 내연기관 차량처럼 에너지소비효율을 따져봐야 한다. 아이오닉 일렉트릭은 에너지소비효율이 1kWh당 6.3㎞로 동급 세계 1위다. 리프(5.2), SM3 Z.E.(4.4), BMW i3(5.9%)보다 우수하다.”

-지금까지 보급형 전기차에만 집중했다. 고급형 모델 출시 계획은 없나?

“단계별 개발전략을 가지고 있다. 우선 2018년까지는 보급형 전기차 모델의 주행거리를 확대하는데 주력할 것이다. 2020년 이후에는 고성능 장거리 전기차 출시도 검토하고 있다.

자동차 제조사 입장에서는 시장의 수요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2020년이 되어도 도심용 근거리 전기차가 전체 전기차 수요의 60%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 진입 초기에는 파이가 큰 곳에 집중해야 한다.”

-어떤 차종이 친환경차 시장에서 대세가 될까?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를 주목하고 있다. 유럽은 이산화탄소 방출 규제를 강화하고 있는데, 이런 규제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고 본다.

많은 소비자들이 하루에 30~50㎞를 운행한다. 예를 들어 현대차 쏘나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모델의 경우 1회 충전시 주행거리가 44㎞다. 실제 이 차량을 타는 고객을 만났는데, 3개월 동안 엔진을 한번도 사용하지 않고 배터리로만 달렸다고 하더라.”

현대차 남양연구소 연구원들이 전기차의 성능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테슬라 열풍을 어떻게 보나? 전기차 시장 판도를 예상한다면?

“테슬라는 자동차 회사로 출발한 것이 아니고, 자동차 시장에 진입하면서 소비자들이 불안해했던 요소를 마케팅 전략으로 삼은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내세우는 수퍼차저 시스템도 도입에 한계가 있다. 100~200대 팔때야 가능한 사업모델이지만 세계 각국에 충전 인프라를 독자적으로 구축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테슬라 대항마로 불리는 패러데이도 테슬라와 유사한 사업 모델을 취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세계 곳곳에 낭비(충전을 위한 주차공간)가 발생할 것이다. 전기차 제조사들이 독자적으로 구축하는 충전 인프라 때문이다.

중국이 전기차에 집중하는 것은 내연기관 기술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차량의 경우에도 내연기관 기술이 중요하다. 전기차는 근거리용 세컨드카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전기차의 핵심부품인 배터리 기술은 현재 어떤 수준인가?

“전문가들의 견해로는 2020년쯤이면 현재 전기차에 사용하는 리튬이온 배터리의 한계가 올 것이라고 한다. 지금보다 성능을 어느 정도 향상할 수 있지만, 비약적인 개선은 어렵다는 말이다.

(수소)연료전지에 기대를 해볼 수 있다. 연료전지차가 몇만대 수준으로 양산이 된다면 값을 지금보다 절반 수준으로 낮출 수 있고, 배터리 가격도 낮출 수 있다. 리튬이온 배터리보다 저렴해질 수 있다. 2020년 이후 시장의 흐름은 현재 개발중인 배터리 성능과 가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

2016년 6월 출시 예정인 현대차 ‘아이오닉 일렉트릭’.

-국내 전기차 시장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소비자들이 실제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 예를 들어 전기차나 수소차를 타는 사람에게는 녹색번호판을 주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환경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갖게 할 수 있다. 버스전용차로도 사용할 수 있게 한다면 수요는 늘 것이다.

중국에서 사람들이 전기차를 사는 이유는 이런 혜택 때문이다. 상하이나 베이징에서는 공해 때문에 화석연료를 쓰는 차는 추첨을 통해 일부에만 번호판을 부여한다. 하지만 전기차는 신청과 동시에 번호판을 주고, 베이징에서 실시하는 차량 5부제에서도 전기차는 대상이 아니다.

전기차 인프라 구축에 신경을 써야하는데, 충전 인프라는 전봇대와 같은 성격이 있다. 결국 전기 사용을 위해 필요한 시설이기에 한국전력 같은 사업자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 한전이 100% 주도하기 어렵다면 정부와 지자체, 자동차 회사가 힘을 합쳐 충전 인프라 구축을 위한 투자재원을 모으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현대차가 생각하는 가장 강력한 경쟁자는?

“도요타가 가장 무섭다. 배터리 기술과 관련, 특허의 양이나 질이 가장 우수하다. 연구인력도 상당하다고 들었다. 도요타는 배터리 연구로 유명한 일본 대학에 지원을 한지 오래 됐다.

차세대 배터리 분야에서도 상당한 성과를 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테슬라의 ‘모델3’가 나와도 눈도 깜짝 안 한다.

한국이 배터리 만큼은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가지고 있다. 이런 배터리 회사와 협력해 전기차를 개발할 수 있는 것은 그만큼 경쟁력이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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