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유료 동영상 서비스 업체 넷플릭스가 최근 국내 케이블TV 사업자인 딜라이브(옛 씨앤앰)와 한국 서비스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 KT,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 등 인터넷TV(IPTV) 3사 중 한 곳과 파트너 관계를 맺을 가능성이 크다는 당초 예상을 깬 것이다. 딜라이브는 6월부터 넷플릭스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신규 셋톱박스를 출시하기로 했다.

딜라이브는 가입자 수 기준으로 케이블TV 3위 사업자다. 작은 규모는 아니지만 ‘미디어 공룡’ 넷플릭스의 덩치를 감안하면 의외의 조합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유료방송 업계 관계자들은 “한국 시장에서 부진한 넷플릭스와 회사를 빨리 매각해야 하는 딜라이브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블룸버그 제공

◆ 한국서 지지부진한 넷플릭스

1997년 DVD 우편배달 서비스 업체로 출발한 미국의 넷플릭스는 2007년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로 사업 영역을 넓혔다. 현재는 세계에서 가장 큰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로 성장했다. 전세계 190여개 국가에서 8100만명의 가입자를 보유하고 있다. 넷플릭스 사용자는 최소 7.99달러를 월정액으로 내면 온라인상에서 고화질의 영화나 드라마를 마음껏 시청할 수 있다.

넷플릭스는 지난해 9월 소프트뱅크와 손잡고 일본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한국 진출 계획도 공식화했다. 리드 헤이스팅스 넷플릭스 최고경영자(CEO)는 그 당시 “한국은 초고속 인터넷 인프라 수준이 높다”면서 “한국 소비자들에게 다양한 동영상 콘텐츠를 마음껏 시청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이 소식을 들은 국내 유료방송 업계 관계자들은 “넷플릭스가 한국 시장에 단독으로 진출하는 것 보다는 국내 사업자 중 한 곳과 파트너십을 맺고 들어올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넷플릭스 이용료가 미국에선 저렴한 수준으로 통할지 몰라도 저가 경쟁이 치열한 한국 시장에서는 무기가 될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리드 헤이스팅스 넷플릭스 CEO가 올해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16의 기조연설자로 나서 한국을 포함한 신규 진출 국가 130개국을 공개하고 있다.

당시 한 유료방송 업체 관계자는 “가전사가 판매하는 스마트TV에 넷플릭스 전용 응용프로그램(앱)이 탑재되거나, 국내 유료방송 서비스에 월정액 형태로 포함되는 시나리오가 유력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넷플릭스는 국내 사업자와 파트너십을 맺고 한국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다수의 업체와 만났다. 그러나 수익 분배 부분에서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대부분의 협상이 결렬됐다. 한 IPTV 업체 관계자는 “수익 배분은 보통 5대5나 4대6으로 합의보기 마련인데, 넷플릭스는 수익의 90%를 요구해 국내 사업자들이 파트너십을 거절했다”고 말했다.

결국 넷플릭스는 파트너 없이 올해 1월부터 국내 서비스를 시작했다. 하지만 기대 만큼 가입자를 끌어모으지 못하며 존재감을 드러내는 데 실패했다. 넷플릭스 측은 가입자 수를 공개하고 있지 않지만, 업계에서는 10만명 내외인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한 케이블TV 업체 관계자는 “넷플릭스에 관심을 갖고 있던 일부 유료방송사들도 넷플릭스에 대한 시청자 반응이 시큰둥한 걸 보고 협상 의지를 완전히 접었다”면서 “유일하게 딜라이브만 넷플릭스를 외면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넷플릭스는 지난해 10월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기자들을 대상으로 행사를 열고 자사 서비스와 한국 진출 계획 등을 소개했다.

◆ ‘인수금융 부도 위기’ 딜라이브 매각 시급한 MBK파트너스…“꽃단장 중”

넷플릭스와 손을 잡은 딜라이브는 국내 케이블TV 시장에서 CJ헬로비전, 티브로드에 이어 3위에 올라있는 사업자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238만명의 가입자를 확보하고 있다. 딜라이브 측은 “6월부터는 리모컨에 탑재된 전용 버튼을 눌러 넷플릭스 서비스에 접속할 수 있다”고 말했다.

넷플릭스가 수익 배분 조건을 딜라이브에게만 다르게 제시했을 리 없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즉 넷플릭스가 수익의 90%를 챙겨가는 계약 조건에 딜라이브가 합의했다는 의미다. 딜라이브 관계자는 “넷플릭스와의 구체적인 수익 배분 조건을 공개할 순 없다”며 말을 아꼈다.

전문가들은 딜라이브 최대주주인 사모펀드 MBK파트너스가 딜라이브를 빠른 시간내 매각해야 하는 급박한 사정이 넷플릭스의 손을 뿌리치지 못한 이유일 것이라고 말한다. MBK파트너스가 주축이 된 국민유선방송투자(KIC)는 지난 2007년 총 2조1900억원의 인수금융을 조달해 딜라이브를 사들였는데, 올해 7월 30일 인수금융 만기가 돌아온다. 그러나 매각 작업이 난항을 겪으면서 KCI는 인수금융의 이자를 갚는 것도 허덕이고 있다.

이에 신한은행, KEB하나은행, 국민연금 등 딜라이브 인수금융 대주단은 지난 20일 대주단 협의회를 열고 인수금융 상환기한 2019년 연장, 대출금리 조정, 일부 출자 전환 등 채무조정안을 논의했으나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국민연금, 새마을금고, KDB생명 등 일부 비은행권 금융기관들이 만기 연장 과정에서 대출 금리와 지급 조건을 변경하는 것에 대해 난색을 표해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지 못했다. 대주단은 27일 협의회를 다시 열고 채무조정안을 재협의하기로 했다. (☞관련 기사 [단독] 대주단, 딜라이브 인수금융 2.2조 연장 여부 20일 논의…SKT도 '촉각')

딜라이브는 2000년 1월 씨앤앰커뮤니케이션이란 이름으로 출발해 2016년 4월 사명을 현재의 딜라이브로 바꿨다.

만약 대주단이 합의점을 찾지 못해 인수금융 만기가 연장되지 못할 경우 딜라이브의 대주주는 KIC에서 대주단으로 바뀐다. 인수금융이 부도처리되면 대주단이 담보로 잡고 있는 딜라이브 주식의 소유권은 대주단으로 넘어간다.

MBK파트너스, 맥쿼리 등 재무적 투자자들이 2007년 2조1900억원을 들여 딜라이브를 인수할 당시만 해도 국내 케이블TV 산업은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었다. ‘황금알을 낳은 거위’로 비유되기도 했다.

그러나 IPTV가 등장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이동통신 3사가 방송·통신 결합상품에 IPTV를 묶어 판매하는 방식으로 가입자를 빠르게 늘려갔고, 그 사이 케이블TV 업체들의 성장세에는 제동이 걸렸다. 딜라이브의 영업이익은 2012년 1099억원에서 지난해 739억원까지 떨어졌다. 몸값이 낮아지자 수월할 것으로 여겨지던 매각 작업도 난항을 겪기 시작했다.

MBK는 지난해 초 골드만삭스를 매각주관사로 선정하고 딜라이브를 2조원 이상에 매각하려고 했으나 원매자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딜라이브의 기업가치에 비해 매각 목표 가격이 너무 높았기 때문이다.

조선일보DB

딜라이브는 올해 4월 회사 이름을 씨앤앰에서 딜라이브로 변경했다. 딜라이브는 사명 변경 이유에 대해 “기존 케이블방송사 이미지에서 벗어나 혁신적이고 차별화된 서비스를 선보이려는 의도”라고 설명했다. 반면 유료방송 업계 관계자들은 “회사 매각에 난항을 겪고 있는 딜라이브가 새롭게 꽃단장을 하고 주인 찾기에 재도전하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현재 딜라이브는 눈 앞의 수익보다는 회사 매각을 성공적으로 유도하는 게 더 중요한 상태”라며 “원매자에게 매력을 어필할 수 있는 시도라면 뭐든지 할 것”이라고 말했다.

넷플릭스가 딜라이브의 자회사인 IHQ를 통해 국내 콘텐츠 확보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IHQ는 드라마, 예능, 음반 등의 콘텐츠를 제작·유통하는 엔터테인먼트 기업이다. 넷플릭스는 국내 진출 이후 국산 콘텐츠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해 서비스 제공에 어려움을 겪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