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자동차의 주력 세단인 ‘K시리즈’가 판매부진의 늪에 빠졌다. 한때 정몽구 회장의 애마로 불리던 ‘K9’을 비롯해 K3와 K5의 판매성적도 신통치 않다. 세계 경제 침체로 인한 해외 수요 감소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기아차는 올해 1분기(1~3월) 글로벌 판매량이 작년 1분기 대비 6.2% 감소한 70만4458대에 그쳤다. 국내 판매는 38만4278대로 작년 1분기 대비 2만6000대 이상 급감했다.

기아차 플래그십 세단 K9

판매 부진의 원인으로는 K시리즈가 꼽힌다.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은 꾸준한 인기를 끌고 있는 반면 세단인 K시리즈는 판매 성적이 맥을 못추고 있다.

준대형 세단 K7을 제외하면 준중형 세단 K3, 중형 세단 K5, 대형 세단 K9까지 K시리즈가 경쟁 차종에 밀리는 분위기다.

◆ 한때 MK의 출퇴근용...존재감 잃은 플래그십

정 회장은 기아차 플래그십 세단 K9에 남다른 애정을 보였다. 2012년 5월 K9 출시 후 회사 출퇴근은 물론 공식 석상에 현대차 에쿠스와 K9을 번갈아 애용했다. 작년 말부터는 K9 대신 에쿠스 후속 모델인 제네시스 EQ900을 주로 사용하고 있다.

정 회장의 각별한 사랑에도 출시 4년차를 맞은 K9의 성적표는 초라하다. 기아차는 K9 출시 당시 국내에서 월간 판매 목표를 2000대로 잡았으나, 출시 후 1년간 월 평균 판매량이 700대 수준에 그쳤다.

기아차 2016년 1분기 판매 대수

2013년 1분기 1530대가 팔렸던 K9은 2014년 1분기 1496대, 2015년 1분기 1226대로 판매대수가 줄었다. 올 1분기에는 742대로 판매량이 반토막 났다. 출시 당시 목표의 10분의 1에 불과한 월 평균 200대 정도가 팔리는 셈이다.

기아차는 2014년 1월 판매 부진에 시달렸던 K9의 2014년형 모델을 내놓으면서 가격을 4000만원대로 낮춘 보급형 K9을 투입했다. 하지만 효과는 보지 못했다. 같은해 11월 배기량을 5000cc로 높인 고급형 K9도 반짝 실적에 그쳤다.

5200억원의 개발비가 투입된 K시리즈 맏형 K9의 판매 부진에 기아차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작년 말 현대차가 제네시스 플래그십 세단 EQ900을 출시하면서 K9의 판매잠식이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기아차 K시리즈 판매 추이

◆ 1년도 안 돼 신차효과 사라진 'K5·K3'

K시리즈 가운데 가장 잘 나가던 중형 세단 K5도 기아차의 골치거리다. 2013년 1분기 1만3025대가 팔렸던 K5는 2014년 1분기 1만2909대, 2015년 1분기 8982대로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올 1분기에는 1만1728대를 팔아 판매량을 다소 회복했으나, 지난해 7월 5000억원을 들여 2세대로 모델 변경을 거친 점을 고려하면 기대 이하라는 평가다.

기아차 중형 세단 K5

K5는 2010년 출시 당시 현대차 쏘나타를 뛰어넘을 만큼 큰 인기를 끈 기아차의 주력 모델이다. 하지만 신형 K5는 기존 모델의 인기 요소였던 디자인 부문에서 변화를 꾀하는데 실패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출시돼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르노삼성차 SM6, 한국GM 말리부와 비교해 K5만의 차별화된 강점이 없다는 점도 문제다.

기아차 준중형 세단 K3

준중형 세단 K3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2013년 1분기 1만3659대, 2014년 1분기 1만2359대, 2015년 1분기 9110대로 판매가 꾸준히 줄었다. K3 역시 지난해 하반기 모델 변경을 거쳤지만, 올 1분기 9200대가 팔리는데 그쳤다.

K3의 부진은 동급 경쟁자 현대차 아반떼 신형 모델 투입이 영향을 미쳤다. 지난해 9월 출시된 신형 아반떼는 올 1분기 2만3681대가 팔리며 K3를 제쳤다.

◆현대·기아차, 제품간 판매 간섭 심화

기아차의 판매량이 정체된 것은 현대차와 같은 시장에서 경쟁을 펼치며 제살을 깎아먹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1999년 현대차가 기아차를 인수할 당시부터 줄곧 제기됐던 판매 간섭은 시간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현대·기아차 내부적으로 제품간 간섭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양사가 내놓은 신차들은 원가 절감 등을 이유로 디자인 외에 뚜렷한 제품 차별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현대·기아차 CI

실제 기아차 K시리즈는 차량의 기반이 되는 차대부터 파워트레인, 안전 및 편의사양까지 현대차 동급 모델의 것을 대부분 물려받거나 약간 개량해 사용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양지우 자동차 칼럼니스트는 "현대·기아차 동급 모델 간에 제살 깎기식 경쟁이 현실화되고 있다. 소비자 만족도를 높일 수 있는 차별화된 제품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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