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이사.

화장품 업계의 ‘마이더스의 손’으로 불리며 승승장구하던 정운호(51)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법조 로비 의혹 사건’이 대형 정·관계 의혹 사건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검찰은 3일 네이처리퍼블릭 매장의 롯데 면세점 입점에 관여한 것으로 알려진 한모씨를 긴급 체포했다. 한씨는 네이처리퍼블릭 매장을 롯데면세점에 입점시켜준 대가로 정 대표로부터 수십억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한씨의 군납 비리 혐의를 수사하던 검찰은 정씨가 한씨 계좌에 거액을 입금한 혐의를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작년 10월 100억원대 해외 원정 도박 혐의로 구속돼 재판을 받던 정씨가 부장 판사 출신인 여 변호사를 폭행한 사건으로 불거진 정씨의 ‘구명 로비 의혹’ 사건이 네이처리퍼블릭 성장 과정의 로비 의혹 사건으로 번지고 있다.

◆ 검찰, 롯데면세점, 서울 메트로 입점 로비 의혹으로 수사 확대

서울 강남구 대치동 네이처리퍼블릭 본사 입구.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 이원석)는 3일 네이처리퍼블릭, 최모 변호사 법률사무소, 관할세무서 등 10여 곳에 대해 압수수색하는 등 정씨의 로비 의혹에 대한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 최 변호사 등 관련 인물 4~5명도 출국금지했다.

검찰은 정 대표가 사업을 키우는 과정에서 정치권 인사들과 친분을 맺으며 매장 인·허가 과정에서 고위 공무원과 대기업 임직원 등을 상대로 금품과 향응 등을 제공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검찰은 특히 정씨에게서 거액을 받고 로비를 한 브로커들의 신병을 확보하는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현재 정씨의 로비를 도운 브로커로는 3일 긴급 체포된 한씨, 수배 중인 이씨 외에도 2~3명이 추가로 거론되고 있다.

검찰은 도주 중인 브로커 이모씨가 네이처리퍼블릭의 서울 지하철 화장품 매장 사업 진출 로비 자금 명목으로 9억원을 받은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정씨의 도박과 횡령 혐의에 대한 검찰 수사를 무마하려 한 혐의도 받고 있다.

작년 12월 29일 이씨와 저녁 식사를 함께한 임모 서울중앙지법 부장 판사는 2일 “사법부 신뢰를 무너뜨린 혐의를 통감한다”면서 사표를 제출했다. 법원은 “사건이 마무리될 때까지 임 판사의 사표 수리를 보류한다”고 밝혔다.

서울중앙지검 방위사업수사부(부장 박찬호)가 3일 긴급 체포한 한모씨는 정씨의 매장 입점 로비 외에도 군납 비리에 연루돼 조사를 받고 있다.

네이처리퍼블릭 관계자는 “한씨는 회사 내부에서 정 대표의 지시로 롯데 면세점 입점을 성공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며 “평소 롯데그룹에 폭넓은 인맥을 자랑했다”고 말했다.

롯데는 “롯데 면세점은 2010년부터 직거래를 하고 있다. 로비나 부정이 개입될 소지가 원천적으로 봉쇄돼 있다”고 밝혔다.

서울 잠실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 내부 전경.

◆ 보따리 장사로 출발, 수천억원대 자산가로 급성장…”화장품 매장 주는 등 통 큰 로비"

정 대표는 화장품 업계에선 ‘타고난 장사꾼’, ‘마이더스의 손'으로 널리 알려진 신화적인 인물이다.

정 대표는 서울 남대문시장에서 보따리 장사로 시작, 사업 종잣돈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28세였던 1993년 ‘세계화장품’이라는 상호로 종합 화장품 대리점을 운영했다. 1990년 중반 이후 중저가 화장품의 돌풍을 일으킨 ‘더페이스샵’의 전신이다.

일개 화장품 가게 주인에 불과했던 정 대표는 2001년 우연히 알게 된 서영필 에이블씨엔씨 대표와의 인연으로 인생 역전하게 된다.

업계 관계자는 “정 대표는 미샤 브랜드를 히트시킨 서영필 대표와 친해지려 애썼다”며 “결국, 사석에서 나눈 대화에서 경영 노하우와 화장품 업계 트렌드를 듣고 더페이스샵을 창업했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2003년 더페이스샵을 창업, 당시 업계 1위인 미샤 매장 바로 옆에 가게를 여는 방식으로 영업망을 확장했다. 서 대표와의 인연은 악연이 됐다.

더페이스샵은 서울의 중심 상권이던 이화여대, 명동에 단독 매장을 열며 승승장구했다. 신생 회사가 엄청난 임대료를 지급하며 공격적인 매장 운영을 하자, 화장품 업계에선 뒤를 봐주는 사람이 있다는 소문도 돌았다.

정 대표의 성공 스토리는 널리 알려졌지만, 정작 정 대표 개인에 대해 알려진 사실은 많지 않다. 중졸 학력에 전라남도 함평 출신 정도로만 알려져 있다. 화장품 제조업체 ‘쿠지인터내셔널’과 화장품 상표부착 생산방식(OEM) 업체 ‘믹스앤매치’가 인척 관계 기업으로 알려졌다.

지인들은 정 대표의 통 큰 인맥 관리가 남달랐다고 전했다. 한 화장품 업계 관계자는 “골치 아픈 일을 해결하면 화장품 대리점 두 개쯤은 눈도 깜짝하지 않고 주는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정 대표가 큰 돈을 만지기 시작한 것은 더페이스샵 창업 2년 만인 2005년부터다. 회사 지분을 PEF(사모투자펀드) 운용사 어피니티에퀴티파트너스(AEP)와 LG생활건강에 매각하는 과정에서 2000억원의 시세차익을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정 대표가 더페이스샵을 LG생활건강에 팔기 직전 더페이스샵 주요 업무 담당자들을 모두 해고한 일화는 유명하다. 경쟁 업체로의 이직을 금지하는 근로 계약서를 근거로 상대방 측에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업 방해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 관계자는 “타고난 장사꾼 기질을 발휘한 것”이라고 말했다.

네이처리퍼블릭 매장 전경.

◆ 네이처리퍼블릭 메트로 매장 155개...중국 진출도 시도

정 대표는 2009년 네이처리퍼블릭을 론칭, 화장품 업계에 다시 등장했다. 외국 유명 화장품인 더바디샵의 자연주의 콘셉트를 모방한 것으로 알려졌다. 1년 후 네이처리퍼블릭의 대표로 취임한 정 대표는 네이처리퍼블릭 지분 75.47%를 보유하고 있다.

네이처리퍼블릭은 더페이스샵, 이니스프리, 미샤, 잇츠스킨에 이어 5위 브랜드숍이다. 국내 매장 700여 개, 해외 매장 120여 개가 있다. 서울메트로 역사 내 155개 매장을 운영, 화장품 업계 최다 지하철 매장을 보유하고 있다.

히트 상품 ‘알로에 수딩젤’의 대성공으로 단번에 입지를 굳혔다. 중국 관광객들에게 불티나게 팔리면서 성장을 거듭했다. 2012년 1284억원이었던 매출액은 2013년 1717억원, 2014년 2552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매출액은 2800억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 대표의 자산은 더페이스샵 매각 금액 2000억원과 현재 장외 시장에서 거래되는 네이처리퍼블릭 지분 가치(주당 6만5000원, 3600억원) 등을 합치면 자산이 최대 5000억원대에 달할 것으로 업계에선 추정하고 있다.

네이처리퍼블릭은 최근 중국 진출 확대를 위한 자금을 마련하려고 상장을 추진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 대표에 대한 검찰 수사가 확대되면서 연내 상장이 불투명해졌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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