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난을 겪고 있던 현대상선에 이어 한진해운도 자율협약(채권단 공동관리)을 신청하기로 하면서 국내 양대 선사가 채권단에 몸을 맡기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한진해운은 그 동안 한진그룹의 지원으로 유동성을 확보해 와서 현대상선에 비해서는 위기가 그리 부각되지 않았었다. 하지만 한진해운이 지난 22일 전격적으로 자율협약 신청을 결정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한진해운의 자율협약 신청이 받아들여지면 한진해운은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들어가게 된다.

일각에선 해운업 구조조정 속도를 내고 국제 경쟁력 강화를 위해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을 합쳐서 하나의 국적 해운사를 만들어야 한다는 합병 시나리오가 급부상하고 있다.

정부는 대규모 실업 등과 같은 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우려해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24일 “아직까지 합병과 관련된 논의를 진행하고 있는 단계는 아니다”며 “한진해운이나 현대상선과 같은 대형사들을 합치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금융위원회는 오는 26일 임종룡 금융위원장의 주재로 ‘산업 기업 구조조정 협의체’를 열고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을 비롯한 기업 구조조정에 대한 향후 계획을 발표할 계획이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 금융위, 26일 한진해운·현대상선 처리방안 발표

금융위원회는 24일 오전 유일호 경제부총리(기획재정부 장관)와 관계부처 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경제현안회의를 열고 취약 산업에 대한 구조조정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이날 회의에선 유 부총리와 임종룡 금융위원장을 포함, 기획재정부·금융위원회·산업통상자원부·해양수산부·고용노동부 등이 5대 업종(조선·건설· 철강·해운·석유화학)에 대한 구조조정 방안을 논의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위기를 겪고 있는 5대 산업의 현황과 구조조정 방향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로 앞으로 구조조정을 어떻게 이끌어 갈지에 대해 관계부처 간 의견을 나눴다”고 밝혔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관계자들은 고용 조정이 예상되는 업종의 고용 유지 지원 방안과 실업 발생시 취업 지원 방안 등 구조조정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대량 실업 가능성에 대한 대책을 논의했다

정부는 오는 26일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주재하는 ‘산업·기업 구조조정협의체’를 개최해 구체적인 구조조정 세부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 대형사 위주의 합병 가능성도 제기

현대상선의 컨테이너선

정부가 총선 이후 산업 구조조정의 보폭을 넓히면서 산업계와 금융권을 중심으로 대형 인수·합병(M&A)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수익 구조가 심각하게 훼손된 산업체들을 대형사 위주로 정리하고 합병해 ‘규모의 경제’를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다.

채권단 관계자는 “정부가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합병 가능성을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며 “정치권에서 여당과 야당이 구조조정 이슈를 선점하기 위해 주도권 싸움을 벌이고 있고 정부도 유일호 부총리를 비롯해 강경 발언을 계속하고 있어 구조조정이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될 것 같다”고 전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4월 25일)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1월 29일)이 모두 경영권을 포기하면서 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두 해운사를 관리하게 된 점도 합병 가능성이 거론되는 이유다.

대표적 부실 조선사인 대우조선해양(자회사)과 한진중공업(자율협약)도 산은의 통제선 안에 있다.

또다른 해운업계 관계자는 "채권단 입장에선 해운사 두 곳을 합치는 방법이 얼마나 도움이 될지 검토할 만하다”면서 “두 선사의 합병 가능성이 예전에 비해 훨씬 커진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해운사들이 경영위기를 인수합병(M&A) 방식으로 헤쳐나가고 있는 점도 합병을 예상하는 이유다.

지난해 세계 3위 해운사인 프랑스의 CMA-CGM이 13위인 싱가포르 APL을 인수했다. 세계 1위 해운사인 덴마크의 머스크도 합병을 통해 성장한 대표적 기업이다.

하지만 양사는 그 동안 합병을 반대해 왔다. 결국 어느 쪽이 구조조정에 성공하느냐에 따라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 만약 두 해운사 모두 용선료(선박 임대료) 협상이 결렬되고 법정관리로 가게 된다면, 정부는 합병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글로벌 해운동맹(얼라이언스)에서 제외되면서 재기가 불가능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조선업계 빅3인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도 올해 1분기에 단 1척의 선박도 수주하지 못해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 정부 “대형사 합병, 아직 논의할 단계 아니다”

서울 다동 대우조선해양 본사

정부는 아직 대형 조선‧해운사의 합병을 거론할 단계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정부 관계자는 “합병이 그리 쉽지 않은 과정이기 때문이기에 아직 그런 논의를 할 단계는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이 관계자는 또 “대형 조선사나 해운사들을 갑자기 합치는 문제는 단기간에 말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대형사들을 합병하기 위해선 지분 구조 외에도 실업이나 각 기업 간의 시너지 효과 등을 면밀히 분석해야 하는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것이다.

실제 대우조선과 삼성중공업은 두 회사를 합쳐 고용인원이 3만명이 넘는다.

업계 관계자는 “합병을 한다고 하면 근로자 수를 줄여야 하기 때문에 단기간에 해결하기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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