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개장과 함께 폭락하기 시작한 전 세계 증시는 2월 11일까지 평균 12% 떨어지는 가파른 하향 곡선을 그렸다. 그랬던 것이 그 이후 지금(3월 23일 기준)까지 12% 상승해 주가가 도로 제자리로 돌아왔다(이상 'MSCI 세계지수' 기준). 이 어지러운 롤러코스터에 탑승한 주식 투자자들은 가슴 쓸어내리는 나날을 보냈다. 이런 직접투자의 '고통'에서 자유롭기 위해 전문가(펀드매니저)에게 투자를 맡겼던 펀드 투자자들은 올 1분기 어떤 투자 성적표를 받아 들었을까. 펀드평가사 제로인과 함께 1분기 펀드 수익률을 분야별로 추려봤다.

수수료도 못 뽑은 깡통펀드 속출

올해 초 국내 주식형 펀드나 해외 주식형 펀드 등 주식에 주로 투자하는 펀드에 돈을 넣은 사람들은 22일 기준 대부분 마이너스 수익률을 면치 못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국내 주식형 펀드의 연초 이후 수익률은 평균 -0.1%다. 이 기간에 코스피지수가 1.5% 올랐지만, 국내 중·소형주만 골라서 투자한 중·소형주 펀드의 수익률이 -2.6%로 나빴기 때문에 전체 주식형 펀드 수익률 평균을 끌어내렸다. 지난해 국내 주식시장에선 화장품·식음료·바이오 등 중·소형주 바람이 불어, 관련 펀드도 반짝 인기를 모았는데, 단기 급등했던 만큼 하락의 골도 깊었다. 주식형 펀드에 투자할 때 지불해야 하는 비용(보수와 수수료를 합쳐 투자 원금의 평균 2.3%)을 감안하면 대부분의 국내 주식형 펀드 투자자가 2% 이상 손실을 본 셈이다.

해외 주식에 베팅한 투자자는 더 많은 돈을 잃었다. 중국을 시작으로 일본·미국·유럽 등 선진국 증시도 크게 출렁였기 때문이다. 해외 주식형 펀드 평균 수익률은 -7.4%였고, 특히 일본 펀드(-12.2%), 중국 펀드(-11.2%)의 손실이 평균보다 컸다. 일본 펀드 수익률은 이 기간 닛케이지수 하락 폭과 비슷했지만, 중국 펀드는 상하이나 심천 주가 하락 폭에 비해선 손실이 적었다. 국내에 출시된 중국 펀드 중 본토 대비 주가 타격이 작았던 홍콩 상장 종목을 상당수 편입한 덕분이다.

2월 중순부터 최근까지 약 한 달 사이 주가가 급등하고 있는 브라질과 러시아 등 일부 선진시장에 발 빠르게 투자한 사람이라면 10% 이상의 수익을 얻었을 수도 있다. 미래에셋, 도이치, JP모간 등의 브라질 펀드는 20% 넘는 수익률을 내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이런 수익률을 낼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는 일. 지난 3년간 브라질 펀드의 평균 수익률은 -50%에 달할 만큼 부침이 심하다.

금·원유 펀드가 군계일학

펀드회사가 떼가는 비용을 제외하고도 의미 있는 수익을 낸 펀드는 금·원유 등 원자재에 투자한 대안 펀드다. 금값과 원유값이 올 초 바닥을 다지고 단기 급등한 결과, 관련 현·선물 상품에 투자한 펀드가 평균 4.5% 수익을 냈다. 금 선물 하루 가격 변동치의 2배 수익을 가져가도록 설계된 한국투자신탁운용의 '한국투자KINDEX골드선물레버리지ETF(상장지수펀드)'는 연초 이후 37%의 수익률을 기록 중이다. 국제 유가가 최근 한 달 새 급등하고 있지만, 유가가 바닥을 찍기 전인 올 초 투자에 나선 너무 부지런했던 투자자라면 번 돈이 없을 가능성이 크다. 타이밍을 귀신같이 맞추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전 세계 시장에 자산을 쪼개 투자해준다는 '글로벌 자산배분펀드'의 평균 수익률도 -6.4%로 해외 주식형 펀드 평균치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런 살벌한 장세에 운용 금액이 1조원 이상인 '공룡 펀드'들은 투자자들의 돈을 잘 지켰을까. 단일 펀드 중 규모가 가장 큰 신영자산운용의 '신영밸류고배당' 펀드는 연초 이후 1.1%의 수익률을 기록하며 분투하고 있는 반면, 출시 2년 만에 1조5000억원을 끌어모은 메리츠자산운용의 '메리츠코리아' 펀드는 -6.8%의 수익률로 동종 펀드 중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대세 하락장에선 전문가의 통찰력도 속수무책이었던 만큼, 투자자들은 펀드매니저가 적극적으로 투자 종목을 발굴하는 '액티브(적극형) 펀드'에서 돈을 빼 주가지수의 흐름에 수동적으로 따라 투자하는 ETF 등 '패시브(소극형) 펀드'로 대거 돈을 옮겨가는 모습이었다. 올 들어 국내 주식형 펀드에서는 130억원이 인출됐고, ETF로는 2조2500억원이 신규 유입됐다.

김후정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올 1분기 액티브 펀드 중에는 그나마 배당주 펀드나 원자재 펀드 정도가 선방했다"며 "증시가 급등락을 거듭하고 저금리 기조 속에 '알파(초과 수익)'를 얻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에 패시브 펀드가 액티브 펀드를 압도하는 상황이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