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영화 '맨 인 블랙'에서는 사람들의 눈에 강력한 빛을 쏘여 기억을 지우는 장면이 나온다. 머지않아 영화에서처럼 빛을 쏘여 기억을 지우거나 바꾸고, 심지어 잃어버린 기억까지 되살리는 일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와 일본 이화학연구소(RIKEN)가 함께 세운 'RIKEN-MIT 신경회로 유전학 연구센터'는 "알츠하이머 치매 증상을 가진 생쥐에게 빛을 쏘여 잃어버린 기억을 되살리는 데 성공했다"고 16일 밝혔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인터넷판에 실렸다.

이 연구센터는 1987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일본 과학자 도네가와 스스무 교수가 이끌고 있다. 도네가와 교수는 "알츠하이머에 걸리면 기억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기억을 떠올리지 못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입증한 것"이라며 "연구가 발전하면 알츠하이머 환자의 잃어버린 기억을 살릴 수도 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사람의 알츠하이머와 같은 증세를 보이는 생쥐와 정상 생쥐를 같은 방에 넣고 전기 충격을 가했다. 한 시간 뒤 같은 방에 다시 들어가면 두 생쥐 모두 공포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며칠 지나면 알츠하이머 생쥐는 같은 방에 가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단기 기억은 가능하지만 장기 기억은 불가능한 것이다.

다음에는 공포 반응에 관여하는 생쥐의 해마 신경세포에 청색광에만 반응하는 단백질을 결합시켰다. 해마는 기억을 담당하는 뇌 영역이다. 이 상태에서 청색광을 비추면 빛에 감응하는 단백질이 활동하면서 신경세포까지 자극한다. 연구진은 알츠하이머 생쥐를 처음 전기 충격을 줬던 방에 넣고 빛을 쏘였다. 그러자 이전까지 무덤덤하던 생쥐가 처음처럼 공포 반응을 보였다. 잊었던 기억이 되살아난 것이다.

연구진은 알츠하이머 생쥐의 신경세포에는 돌기처럼 생긴 수상돌기가시가 정상 생쥐보다 덜 발달한 것을 확인했다. 이 돌기는 신경세포 사이에 신호가 오가도록 한다. 청색광을 받고 기억이 되살아난 알츠하이머 생쥐에서는 이 돌기가 다시 정상 생쥐처럼 생겨나 있었다.

앞서 연구진은 이번처럼 빛을 쏘이는 방법으로 기억을 조작하는 실험에도 성공했다. 생쥐는 첫째 방에서 아무런 일이 없었다. 둘째 방에서는 전기 자극을 받았다. 연구진은 생쥐 해마에서 공포 기억을 맡은 신경세포에 빛 감응 단백질을 붙였다. 이 생쥐를 아무런 자극을 주지 않았던 첫째 방에 넣고 빛을 쏘였다. 생쥐는 바로 공포 반응을 보였다. 생쥐가 첫째 방에서 전기 자극을 받은 것처럼 기억을 조작한 것이다.

연구진은 사람에게 같은 방법을 적용하면 사고 충격으로 인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나 우울증에 걸린 환자의 나쁜 기억을 없애거나 좋은 기억으로 바꿀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