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큰 가치를 얻기 위해 나누는 '공유'가 건축계 화두
사무실, 집 등도 공유하는 문화 확산
공공청사, 기업체 사옥 등 담장도 사라져

성수동의 카우앤독은 일할 공간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시간제 임대 시설이다.

‘공유’는 우리 사회의 기본 모드였다. 그 배경에 절대 빈곤이 있었다. 먹는 것, 입는 것, 사는 곳이 부족한 상황에서 공유란 생존의 조건이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당시에는 공유 대신 ‘나눔’이란 순 우리말을 썼다. 경제위기가 한창이던 1998년에 등장한 ‘아나바다’라는 말은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다’라는 뜻의 신조어였다. 다만 그 내용은 새롭지 않았다. 대부분 사람들이 오래전부터 해 오던 일이었다. ‘이웃 사촌’이나 ‘골목길 문화’ 등은 모두 이렇게 나눔을 전제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사람들이 많은 것을 갖게 될수록 이런 문화는 빠르게 해체되어 갔다. 당시의 나눔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 추구해야 할 가치는 아니었다.

이후 개인적 소유가 중요한 사회가 되었다. 내 집에서 내 차로, 다시 내 컴퓨터로, 이렇게 ‘내 것’을 향한 거대한 흐름이 확대되었다. 아직도 많은 이들에게 이것은 거스를 수 없는 삶의 방식이다. 소유의 경계를 확실히 하고자 하는 생각은 자기 물건에 이름을 쓰는 소박한 행위에서 시작하여 외부 사람을 차단하는 아파트 담장에 이르는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났다. 경계면을 강화하고 통제하는 것은 단독주택에서 공공청사, 기업체 사옥에 이르기까지 거의 예외가 없었다. 가급적 나누지 않고, 최대한 자기 것을 확보하는 것이 미덕인 그런 시대가 온 것이다.

달도 차면 기운다. 끝 없이 강화될 것만 같던 경계면이 조금씩 흐려지기 시작했다. 1980년에 세워진 교보생명 본사처럼 담장 없는 기업체 사옥이 등장하더니 지금은 공공기관들도 ‘열린 청사’를 표방하며 문턱을 낮추고 경계를 허무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대학도 ‘담장 허물기’라는 이름으로 이 흐름에 동참했다. 그러나 ‘공유’라는 표현을 본격적으로 받아들인 것은 그 이후 세대들이다. 정보통신 환경 속에서 다양한 문화를 접하며 성장한 세대들이 각 분야의 결정권자가 되었을 때 보여주는 새로운 가능성이다. 할 수 없이 나누는 것이 아니라 더 큰 가치를 얻기 위해 나눈다는 점에서 이전과 다르다.

지금 ‘공유’는 건축계의 큰 화두다. 민간과 공공으로 양분되어 있던 분야에서 그 중간 영역이 생기고 있다. 공공 프로젝트인데 지속가능한 수익 구조를 이야기하고, 민간 프로젝트인데 공공적 가치를 논한다. ‘사적 소유의 공공 공간’, ‘지역 기반형 사회적 기업’과 같은 용어들이 오간다. 이런 경우 건축가의 역할은 단순히 주어진 요구 조건을 잘 풀어내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스스로 공유 문화의 일원으로서 자기 역할을 찾아야 한다. 건축가의 수동적인 역할에 답답함을 느껴온 세대에게는 새로운 돌파구가 아닐 수 없다. 이미 이것은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하다. 2016년 베니스 비엔날레는 자원의 부족을 극복하고 공공의 선을 위해 노력하는 건축에 초점을 맞춘다고 선언했다. 단언컨대 앞으로 한국 건축계에서 가장 흥미로운 사례 또한 이 구도에서 탄생할 것이다.

통의동의 공유 주거인 통의동집. 침실을 제외한 화장실, 거실, 주방 등을 공유하는 임대 주거다.

물론 공유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인간의 이기적인 본성을 적절히 조율할 수 없을 때 공유는 무용지물이 된다. 그렇다고 엄격한 제도와 규칙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머리로는 이해해도 몸이 따라주지 않으면 실천하기 어렵다. 결국 공유의 문화가 보편화되는 것을 기대할 수 밖에 없다. 그만큼 그런 문화 속에서 성장한 새로운 세대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한편 기성세대는 또 그들대로 ‘나눔’의 문화에 대한 경험과 기억이 있다. 즉 어디에선가 세대간의 접점이 만들어질 가능성도 있다.

이미 우리 사회에는 공유에 기반한 장소와 시설들이 생겨나고 있다. 성수동의 ‘카우앤독’(COW & DOG)과 같은 ‘코워킹 스페이스’에서 일터를 해결하고, 서촌의 ‘통의동집’ 같은 공유 주거, 즉 ‘셰어하우스’(share house)에서 생활한다. 공유하지 않고 개인별로 소유하려 했다면 결코 누리지 못했을 양질의 공간들이다. 이런 공간들을 기획하고 만드는 사람들의 사회적 인식이나 미적 감각도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다. ‘공유’라는 이름으로 또 다른 장벽이 만들어지지 않아야 할 것이라는 전제하에, 이 새로운 실험을 지지하고 그 결과를 주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