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불황과 내수(內需) 침체로 대다수 업종이 실적 부진을 겪는 가운데, 주요 식음료 기업들의 지난해 영업이익이 20~100%씩 급증한 것으로 확인됐다. 다른 업종에 비해 영업 실적이 상대적으로 안정된 식음료 업종의 영업이익이 크게 늘어난 것은 이례적이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제품 가격 인상과 고가(高價) 신제품 출시, 해외시장에서의 선전(善戰)이 호실적의 배경"이라고 말한다. 주목되는 것은 이 중 두 가지가 '가격 요인'이라는 점이다.

가격 올려 영업이익 급증

제품 가격 인상으로 영업이익을 늘린 기업으로는 지난해 11월 소주 값 인상을 단행한 하이트진로가 꼽힌다. 본지가 금융감독원 자료를 15일 분석한 결과, 하이트진로의 지난해 영업이익(1339억원)은 전년 대비 40% 넘게 증가했다. 반면 매출(1조9074억원)은 1.8% 정도 증가에 그쳤다. 특히 작년 4분기 영업이익(314억원)이 120% 넘게 늘어 "가격 인상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하이트진로는 지난해 '참이슬' 소주 출고가격 5.6% 인상 결정을 하면서 "2012년 가격 인상 이후 주요 원·부자재 가격이 오르고 제조·판매비용 증가 같은 원가(原價) 상승 요인 때문"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지난해 영업이익이 급증으로 설득력을 잃게 됐다. 지난해 롯데칠성음료의 영업이익도 전년 대비 50% 넘게 늘었다.

국내 소주 제조사들의 지난해 실적이 공개되기 직전까지 주류업계에서는 "소주에 이어 맥주 값도 올릴 것"이라는 예상이 파다했다. 그러나 최근 실적 발표 후에는 "가격을 올려 영업이익을 늘린 게 확인된 만큼 맥주 가격 인상은 어려울 것"이라는 반응이 많다.

라면 업계 강자(强者)인 농심오뚜기는 비싼 신제품 출시에 힘입어 지난해 영업이익이 각각 60%, 20% 늘었다. 일반 라면 가격의 두 배(1500원)인 짜장·짬뽕라면이 인기를 얻은 데다 지난해 초 시카고상품거래소에서 t당 216달러에 거래되던 밀이 현재 168달러로 20% 넘게 하락하는 등 원재료 부담까지 감소한 덕분이다. '허니버터칩' 열풍을 일으킨 해태제과는 전년보다 두 배 늘어난 450억원(1~3분기)의 영업이익을 냈다. 해태제과는 올 상반기 상장(上場)을 준비하고 있다.

서용구 숙명여대 교수(경영학)는 "해당 기업들이 신(辛)라면·진라면 등 소비자들이 가격 변화에 민감한 제품의 가격을 유지하면서 가격 저항이 상대적으로 낮은 신제품을 비싼 값으로 출시해 사실상 가격 인상 효과를 노린 전략이 적중했다"고 말했다.

"우물 안 벗어나 글로벌 시장 공략을"

일부 회사는 활발한 해외 공략으로 영업이익을 불렸다. 초코파이와 오!감자 등 주력 스낵류가 중국 시장에서 선전한 오리온과 인도·동남아 시장을 공략한 롯데제과가 대표적이다. 두 회사의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각각 25% 정도 상승했다.

많은 영업이익을 챙긴 오리온은 가격을 그대로 둔 채 과자 무게를 10~20% 늘렸을 뿐이다. 식음료 업계를 통틀어 가격 인하 움직임이 전무(全無)하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이렇게 많이 벌었으면 가격을 좀 내려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매출 정체 상태에서 영업이익만 늘어나는 구조가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고 말한다. 소비 방식 변화로 고가(高價) 제품이 많이 팔리면서 나타나는 일시적 현상이라는 이유에서다. 식품 업체들이 중장기 생존력을 확보하려면 우물 안 내수 시장을 벗어나 글로벌 식품 시장 공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준 산업연구원(KIET) 연구위원은 "해외 현지인 입맛에 맞는 고부가가치 식품으로 외국 시장을 적극 파고들어 시장 전체의 파이를 키워야 지속가능한 성장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