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헤드 라이트에 매니큐어를 바르면 어떻게 될까?"

이런 원리를 자동차 부품 개발에 응용해 장영실상을 받은 두 연구원이 있다. 현대모비스 재료연구팀의 이정환(40) 책임연구원과 김야원(32·여) 연구원이다. 두 사람은 올 해 1월 둘째주 '자동차 헤드램프 초고내후 하드코팅'을 개발한 공로로 상을 받았다. 장영실상은 신기술 제품을 개발·상품화해 기술혁신 을 이룬 국내 기업과 연구소의 기술 개발 담당자에게 주는 상이다.

‘내후성(耐候性)’이란 특정 물체가 빛이나 습기, 비·바람 등 자연환경에서도 성질이 변하지 않고 견딜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두 사람은 주로 유리나 금속이 쓰였던 자동차 헤드라이트 램프를 플라스틱으로 바꾸고, 강한 내구성을 유지하면서도 극한의 환경에서도 견디는 높은 수준의 코팅 기술을 개발했다. 한 번 코팅으로 자동차 램프를 보호하는 갑옷 역할을 한다.

사막의 모래 바람을 견디고, 영하 40도 추위에서도 플라스틱 안쪽의 결로를 방지한다. 손톱을 보호하기 위해 매니큐어를 바르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현재 국내에서 생산되는 차량 가운데 신형 투싼과 K5 모델에 적용되고 있다.

현대모비스 마북연구소 전장 연구소 전경

지난 5일, 경기도 용인의 현대모비스 마북연구소를 찾았다. 연구소는 엄격한 보안을 요구했다. 하루 전 방문 신청을 마쳤는데도 쉽게 들어갈 수 없었다.

사진 촬영은 금지였다. 안내 직원은 스마트폰 앞면과 뒷면 카메라에 스티커를 붙였다. "스티커를 훼손하면 안된다"는 엄중 경고도 했다. "노트북이나 이동식 저장장치(USB)는 따로 신고를 해야 하는데, 신고를 받은 바 없기 때문에 안으로 가지고 들어갈 수 없다"고 했다. 결국 노트북 가방을 입구에 맡겨야 했다. 마북 연구 A동 1층 M2 회의실에서 두 연구원을 만났다.

◆ "실험 보다 스터디·세미나 더 많이 해"

-평소 연구원으로 하는 일은 무엇인가?

“연구원이라고 하면 실험만 하는 줄 아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아요. 어떤 기술을 개발하거나 제품을 만들려면 공부를 해야하거든요. 그룹 스터디도 하고 세미나도 듣고, 논문도 찾아봐요. 이런게 기본이죠. 개발 중인 기술이나 제품에 대해 협력업체와 수시로 연락을 주고 받으면서 상황을 파악하기도 해요. 그러면서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이걸 자동차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게 일이에요. 자동차 램프 같은 경우에는 유리나 금속 대신 플라스틱을 써보기도 하고요. 플라스틱이라도 어떤 플라스틱이 좋은지 수 십 종류를 사용해보면서 분석하는 일을 합니다” (김야원 연구원).

현대모비스 김야원 연구원(좌)과 이정환 책임연구원(우) 인터뷰 하는 모습

-'자동차 헤드램프 초고내후 하드코팅'을 개발하게 된 계기는?

“원가를 절감하는 게 목표였습니다. 그동안 자동차 헤드램프 생산 기술은 해외의 한 업체가 거의 독점하던 상황이었어요. 전세계 시장에서 점유율이 50%를 넘었으니까요. 기술이 부족했던 후발 업체 입장에서는 비싸고 성능이 별로인 제품을 쓸 수밖에 없었죠. 그래서 우리 기술로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이정환 책임연구원).

-만드는 과정은?

“어려웠죠. 자동차 헤드램프는 플라스틱인데, 이게 흠집도 잘 생기고, 열이나 추위에 약하다는 단점이 있어요. 여기에 도료를 뿌려서 일종의 코팅을 하는거죠. 그런데 우리는 이런 기술이 없던 상황에서 만들어야 했어요. 자동차 헤드램프에 적합한 플라스틱을 찾는 것부터, 도료에 들어가는 성분까지 하나하나 분석하고 찾아가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김야원 연구원).

-국내에서만 인정받은 기술인가?

“작년에 미국에서도 'AMECA 5년' 인증을 받았습니다. AMECA는 전 세계 자동차 내부 장비에 대해서 안전성이나 적합성 등을 인증하는 기관이거든요. 여기서 우리 기술로 한번 코팅하면 5년을 견딜 수 있다는 것을 인정받은 것이죠. 원래 'AMECA 5년' 인증은 없었어요. 내구성을 3년까지 인증해주는 'AMECA 3년' 인증만 있는 상황이었는데, 우리 기술이 세계 최초로 인정받으면서 새로운 인증이 만들어졌습니다” (이정환 책임연구원).

-개발까지는 얼마 걸렸나?

“2008년부터 시작해서 2013년에 마무리 했습니다. 중요한건 우리가 개발한 이 제품이 정말 5년을 견딜 수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이었습니다. 3개월의 실험을 통해 이를 증명해냈죠. 어떤 방식으로 실험을 해야 인정을 받을 수 있는지 기준을 만들고 실험 방법을 고안하는 것이 제일 어려운 일이기도 했습니다” (이정환 책임연구원).

-기준이나 실험 방법에 관해 설명해 줄 수 있나?

“보안상 외부에 알려지면 안되는 사안이라 자세한 설명은 조금 어려울 것 같습니다” (김야원 연구원).

“몇몇 기억에 남는 실험은 있어요. 코팅한 자동차 헤드램프가 미국의 모래바람에도 견디는지 보기 위해 죽음의 계곡으로 불리는 데스밸리(Death valley)에서 2주간 실험을 한 일이 있습니다. 강한 햇볕에 플라스틱이 변색되는 일은 없는지, 빛이 굴절되지는 않는지, 모래 때문에 플라스틱에 흠집이 생기지는 않는지 걱정하며 옆에서 지켜 봤습니다. 한 낮 기온이 40도를 넘는데 밀짚 모자를 쓰고 옆에 있었죠. 장대비가 쏟아져도 바닥에 닿으면 바로 증발해버릴 만큼 덥고 건조한 지역이었는데, 그냥 가만히 서있는 것만으로도 죽을 맛이었습니다” (이정환 책임연구원).

-이미 개발했거나 개발 중인 제품 가운데 기억에 남는 것이 있나?

“아픈 손가락이 있어요. 손가락을 다친 건 아니고요. 2010년부터 개발하고 있는 제품인데, 아직도 성과가 나오지 않고 있어서 그렇게 표현해요. 자세한 건 설명해 드리기 어렵지만, 개발에 성공하면 자동차 부품 시장을 놀라게 할 수 있을 겁니다” (김야원 연구원).

자동차 신기술 아이디어 가전제품에서도 얻어

-신기술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나?

“예전에는 모터쇼 같은 곳에서 다른 업체들의 기술을 눈여겨 봤어요. 어깨너머로 훔쳐보기도 하고, 아이디어를 차용하기도 했던거죠. 하지만 요즘은 전혀 다른 분야에서 힌트를 얻기도 해요. 가령 이런 코팅 기술은 스마트폰의 지문 인식기능과 연관이 있어요. 스마트폰 액정에도 얇은 막을 씌우거든요. 그러면서도 닳지 않도록 한다든지 하는 기술을 입히는데, 이런 부분이 힌트가 될 수 있죠. CES같은 세계 가전 대회에서도 자동차에 적용할 수 있는 신기술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는 거죠” (김야원 연구원).

현대모비스 김야원 연구원(좌)과 이정환 책임연구원(우) 인터뷰 하는 모습

-주목하는 연구 분야는?

“금속을 대체할만한 플라스틱을 개발하는 게 목표입니다. 헤드램프도 그렇지만 최종적으로는 차량 외관에 사용되는 금속판을 플라스틱이 대체할 수 있도록 하는거죠. 플라스틱이 가벼운 만큼 자동차를 경량화 할 수 있거든요. 대신 그만큼 튼튼하면서도 열에도 잘 견뎌야 하죠. 문제는 가격입니다. 아무리 좋은 제품이어도 수지가 맞지 않으면 양산할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한테 많은 이문이 남아도 협력사한테 손해가 생기거나, 그 반대의 경우에도 상용화 시킬 수 없어요. 이런 과정을 다 충족한 뒤에야 생산에 들어가는 거에요” (이정환 책임연구원).

-향후 목표는?

“우리(현대모비스) 규모가 세계 자동차 부품 시장에서 6번째쯤 됩니다. 예전에는 우리가 해외 업체를 일방적으로 따라가는 수준이었다면 이제는 여러 방면에서 앞서나가는 분야도 생기고 있어요. 더 많은 연구와 개발을 통해서 다른 회사들이 우리를 따라올 수 있는 그런 회사로 만들고 싶습니다.” (이정환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