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XC 대표이사 김정주를 밀착 취재한 리포트 ‘플레이’의 저자 신기주.

조선비즈에 입사한 지 약 1년이 지난 어느날 비행기를 타는 첫 출장이 들어왔다. 정확히 말하면 당시 IT팀에 같이 있던 선배 기자에게 들어온 출장이었는데, 선배가 내게 흔쾌히 양보해 가게 됐다.

출장지는 제주도였다. 목적은 넥슨컴퓨터박물관 개관 기념 기자 간담회에 참석하는 것. 선배는 “JJ(김정주 NXC 대표이사)가 직접 나오는 자리니 신경쓰라”고 신신당부했다.

당시 나는 그리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것 같다. JY(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나 ES(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같은 재벌도 아닌 JJ가 기자들 앞에 선다는 게 그리 중요한 일이었을까. 그저 제주도에 간다는 생각에 설렐 뿐이었다.

그러나 제주도 출장 둘째 날 JJ가 연단에 올랐을 때, 100명이 넘는 기자들의 눈에서 나는 뭐라 정의하기 어려운 것을 읽었다. 어떤 눈에서는 흥분이, 또 어떤 눈에서는 경외와 비슷한 것이 읽혔다. 모두가 각기 다른 얼굴로 일제히 카메라 셔터만 눌러대고 있었다. JJ는 쑥스러운 듯 웃으며 두 손으로 이마를 가렸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날 그의 기자간담회 참석은 15년만의 일이었다.

김정주는 은둔의 경영자다. 그래서 더 신비롭고 궁금하다. 그는 베일 뒤에 숨어서 이따금씩 세상을 놀래킬 뉴스를 던지곤 한다. 2013년 12월 노르웨이 유모차 브랜드 ‘스토케’를 인수할 때도 그랬고, 올해 1월 ‘절친’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에게 전쟁을 선포했을 때도 그랬다.

‘플레이’는 김정주가 직접 쓴 자서전 같다. 그만큼 그의 대학 학창시절과 창업, 경영, 회사 상장, 그리고 엔씨소프트와의 경영권 분쟁까지 그의 성공 과정을 낱낱이 해부했다. 글 잘 쓰기로 유명한 잡지 기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저자 신기주는 책을 쓰기 위해 김정주에 대해 집요할 정도로 자세히 취재했다. 또 그를 가까이서 수십 년 관찰해온 듯 상세히 서술했다.

이를테면 이런 표현이다. “김정주는 피자를 삼키다 말고 말했다. ‘이거, 유료화하자.’ 넥슨이 세 들어 있던 선릉역의 세강빌딩 앞 피자집이었다. 이승찬과 김진만은 입에 든 피자를 씹지도 못하고 넘기며 서둘러 물었다. (후략)” 김정주는 물론 주변인들까지 집요하게 취재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내용이다.

저자는 특히 관계성에 주목했다. 김정주와 주변인들 간 관계 형성, 그리고 그 안에서 김정주가 얻은 것들을 연대기처럼 서술했다.

유명한 게임 고수였던 김상범 넥슨 공동 창업자, ‘코프릴’이라는 게임 아이디를 썼던 또 다른 고수 이희상 엔씨소프트 부사장, 그리고 김정주와 매일 같이 통닭을 시켜 나눠먹으며 망상에 젖곤 했던 송재경 엑스엘게임즈 대표이사, 친구들끼리 포커를 치면 늘 돈을 따갔던 이해진 네이버 의장⋯.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 대한민국 벤처 신화를 쓴 주역들이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 그리고 어떤 상호 작용 속에서 어떻게 성장했는지가 수많은 일화와 함께 서술됐다.

김재훈·신기주 지음ㅣ민음사ㅣ375쪽ㅣ2만원

저자는 책 후반부에 김정주와 인터뷰한 내용을 일문일답 형식으로 수록했다. “큰 딜을 한다는 게 두렵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한 김정주의 답변을 소개한다.

“두려워요. 늘. 그런데 제가 깡통 차는 건 전혀 두렵지 않아요. 원래 맨몸으로 태어났는데 돌아간다 해도 뭐 어때요. 회사 인수 합병이라는 게 물건 사는 거랑 다르잖아요. 제가 사러 간다고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안 사겠다고 안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거든요. (후략)”

2013년 7월 제주도에서 JJ를 보았을때, 100여명의 기자는 흥분하고 열광했지만 정작 그는 플래시 세례가 부끄러워 얼굴을 가렸다. 그는 수천억원 규모의 M&A건을 과감히 결정하고 더 과감하게 발표하지만, 마음속으로는 늘 두렵다고 한다. 오늘날의 김정주를 완성한 것은 이러한 ‘반전’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