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건축과, 예일대 건축과 석사, 유네스코 아시아 태평양 문화유산상, 서울시 건축상 2회 수상. 2004~2008년 북촌 한옥 리모델링 작업으로 ‘한옥 건축가’란 별명과 인지도를 얻음.

이력서 위의 건축가 황두진은 엘리트의 전형이다. 날카롭고 예민한 외모를 가진, 문장마다 전문용어를 사용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서울 통의동 황두진건축사사무소에서 만난 그는 기자의 예상을 단박에 깼다. 전위적인 예술가들마냥 민머리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미소를 띤 얼굴과 차근차근 답하는 말투, 역사책과 소설책, 건물 모형 따위가 가지런히 배치된 응접실 분위기가 편안했다.

한옥을 리모델링하거나 한옥 양식을 현대건축에 접목한 작업 덕에 ‘한옥 건축가’라는 별명이 붙은 황두진. 서울 효자동에 본인의 이름을 내건 건축사무소를 운영한다.

도시 건축의 미래와 한국적인 건축에 대해 고민해온 그는 몇 년동안 고민한 결과물을 ‘무지개떡 건축’이라는 책으로 펴냈다. 도심공동화, 긴 통근시간과 교통 체증, 몰개성한 재개발 건축 등 한국 대도시의 문제들이 ‘낮은 밀도’와 ‘용도의 단일성’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뭘까? 밀도가 높고 복합적인 건물인 ‘무지개떡 건축’을 활용하는 것이라고 황두진은 생각한다. 스스로를 ‘동네 건축가’라고 부르는 그를 만나, 도시 건축의 대안에 대해 물었다.

◆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 한국 도시엔 안 어울린다”

한국 건축만의 새로운 특징이 있습니까?

“한국 건축의 특징을 굳이 말하자면, 다른 나라의 건축에 비해서 대체적으로 조형이 강하지 않은 것 같아요.”

―조형이 강하지 않다는 게 무슨 뜻인가요?

“외국 건축물과 비교해보면 건물의 성격이 강하지 않아요. 건물이 만들어지는 상황과 관계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유럽의 도시 정책은 오래된 건물을 유지하기 위한 보존 중심입니다. 도시도 생명이 있는 유기체니까 수시로 변화해야 하는데, 유럽 도시들은 규제가 많기 때문에 그런 활력을 잘 받아들여줄 상황이 아닌 거예요. 그러다 보니 도시의 활력을 유지하기 위한 처방으로 굉장히 강렬한 형태와 색깔, 조형 언어를 가진 랜드마크 같은 건물을 여기저기 심습니다. 유럽 도시의 매력은 이런 강렬한 건물들이 잘 보존된 역사적인 환경과 만들어내는 ‘극적인 대비’에서 비롯됩니다.

대표적인 예가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입니다. ‘빌바오 효과(쇠락해가던 스페인의 지방 공업도시 빌바오는 랜드마크가 된 미술관 건물 덕에 관광업 전성기를 맞았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죠. 사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건물의 강렬한 조형만이 아닙니다. 빌바오 구겐하임의 배경이 되는, 잘 보존된 역사도시인 빌바오도 중요해요. 프랭크 게리의 건물을 우리나라 도시, 서울 같은 곳에 지어 놓으면 그런 강렬한 대비를 얻지 못했을 겁니다.

반면에 우리나라 건축가들은 강렬한 조형을 특징으로 한 건축은 하지 않는 편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가 너무 혼잡하고 변화무쌍하다 보니, 오히려 정숙하고 정제된 건물이 도시 전체와의 균형 면에서 더 잘 맞다고들 생각하는 지도 모르겠어요. 저도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도시에는 절제하되 깊이가 있는 걸 만들고 싶다고 생각하고.”

―그렇다면 한국의 건축은 도시와의 균형을 중시하는 현대 건축의 흐름과는 맞는 거군요.

“우리나라는 ‘잘 보존된 도시’라는 맥락이 깔려 있는 사회가 아닙니다. 아직까진 (건축물들이) 들쭉날쭉 마음대로예요. 굳이 여기에 혼란을 더하지는 말자, 라는 (건축가들의) 공감대랄까요? 아우성을 치는데 혼자 조용히 있으면 그 사람의 존재가 부각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건축사무소와 황두진 대표의 자택은 ‘목련원’이란 건물에 있다. 1970년대에 지어진 건물에 3층짜리 새 건물을 연접해 증축했다. 그가 생각하는 ‘무지개떡 건축’을 실현한 건축물이다.

◆ “낮고 단순한 건물이 도시 문제를 낳는다”

황두진은 건물 하나 잘 짓는 걸 목표로 두지 않는다. 현대인의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게 도시 생활이라면, 도시의 모습을 더 아름답고 효율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주거기능만 몰아넣은 폐쇄적인 아파트 단지, 밤이 되면 텅 비는 상업시설과 사무공간을 ‘시루떡 건축’이라고 부른다. 이런 단일 용도 건축물이 도심공동화, 출퇴근 문제 등을 낳는다고 지적한다.

―대안으로 제시한 ‘무지개떡 건축’이란 어떤 건축물을 말합니까?

“평균적으로 5층 정도 건물이면 도시적 보편성에 맞는 밀도를 달성하는 거라고 봅니다. 그 다음엔 ‘이 건축이 충분히 복합적인가’가 문제죠. 일하는 건물에선 일만, 잠자는 건물에서는 잠만 자는가? 다시 말해 상주인구와 유동인구를 동시에 수용하는 건축인가, 어느 한 쪽만 수용하는 건축인가. 도시에서는 둘을 동시에 수용하는 건축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무지개떡 건축입니다.”

―구체적인 구조와 형태를 예를 든다면요.

“저층부는 카페나 꽃집 같은 상업시설, 중층부에는 사무실, 상층부는 주거시설이 들어가고, 꼭대기 층에는 옥상마당을 둔 형태를 말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고층건물을 짓지 말아야 한다, 이런 극단적인 얘기가 아니라, 무지개떡 건축물이 우리 도시의 평균적인 건물이면 여러가지 도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입니다. 1층짜리 주택과 상가가 죽 늘어선 동네가 있다면, 용무가 있을 때 먼 거리를 다녀야 합니다. 하지만 중층 복합 건물이 보급되면 여러 가지 기능을 가까운 공간에 모아둘 수 있겠죠.”

건축가 황두진이 고안한 ‘무지개떡 건축’인 중층 고밀도 복합건물의 개념도.

―한옥 작업도 많이 하고 ‘한옥이 돌아왔다’는 건축 책도 쓰셨는데, ‘한옥의 특성을 살린 건축물’에는 어떤 요소가 들어가야 한다고 보시나요?

“제가 강조하는 밀도와 복합이라는 면에서, 한옥은 불리합니다. 하지만 한옥의 특성, 가치를 반영한 건축은 가능하죠. 예를 들어 한옥의 다공성, 공간이 열려 있다는 점은 좋습니다. 한국의 기후에도 잘 맞고요. 옥상마당이라든지 건물의 일정 부분을 통로로 확보하는 게 한옥의 영향인 거죠.”

―마당이 있는 집은 많은 한국인의 로망인데요.

“100년 전만 해도 조상들은 100% 단층집에 살았어요. 토지밀착형 삶인데, 그래서인지 현대인에게도 마당에 대한 동경이 있어요. 하지만 서울 인구만 해도 1000만명, 수도권까지 넓히면 2500만명이 모두 마당이 있는 단층집에서 산다면, 집으로 국토 전체를 뒤덮을 거예요.

하지만 어떤 건물이든지 옥상은 있으니까, 계획 단계부터 옥상을 잘 활용할 방안을 찾아야 합니다. 실내공간과 야외공간이 가까이 붙어 있어야 해요. 그냥 옥상에 문 열고 나가면 바로 정원이 있게끔. 통계를 찾아봤더니 서울 전체의 옥상 면적을 서울시 가구 수로 나누면, 47㎡(약 14평) 정도 되거든요. 절대 양으로는 어마어마하게 넓은 옥상이 서울시에 있다는 겁니다. 그게 전원생활과 교외에 대한 대안이다, 무지개떡 건축이 늘어나면 옥상에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 수 있다, 이런 얘깁니다.”

―서촌을 지나다 보면 기와나 창호문 장식 같은 한옥 양식을 가미한 건물들이 제법 보입니다. ‘한옥의 영향’을 받은 건축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정해진 기준이 있나요?

“한옥을 현대 건축에 활용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기와 같은 직접적인 재료를 사용하는 건 하나의 방법인 거죠. 또 다른 방법으로는 한옥에 대한 이해가 있는 사람이 보면 ‘이건 한옥적인 상황이다’라고 말하는 방식이 있습니다. 높은 다공성(통기성) 같은 한옥의 건축적인 특징을 활용한 거죠. 전통 건축을 현대 건축에 수용하는 방법이 다양해질수록 좋은 거라고 생각합니다.”

황두진 건축가는 서촌 애지헌(愛知軒)을 ‘전통 건축의 형태’에 ‘첨단 기술이라는 기능’을 접목하는 형태로 설계했다.

◆ “서울역 고가도로 공원화, 1순위 과제는 아니다”

황두진은 서울, 그 중에서도 구(舊)도심에서 하는 작업들 좋아한다. 법적인 제약이 많아 타협하고 조율할 점이 많지만, 작업할 장소의 역사를 알아가면서 일하는 게 재밌다고 설명했다. “역사가 오래된 도시에서 일하는 건축가들만이 누릴 수 있는, 독특한 특권 같은 거죠.”

―요즘 서울에서 주목 받는 건축사업은 ‘서울역 고가도로 공원화’ 같습니다. 어떻게 보시나요?

“고가도로 공원은 있으면 좋은데, 그 사업이 우선순위가 그렇게 높을까, 라는 의문이 들어요. 공원이 만들어지면 왜 나쁘겠어요. 하지만 장기적으로 많은 자원과 관심이 투입되는 사업인데, 서울이라는 도시의 수많은 과제들 중에서 우선순위가 제일 높은지는 잘 모르겠어요. 정치적인 것과는 무관한 얘깁니다. 예를 들면 서울에는 여전히 구도심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어떻게 종로구나 중구에 상주인구가 돌아오게 할 것인가. 서울이라는 도시의 미래를 생각할 때는 이런 문제들이 더 중요해 보입니다.”

―뉴욕은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시드니는 오페라하우스처럼 세계 유수 도시들을 보면 랜드마크라고 할 만한 건축물이 있습니다. 서울을 대표하는 건축물은 어떤 게 있을까요?

“남산타워(N서울타워)가 제일 지배적인 이미지인 것 같고, 그 다음이 세종로에서 바라본 경복궁. 이 두 건축물에는 공통점이 있어요. 자연과 인공적인 구조물이 결합되어 있는 형태라는 겁니다. 남산타워는 말 그대로 남산 위에 있는 타워고, 경복궁을 랜드마크라고 할 때는 경복궁 뒤로 보이는 산까지 포함하는 거죠.

서울이 세계적인 대도시와 다른 점은 여전히 ‘자연이 굉장히 지배적인 도시’라는 거에요. 어딜 가나 산이나 강을 느낄 수 있죠. 인간이 아무리 크고 높은 구조물을 세워봐도, 규모나 시각적인 면에서 자연을 이길 수는 없는 거예요. 그래서 서울에서 랜드마크를 만들 때는 하나의 건물이 그 배경이 되는 산과 어떻게 연관될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는 거죠.”

―외국에도 자연과 인공물이 잘 어우러진 도시가 없지는 않을텐데요.

“뉴욕은 자연의 존재가 잘 안 느껴지죠. 도쿄는 지대가 평평하고. 누가 저한테 서울이 어떤 도시인지 왜 특별한지 물으면 저는 이종격투기 선수에 비교할 겁니다. 서울은 단일 종목에서는 챔피언이 아닙니다.

세 가지 기준이 있는데, ‘세계적인 대도시인가’ ‘자연이 아름다운가’ ‘역사가 오래됐는가’입니다. 대도시로서의 위상은 뉴욕, 도쿄, 어쩌면 상하이에도 밀릴지도 모르겠어요. 서울이 사실 행정구역이 넓지 않아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도시는 울산입니다. 자연이 아름다운 도시도 많아요. 스위스의 도시들이 그렇죠. 서울보다 역사가 오래된 도시는 아테네, 시리아의 여러 도시들이 있죠. 백제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지만, 일단 체감하는 서울의 역사는 600년 정도니까요.

하지만 이 세 가지 요소를 더해보세요. 다 갖춘 도시가 얼마나 있는지. 단일종목으로 겨루면 서울보다 나은 도시가 있겠지만, 이종격투기로 가면 서울이 승자라는 얘깁니다. 마이크 타이슨(권투 챔피언)은 아닌데 미르코 크로캅(정상급 이종격투기 선수) 정도는 되는 거예요(웃음).”

올해로 만 52세. 건축가로서 갈 길이 한창인 나이다. 일흔 즈음엔 자신의 작업을 총망라해 ‘한옥적 가치를 담은 건축 책’을 새롭게 출간하고 싶다는 ‘동네 건축가’의 행보를, 기대를 갖고 지켜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