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화학 업계가 '양(量)보다 질(質)'로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다. 우리 기업들의 최대 시장인 중국이 경기 침체에 빠진 데다 중국 토종 제품의 점유율이 상승하는 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함이다. 한국 화학기업들은 R&D(연구개발) 조직 신설, 프리미엄(고급) 제품 확대, M&A(인수합병) 등으로 맞서고 있다.

중국 돌파 최고 카드는 R&D

국내 석유화학업계가 처한 가장 큰 어려움은 중국에서의 판매 부진이다. 중국은 우리나라 화학제품 수출의 절반을 차지하는 최대 시장이다.

한국 기업의 고전(苦戰)은 중국 시장에서 차지하는 중국 토종 제품 비중이 매년 높아지는 데서 확인된다. 토종 제품의 판매 비중은 2013년 74%에서 2017년 88%로 상승이 확실시된다. 김평중 석유화학협회 본부장은 "특히 폴리염화비닐(PVC)과 고순도텔레프탈산(TPA) 등 주요 범용 제품의 자급률은 2013년 기준 각각 95%, 91%에 달한다"며 "이런 추세로 보면 중국은 조만간 석유화학제품 순(純)수출국이 돼 한국을 위협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화학기업들은 이에 맞서 중국 경쟁사들이 추월하기 힘든 기술 개발에 총력을 쏟고 있다. 지난달 국내 석유화학기업 최초로 중국에 연구개발센터를 세운 LG화학이 대표적이다. 100억원을 투자해 설립한 광저우(廣州) '화남(華南) 테크센터'는 현지 맞춤형 R&D 전담 조직으로 품질 개선, 생산성 향상 등 종합 기술 솔루션을 제공한다.

박진수 부회장은 "이 센터의 설립으로 현지 고객에게 대응하는 시간을 줄이고 신규 고객을 확보해 연간 20만t 정도인 제품 판매량을 30만t으로 늘릴 것"이라고 말했다.

한화케미칼도 이달 2일 KAIST와 함께 '미래기술연구소'를 설립했다. 김창범 한화케미칼 사장은 "범용 제품 중심의 국내 석유화학 산업이 중국 등 글로벌 경기 침체를 비롯한 다양한 외부 리스크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미래형 원천기술 확보가 중요하다"며 "효과적인 산학협력을 통해 차세대 석유화학 물질 원천기술과 제조 기술 개발에 성과를 내겠다"고 말했다. 이들은 중국 현지 맞춤형 제품 생산도 늘린다는 방침이다.

"해외 기업과 M&A도 해야"

주력 제품도 범용 제품을 넘어 최첨단 프리미엄 제품 생산 쪽으로 선회하고 있다. LG화학은 최근 전남 여수 공장의 고흡수성 수지(SAP) 생산 능력을 증설했다. SAP는 4g 정도만 있어도 약 2L(리터)의 물을 모두 흡수하는 물질로 기저귀, 여성용품 등의 원료로 사용하는 고부가가치 제품이다. 한화케미칼은 '고함량 EVA(에틸렌 비닐 아세테이트)'의 생산시설을 확장하고 있다. 이는 태양전지 시트 등에 사용된다. 미국 듀폰 등 일부 글로벌 기업만 생산해온 고급 제품이다.

효성은 차세대 플라스틱 소재로 각광받고 있는 '폴리케톤' 개발을 위해 지금까지 약 500억원을 연구개발에 투자했다. SK케미칼은 200도 이상의 열을 견디는 물질로 금속을 대체하는 용도로 쓰이는 '수퍼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개발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M&A(인수합병)를 통한 선택과 집중 전략도 펴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최근 삼성그룹의 화학 부문을 3조원에 사들여 약점이던 고부가가치 화학 제품의 비중을 높였다.

한화케미칼은 지난해 1조원에 삼성토탈·삼성종합화학을 인수해 생산 제품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하고 원료 조달의 안정성을 높였다.

이형오 숙명여대 교수(경영학부)는 "한국 석유화학기업들이 국내 기업은 물론 우수한 기술력을 지닌 해외 기업과의 M&A도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