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와 두산그룹은 축배(祝杯)를 들었고 롯데와 SK그룹은 고배(苦杯)를 마셨다. 14일 관세청 면세점 특허심사위원회의 사업자 선정에서 신세계는 SK의 서울 워커힐면세점 사업권을, 두산은 17년 된 롯데의 서울 잠실 월드타워점 사업권을 각각 가져갔다. 올 7월 한화그룹에 이어 신세계와 두산이 서울 시내 면세점 시장에 진입한 것이다. 부산 지역 면세점은 현행 사업자인 신세계가 재선정됐고 충남 지역 중소 면세점 사업권은 디에프코리아가 따냈다.

업계에선 이에 대해 "여러 기업이 면세점 사업에 참여하게 돼 독과점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5년마다 사업권을 허가하는 방식은 기업의 투자 의욕을 꺾고 소모적 다툼을 부채질해 글로벌 경쟁력을 해친다"는 반론도 상당하다.

면세점 춘추전국시대

롯데그룹의 잠실 월드타워점 패배는 독과점 논란과 형제 간 경영권 다툼 탓이 크다는 분석이다. 작년 말 기준 롯데의 국내 면세점 시장 점유율은 53%이고 롯데가(家) 형제 경영권 분쟁은 110일 넘게 진행 중이다. 롯데 관계자는 "고비마다 노이즈(noise·소음) 마케팅을 편 신동주 SDJ 코퍼레이션 회장 측의 '방해 공작'도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말했다.

두산은 이 틈을 헤집고 '서울 동대문을 강북의 새 관광 허브로 만들어 5년간 신규 관광객을 1300만명 유치하겠다'는 청사진으로 사업권을 따냈다. 박용만 두산 그룹회장은 '동대문 상권 전체를 발전시키는 면세점이 되겠다'는 기본 아이디어를 내며 사업권 신청 단계부터 진두지휘한 것으로 알려졌다.

SK가 23년 된 워커힐면세점 사업권을 뺏긴 큰 원인 중 하나는 매출 부진이다. 워커힐면세점의 지난해 매출(2747억원)은 중소·중견 규모인 광화문 동화면세점(약 2919억원)보다 적다. 신세계그룹은 백화점 본점을 면세점 건물로 쓰겠다는 승부수를 던져 서울 시내 면세점 시장 진입에 성공했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면세점 선정에서 탈락한 올 7월 임직원들에게 "일희일비하지 말고 다시 도전하자"며 독려했다.

"5년짜리 비정규직 대거 쏟아질 듯"

하지만 이번 면세점 선정이 '나눠먹기식'으로 진행돼 상처를 남겼고 '사업 안정성'을 깨뜨려 부작용을 낳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예전에는 10년마다 사업자를 선정했고 특별한 결격 사유가 없으면 기간을 연장했다. 일부 정치인의 발의(發議)로 2012년 말 관세법이 개정돼 5년마다 모든 참여자가 신규 사업자처럼 '제로 베이스'에서 심사를 받는다.

서용구 숙명여대 교수는 "명품 등 고가 상품을 직매입하고 물류 시설을 확보해야 하는 면세 사업은 대규모 초기 투자가 필수적인데 5년이란 짧은 기간에는 장기 투자 실행이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국내 1위 면세점인 롯데면세점이 최근 5년간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홍보와 판촉 활동에 투입한 비용은 2조원이 넘는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인 관광객 사이에선 롯데면세점 로고가 박힌 쇼핑백에 상품을 담고 구매 장면을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담아야만 제대로 인정받는다"며 "이런 브랜드 가치는 2~3년 만에 못 쌓는다"고 말했다.

면세점 직원들의 고용 안정도 숙제이다. 탈락 업체 소속 직원 일부가 스카우트되더라도 상당수는 '5년 기한 비정규직'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정부가 '탁상 행정'으로 일관하며 심사 결과 등을 비밀에 부치는 등 밀실(密室) 결정을 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시한부 특허 再考해야"

한국 면세점들이 사업권 재확보 경쟁을 벌이는 반면, 경쟁국들은 대형화로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 10여회 인수·합병을 통해 세계 1위가 된 스위스 듀프리와 지난해 중국 하이난성(海南省)에 세계 최대 면적의 면세점을 연 중국 국영기업 CDFG가 대표적이다. 독과점 논리에 사로잡히는 한 세계시장에서 한국 면세점의 미래는 어둡다는 분석이다. 정재완 한남대 교수는 "5년 단위 사업자 선정 방식을 재고하고, 면세점 사업 관련 역량과 시설을 갖춘 기업은 모두 할 수 있도록 진입 장벽을 대폭 낮춰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