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카드사는 최근의 트렌드에 맞춘 새로운 카드를 출시하려고 준비하다가 작업을 잠정 중단했다. 새 카드에 넣으려던 혜택 중 일부를 다소 줄이는 쪽으로 카드를 다시 설계하기 위해서다. 카드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최근 발표한 가맹점 수수료율 인하 폭이 업계 예상을 크게 뛰어넘는 수준이라 내년도 사업 계획을 완전히 다시 짜고 있다. 카드를 발행하면 5년 동안 부가서비스를 바꿀 수 없어 일단은 무리한 혜택은 넣지 말고 수수료 감소 추이를 지켜보자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정부와 새누리당이 영세 자영업자들의 수수료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내년 1월부터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율을 최대 0.7%포인트 내린다고 최근 발표하면서 내년도 사업 계획을 수립하고 있는 카드사들에 비상이 걸렸다. 카드 업계는 이번 수수료율 인하로 인해 수익이 한 해에 약 7000억원 감소하리라고 내다보고 있다. 그만큼 비용을 줄이거나 새로운 수익원을 찾아내지 않으면 결국 인원 감축 등 극단적인 '몸집 줄이기'가 불가피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카드사들 "비상 체제"… 소비자 혜택 줄일 수도

B카드사의 각 부서엔 최근 "비용 절감 방안을 부서별로 수립해 보고하라"는 지침이 내려왔다. 수수료 수입 감소가 예고된 상황에 일단 '허리띠 졸라매기'부터 해보자는 조치다. B카드사 관계자는 "고객에게 보내는 문자 메시지가 요금이 비싼 MMS(대용량 문자메시지)로 넘어가지 않도록 글자 수를 줄이고, 회원들에게 보내는 우편물의 종이도 가벼운 재질로 바꿔 발송비를 줄이자는 등 구석구석 절감 가능한 비용은 다 줄이자는 쪽으로 각 부서가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다"고 말했다. C카드사는 내부적으로 '비상 체제'임을 선포하고 당분간 매주 2번씩 수수료 인하 대책 관련 임원 회의를 열기로 했다. C카드사 관계자는 "현재 진행되는 내년도 사업 계획을 원칙적으로 원점에서 모두 재검토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고 말했다.

카드사들이 추진하는 비용 절감 방안에는 소비자에게 돌아가던 혜택의 폭을 줄이는 방식도 포함될 전망이다. 카드사들은 2012년 말 1차로 영세 가맹점에 대한 수수료율이 조정되자 수익성 보전 등을 들어 카드 부가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줄여 왔다. 카드 업계 관계자는 "올해부터 카드 부가서비스를 5년 동안 바꿀 수 없도록 규정이 바뀌었기 때문에 카드사들이 카드 자체의 혜택보다는 '○월 중 대형 마트 무이자 할부' '연말까지 병원 업종 무이자 할부'같이 시한을 정해두고 진행하던 프로모션을 많이 없앨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조달 금리 낮아진 카드사, 대출 금리는 '그대로'

카드사들은 가맹점 수수료 인하가 업계의 존재 기반을 흔들 정도로 큰 타격을 입힐 것이라고 토로하고 있지만 금융 당국의 입장은 다르다. 수수료 인하로 인한 수익 감소 폭은 카드사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보고 있다. 실제로 지난 3년 동안 신용카드 가맹점 금리는 꾸준히 하락했지만 카드사들의 순이익은 2013년 1조7000억원, 2014년 2조2000억원 등으로 지속적으로 늘어났다. 저금리가 장기화해 카드사들의 자금 조달 금리가 많이 내려가고 신용카드 사용자도 많이 늘었기 때문이다.

조달 금리가 낮아졌는데도 카드사들이 현금서비스·카드론 금리 등을 내리지 않는 '바가지 영업'으로, 수수료 인하로 인한 수입 감소분을 메울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카드사들은 채권(카드채)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한 후 이를 가맹점에 대금으로 지급하거나 현금서비스·카드론 등을 통해 사람들에게 빌려준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현재 카드채 금리(만기 3년 AA등급 기준)는 2012년 6월(업계 평균 3.8%)에 비해 약 1.7%포인트 하락한 2% 초반 수준이다. 반면 저신용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현금서비스·카드론 금리는 지난 3년 사이에 별로 내리지 않았다. 예를 들어 D카드사의 경우 지난 3년 사이 조달 금리가 5.5%에서 3.7%로 1.8%포인트 내려갔지만, 현금서비스 최고 금리는 1%포인트(28.5→27.5%) 내리는 데 그쳤고, 카드론 금리는 27.5%로 그대로였다.

세종대 경영학과 김대종 교수는 "현금서비스 금리를 카드사 마음대로 정하게 내버려두면 조달 금리가 올라갈 땐 이를 바로 적용하고 내려갈 때는 모른 척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카드는 생활 밀착형 금융 상품인 만큼 가맹점 수수료뿐 아니라 금리에 대해서도 당국의 관리 감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