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맛’, ‘도둑들’, ‘기술자들’, ‘타짜’... 거액의 돈이 나오는 영화들이다.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지폐는 진짜일까? 위조지폐는 위폐범들만 만드는 것이 아니다. 방송 및 영화 촬영용으로도 방송국에서 주문 제작한다.

최근 2년 반 동안 방송국이 제작한 위조지폐가 127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관리가 허술한 탓에 배우가 방송용 위조지폐를 시중에서 부정사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심재철 새누리당 의원이 16일 한국은행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2년 반 동안 촬영용으로 만든 위조지폐가 127억원이었다. 그 중 방송국이 현재 보유하고 있는 위조지폐는 48억4000만원으로 추정된다.

위조지폐를 만들기 위해선 한국은행으로부터 ‘화폐 도안 이용 승인’을 받아야 한다. 한 번 신청하면 12개월동안 유효한 이 승인은 위조지폐 제작 전 이용자의 개인정보와 이용 목적, 이용 기간 등을 서면으로 작성해 한국은행에 제출해야 한다. 기간 연장을 원할 경우 유효기간 만료 1개월 전까지 연장 신청이 가능하다.

지금까지 방송국이 가장 대규모로 제작한 위조지폐는 40억원(옛 1만원권 40만장) 어치로, 2013년 2월 제작됐다. 한국은행은 개인정보 유출 우려로 해당 방송국과 프로그램명은 밝히지 않고 있다. 이 40억원 위조지폐는 한 달 뒤 전량 폐기됐다.

한국은행의 화폐도안 이용승인 기록부에 따르면, 현재 방송국 창고에 잠들어 있는 위조지폐는 48억4000만원으로 추정된다. 방송국은 40억원 위조지폐를 폐기한 뒤부터는 제작비 절감을 위해 한번 만든 위조지폐를 계속 승인 연장 해가며 재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3년 3월에 제작된 3억원, 2014년 4월에 제작된 10억원, 올해 6월에 제작된 30억원의 위조지폐는 현재 승인연장 된 상태다.

한편 방송용 위조지폐는 한국은행의 관리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촬영용 위조지폐가 제작된 지는 오래됐지만 화폐도안 이용 승인 기록부는 2013년 2월부터 작성되기 시작했다. 그 이전에 제작된 위조지폐는 어느 정도 규모에 어디에 있는지 파악되지 않고 있다.

이용 승인을 받지 않았더라도 방송용 위조지폐 제작은 처벌이 힘들다. 형법상으로는 시중에서 사용 또는 판매 목적이 있어야만 통화위조죄로 처벌되고, 저작권법상으로는 저작권자인 한국은행의 고소가 있어야 처벌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지난 6월에는 TV 드라마에서 카지노 지배인 역을 맡은 단역 배우가 방송용 위조지폐 중 30만원 어치를 몰래 챙겨 나와 시중에서 부정사용한 사건이 발생했다.

심 의원은 “방송과 영화 소품으로 제작된 수십억원의 지폐가 시중에서 부정사용될 경우 통화질서에 심각한 혼란을 줄 수 있다”며 “한국은행은 위조지폐가 폐기될 때까지 감시에 소홀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