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제작 중인 광고는 걱정인형(메리츠화재 마스코트)을 전면에 내세울까 하는데요.'

'걱정인형에만 매달리기보다 역발상 광고나 기업 이미지 광고 등을 다양하게 검토하는 게 좋지 않을까.'

메리츠화재 마케팅팀 사원과 김용범(52) 사장 사이에 얼마 전 오간 카카오톡 메시지다. 김 사장이 피드백을 보내기까지는 1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메리츠화재 직원은 누구나 김 사장에게 휴대폰 문자를 보내 의견을 물을 수 있다.

지난 3월 메리츠종금증권 대표에서 메리츠화재 사장으로 자리를 옮긴 김용범 사장의 파격적인 '변화와 혁신' 실험에 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김 사장은 대한생명(현 한화생명) 등 보험회사 경력이 있지만 자산운용 부서에서 일했고 이후 삼성증권, 메리츠종금증권 등을 거쳤기 때문에 '보험맨'보다는 '증권맨'에 가깝다.

변화 속도가 느린 보험사에 순발력 있는 증권사 DNA를 이식하기 위한 김용범 메리츠화재 사장의 다양한 혁신 시도가 주목받고 있다.

김 사장은 올해 3월 406명(전체 인원의 15%)에 대한 희망퇴직을 실시한 후 3차례에 걸쳐 '변화와 혁신 시리즈'라는 제목의 사내 라디오 방송을 통해 혁신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첫째 주문은 대면 보고를 없애고, 문서의 80%를 줄이되 꼭 필요할 경우엔 절대로 1장을 넘지 않도록 한 것이다. 김 사장은 가칭 '메리츠 고등학교'의 비유를 들면서 첫째 업무 혁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메리츠고등학교 학생들은 선생님을 찾아가 '오늘 얼마나 공부했는지' 설명하기에 바쁘고 선생님에게 자기가 한 예쁜 필기 노트를 보여주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을까요?" 대면 보고와 문서를 줄이기 위해 김 사장은 자신에게 직접 휴대폰 메시지를 보내 피드백을 받아도 좋다고 직원들에게 전달했다.

둘째는 이른바 '30분 회의'였다. 부서장과 임원들에게는 정찬우 JD비즈니스컨설팅그룹 대표가 쓴 책 '30분 회의'가 배포됐다. 김 사장은 이를 3번 이상 정독할 것을 주문했고, 이를 근거로 지난 3월 회의 문화를 바꾸기 위한 1박2일 워크숍을 열었다. '회의 전에 무엇을 결정하기 위해 모이는지를 반드시 공유할 것' '참가자 전원이 자신의 의견을 말할 것' '30분을 넘기지 말 것' 같은 구체적인 지침이 워크숍에서 정해졌다.

셋째는 '벽 없는 조직 만들기'로 다른 부서의 직원과 얼마나 협업했는지를 수치화해 인사 평가에 반영하기로 한 것이다. 김 사장은 이를 위해 모든 정보와 데이터를 즉시 공유하고 틈나는 대로 옆 부서와 식사할 것 등을 주문했다.

김 사장은 또 파격적인 '인재 사냥'에도 나섰다. 김 사장은 메리츠금융지주 대표이사로 일하며 월가(街)에서 활동하던 존 리 현 메리츠자산운용 사장의 2013년 말 영입을 제안하고 주도했다. 업계 꼴찌였던 메리츠자산운용의 펀드 수익률은 존 리 사장 취임 이후 업계 최상위권으로 도약했다. 존 리 사장을 찾아낸 '선구안(選球眼)'으로 메리츠화재는 최근 경쟁사인 삼성화재에서 일했던 '보험사 소속 의사 1호'인 강동진씨와 업계 점유율 1위인 삼성화재 다이렉트 자동차보험을 만든 권대영 전 삼성화재 고문을 스카우트했다. 강 담당(준임원급)은 '3대 질병보장보험'을 개발해 지난 3월 내놓았고 권 상무는 온라인 다이렉트 자동차 보험 시스템 구축을 주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메리츠화재의 실험을 보는 보험사들의 전망은 엇갈린다. A손보사 관계자는 "보험은 증권사와 달리 긴 호흡이 필요할 때가 많다. 증권사에 버금가는 순발력과 효율성을 요구하는 실험이 성공할지는 장기적으로 두고 봐야 할 듯하다"고 말했다. 일단 지금까지의 결과는 성공적이다. 사람이 줄어 보상 관련 미(未)결제가 늘어날 것이라고 우려했지만 '업무 슬림화'를 통해 미결제가 오히려 10% 감소했다. 4월 영업이익은 190억4000만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4%, 순이익은 128억9000만원으로 58% 증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