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 면세점을 차지하려는 중견·중소기업 경쟁이 대기업 간 경쟁 이상으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26일 현재 유진기업·하나투어·하이브랜드·한국패션협회·중원면세점·파라다이스 등 6개 업체가 면세점 후보지를 확정하고 다음 달 1일 마감되는 입찰에 도전하겠다고 밝혔다. 신규 사업자 1곳을 뽑는 중견·중소기업 면세점 경쟁률은 6대1. 2곳의 신규 사업자를 놓고 7곳이 출사표를 던진 대기업 경쟁률(3.5대 1)보다 훨씬 높다. 입찰 마감 막판까지 사업 참여 여부를 저울질하는 관련 기업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최종 경쟁률은 더 높아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新관광 중심지 개척' 對 '기존 상권 공략'

중견·중소기업들의 서울 시내 면세점 후보지 입지를 분석해보면, 이들의 전략은 '새 관광 중심지 개척'과 '기존 상권(商圈) 공략'으로 나뉜다. 건설자재 전문회사인 유진기업은 여의도의 옛 MBC 사옥을 후보지로 확정했다. 임진택 팀장은 "한류(韓流) 콘텐츠와 면세점을 결합한 9900㎡(약 3000평) 규모의 신개념 복합 문화·쇼핑 공간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나온 서울 시내 중견·중소기업 면세점 후보지 가운데 김포·인천공항에서 가장 가깝다.

서울 양재동에서 복합쇼핑몰을 운영하는 하이브랜드는 쇼핑몰 3개 층을 면세점으로 활용한다. 서정일 실장은 "면세점 유치로 관광객이 증가하면 대형마트 위주의 주변 상권이 동반 상승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형 주차시설과 새로 개통된 공항버스 노선을 활용해 관광객을 끌어모을 수 있다는 것.

나머지 4개사는 서울 주요 상권 한가운데 면세점을 세워 관광객들을 흡인한다는 방침이다. 올 초 인천공항 면세점 운영권을 확보한 하나투어는 서울 인사동의 본사 건물을 후보지로 결정했다. 바로 앞에는 자(子)회사가 운영하는 센터마크호텔이 있다. 정기윤 팀장은 "여행 사업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방한 고객과 가장 근접해 있다는 강점을 최대한 활용하겠다"고 말했다. 하나투어는 토니모리·로만손 등 10여 개사와 'SM면세점' 합작법인을 구성했다.

한국패션협회 중원면세점은 한 해 650만명이 찾는 동대문 패션·쇼핑 중심지인 '롯데피트인'을 후보지로 확정했다. 저층부와 고층부를 각각 나눠 쓰는 방식이다. 패션협회는 패션 브랜드 EXR 등 회원사 9곳과 함께 26일 특수목적법인(SPC) 설립을 마쳤다. 중원면세점은 롯데면세점과 손잡고 '복합 면세타운'을 세워 주류·담배·잡화 품목을 맡기로 했다. 부산과 인천 등에서 카지노를 운영하는 파라다이스그룹은 "중구 SK명동빌딩의 8개 층에 면세점을 짓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중소기업의 화장품과 의류 브랜드로 명동 고객을 유치하겠다"고 밝혔다.

"두자릿수 성장세" vs "리스크도 높아"

서울 시내 중견·중소기업 면세점 경쟁은 과열 양상에 가깝다. 같은 시기에 사업자 선정이 이뤄지는 제주도 신규 중견·중소기업 면세점 입찰에 제주도 산하기관인 제주관광공사와 중소 면세점인 엔타스 단 두 곳만 참여 의사를 밝힌 것과 대비되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그 원인으로 서울 시내 면세점의 높은 매출 성장세를 꼽는다. 중견 규모인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의 지난해 매출(2928억원)은 전년보다 50% 정도 늘었다. 서울 시내 대기업 면세점들의 평균 매출 성장률도 20%를 넘는 수준이다.

중국인 관광객이 서울에 몰리는 것도 한 요인이다. 관광업계에서는 지난해 방한한 중국인 관광객 612만명 중 60% 이상이 서울을 찾은 것으로 추산한다. 김근종 현대증권 연구원은 "면세점 매출액의 60~70%를 차지하는 중국인 관광객이 계속 늘고 있다는 점이 업체들에 매력적으로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낙관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만만찮다. 면세점 사업은 대규모 투자와 브랜드 협상력, 운영 노하우를 갖춰야 성공할 수 있으며 백화점과 달리 상품을 직접 구입해 판매하는 방식이어서 재고(在庫) 부담도 상당하다.

서용구 숙명여대 교수는 "리스크 부담을 줄이고 유통 노하우를 습득하기 위해서는 중소기업이 51% 이상의 지분을 보유하되 대기업의 도움을 받는 '상생 모델'도 검토해볼 만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