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8월 1일로 출범 20주년을 맞는 홈쇼핑업계가 혹독한 '성인식'을 치르고 있다. 1995년 하이쇼핑(현 GS샵)·HSTV(현 CJ오쇼핑)가 처음 방송을 내보낸 후 20년 만에 6개 업체의 연간 총거래액이 14조원에 이를 정도로 성장했지만, 생일을 앞둔 업계 분위기는 뒤숭숭하다. 급성장하는 온라인·모바일 쇼핑에 대응하기에 힘이 부치는 상황에서 '가짜 백수오 파문'으로 큰 위기를 맞았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앞으로가 더 문제"라며 우려하고 있다.

'백수오 전액환불時' 업계 초토화

업계 1위인 GS샵의 올 1분기 영업이익은 작년 1분기 대비 22% 정도 줄어든 295억원에 그쳤다. 2위인 CJ오쇼핑, 3위권인 현대홈쇼핑도 실적이 나빠졌다. 소비 심리 침체가 이어진 데다 모바일 쇼핑 등에 소비자를 뺏긴 결과다. 홈쇼핑업계는 올 3월 중소 납품업체들에 이른바 '갑(甲)질'을 했다는 이유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총 144억원에 달하는 과징금 처분도 받았다.

최근 소비자 단체를 중심으로 '백수오' 제품에 대한 전액 환불 요구가 커지면서 업계는 공황 상태에 빠져들고 있다. 내츄럴엔도텍이 개발한 '백수오'는 홈쇼핑에서 집중 판매되며 히트 상품에 오른 제품이기 때문이다. 업체들이 밝힌 백수오 누적 판매액은 대부분 수백억원대에 이른다〈표 참조〉. 백수오를 주력으로 판매한 '홈앤쇼핑'의 경우 판매액이 지난해 영업이익(919억원)을 웃도는 것으로 알려졌다. 홈쇼핑업계 관계자는 "영세 납품업체로부터 돈을 되돌려받을 가능성도 거의 없어 참 난감하다"고 말했다.

'가짜 백수오' 파문이 불거진 지난달 하순부터 홈쇼핑 매출이 급감하는 것도 부담이다. 홈쇼핑에서 판매되는 건강기능식품 전체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서 관련 매출은 한 달 새 20% 넘게 줄었다. 어버이날과 스승의 날이 이어지는 5월은 건강기능식품 '대목'이지만, 이달 들어선 오히려 방송시간이 크게 줄었다.

홈쇼핑에 상품 공급하는 중소기업도 '울상'

중소 납품업체도 위기 상황은 마찬가지다. 그동안 국내 중소기업들은 홈쇼핑을 발판으로 성장한 경우가 많았다. 1990년대 후반의 녹즙기와 도깨비방망이를 시작으로 밀폐용기(2003년), 스팀청소기(2005년), 양면팬(2006~12년), 비비크림(2007~09년), 원액기·중탕기(2012~14년) 등이 홈쇼핑을 통해 대박을 냈다.

특히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相生) 분위기가 퍼지면서 홈쇼핑업계도 중소기업 신제품 발굴에 더 적극적으로 나섰다.

하지만 최근 1~2년 사이 최대 히트작 중 하나로 꼽히던 백수오에서 대형 사고가 터지면서 이 같은 분위기가 크게 위축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홈쇼핑업계 관계자는 "식약처 인증도 받고 초기에 공공기관인 중소기업유통센터가 유통을 대행한 백수오 제품에서 문제가 일어난 만큼 앞으로 중소기업 제품의 개발과 판매에 급제동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서용구 숙명여대 교수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소비자·전문가·업계가 한데 모여 제품 인증과 사후 관리 등을 전담하는 조직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백수오(白首烏)

박주가릿과의 토종 뿌리 식물. 자양·강장 등 효능이 있어 한약재로 쓰인다. 내츄럴엔도텍이 상업화에 성공해 인기를 끌었지만, 완제품에 이엽우피소(異葉牛皮消)를 섞었다는 조사 결과가 나오면서 환불 논란이 일었다. 백수오와 뿌리 모양이 유사한 이엽우피소는 안전성이 확인되지 않아 식품 원료로 사용이 금지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