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그널엔터테인먼트는 올 초 연예기획사인 더좋은이엔티와 에스박스미디어 등을 잇따라 인수하며 종합 엔터사로 탈바꿈했다. 사진은 더좋은이엔티 소속 배우인 송승헌과 에스박스미디어 소속의 배우 김현주

막막했다. 국내 유·무선통신 시장의 성장성을 밝게 보고 야심차게 통신솔루션업체를 거액에 인수했지만, 업황이 계속 악화되면서 성과가 예상보다 영 나오지 않았다. 인수 뒤 회사는 2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사면초가였다.

결국 생존을 위해 다른 사업영역으로 눈을 돌렸다. 한류 열풍 속에서 연예기획사들이 빠르게 성장하는 게 보였다. 물 밀듯이 밀려오는 중국 관광객들은 한류스타에 열광했고, 화장품을 가득 사들고 돌아갔다. 엔터테인먼트와 화장품, 이것이 살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확신이 선 뒤에는 거침이 없었다. 콘텐츠 제작사부터 연예기획사, 드라마제작사, 그리고 화장품 유통업체까지 닥치는대로 인수했다. 적자에 허덕이는 통신솔루션업체에서 화장품 사업을 겸업하는 종합 엔터테인먼트사로 탈바꿈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6개월이었다. 지난 3월 ‘씨그널정보통신’이란 이름을 버리고 새롭게 태어난 씨그널엔터테인먼트그룹, 그리고 이 회사의 대주주인 코너스톤글로벌인베스트먼트의 이야기다.

최근 엔터테인먼트업계와 코스닥시장에서 씨그널엔터테인먼트는 가장 뜨거운 시선을 모으는 회사 중 하나다. 불과 6개월만에 ‘태풍의 눈’으로 떠오른 씨그널엔터테인먼트. 엔터테인먼트와 화장품은 이 회사의 마지막 생존 열쇠가 될 수 있을까.

◆ 적자 허덕이던 통신업체, 단 6개월만에 엔터·화장품업체로

코너스톤글로벌인베스트먼트는 지난 2013년 2월 삼양옵틱스로부터 씨그널정보통신을 인수한 이후 줄곧 악화되는 실적에 골머리를 앓았다. 씨그널정보통신은 2012년 당기순이익 7억원을 기록했지만, 2013년에는 18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해 적자전환했고 지난해 손실액은 55억원을 넘어섰다.

계속되는 실적 악화 속에서 다양한 신사업을 구상하던 씨그널정보통신은 미디어 시장 진출을 결정하고, 지난해 10월 40억원을 투자해 방송 콘텐츠 제작사인 유니원아이앤엠을 인수했다. 앞서 3월 호텔업 진출을 모색하며 진행했던 강남 파고다호텔(구 라미르호텔) 인수가 좌절된 뒤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이후 씨그널의 M&A 행보는 더욱 빠르게 진행됐다. 4개월 뒤인 올 2월에는 영화배우 송승헌의 소속사인 더좋은이엔티와 탤런트 김현주 등이 소속된 에스박스미디어를 잇따라 인수했고, 가수 중심의 연예기획사인 빅히트엔터테인먼트 인수 작업도 진행 중이다.

연예 매니지먼트 사업에서만 그치지 않았다. 4월에는 드라마 ‘빛나거나 미치거나’를 만든 메이퀸픽쳐스를 사들이며 드라마 제작업계로 발을 뻗었고, 80억원을 들여 화장품 판매업체인 스킨애니버셔리 지분도 인수했다. 또 전직 프로야구 선수인 마해영씨를 영입하며 스포츠 매니지먼트 시장에도 진출했다.

◆ 엔터테인먼트 그룹 안착의 조건은?

씨그널엔터테인먼트의 성공 가능성에 대한 엔터테인먼트 업계 관계자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한류스타와 가수는 물론 실력이 검증된 유명 작곡가까지 거느리고 있어 빠른 시간 내 업계에 안착할 수 있다는 기대도 있지만, 지나치다 싶은 정도의 공격적 M&A 과정에서 오는 후유증 등으로 인해 결국 탈이 날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

① 연예계 경험 적은 경영진들의 DNA 조합이 관건

주요 엔터테인먼트사 관계자들이 씨그널엔터테인먼트에 대해 가장 우려하는 점은 최고 경영진들이 업계에 대한 경험이 거의 없어 다양한 시행착오를 겪을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 국내 주요 엔터사들의 경우 대주주 또는 최고 경영진들이 대부분 업계에서 오랜 경험을 갖춘 인물들이다. 그러나 씨그널의 경우 대표인 장철진씨는 금융감독원 등에서 경력을 쌓은 후 코너스톤글로벌인베스트먼트를 이끄는 금융인 출신이다. 각자대표인 성봉두씨도 창업투자사와 식자재 업체 등에서 일했지만, 엔터테인먼트 업계와는 거리가 멀다.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경영진의 인맥은 최고의 무형자산으로 꼽힌다. 지속적으로 소속 연예인들이 대중에게 얼굴을 알리고, 작품에 출연해 인기를 유지해야 회사가 존속할 수 있기 때문에 PD나 작가, 음반사 관계자 등과 두터운 친분을 쌓아야 하기 때문이다. 상당수 엔터사들의 대표들이 발로 뛰는 매니저 출신이기도 하다.

작곡가 방시혁씨. 빅히트 대표였던 그는 지난 2월 씨그널 등기임원으로 합류했다.

씨그널은 지난 2월 빅히트 인수 과정에서 이 회사의 대표였던 작곡가 방시혁씨와 CJ엔터테인먼트 대표를 지낸 김정아씨를 등기임원으로 영입했다. 가수를 양성하는데 일가견을 갖춘 방시혁씨와 영상미디어 시장의 경험이 있는 김정아씨의 영입으로 구색을 맞추긴 했지만, 주요 성장 축이 돼야 할 드라마 제작사 등에서 임원급 인력을 보강하는 것이 시급하다.

한 엔터테인먼트사 관계자는 “하루 빨리 회사의 규모를 키우려는 금융인 출신 경영진과 엔터 업계 출신 임원들의 DNA 융합이 씨그널이 생존 여부를 결정짓는 열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② 신선함 떨어지는 연기자들…간판 돼야 할 방탄소년단

엔터사들은 대부분 대형 스타 한, 두 명이 전체 회사를 먹여살리는 구조로 돼 있다. 회사의 간판이 수익을 벌어들이는 ‘캐시카우’ 역할을 하면 그 수익으로 신인들을 육성해 다음 세대의 스타를 키워 회사를 성장시키는 셈이다.

일단 씨그널은 여러 회사를 인수하면서 화려한 진용을 짜는 데는 성공했다. 일본과 중국 등에서 한류 스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송승헌과 영화배우 이미연, 김현주 등을 갖췄다. 탤런트 채정안과 장희진, 전세현 등이 소속돼 있다. 빅히트에는 아이돌그룹인 방탄소년단이 있다.

그러나 송승헌을 제외하면 나머지 소속 연기자들은 해외 방송 촬영이나 광고 등의 부가 수입이 큰 해외보다 국내에서 주로 활동하고 있어 수익을 위한 파급력이 다소 떨어진다는 평가가 많다. 송승헌 역시 최근 해외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김수현, 이민호, 이종석 등에 비해 한 세대 이전의 한류 연예인으로 평가하는 업계 관계자들도 있다.

방탄소년단

결국 회사의 성장을 책임져야 할 최대 기대주는 방탄소년단이라는 평가가 중론이다. 방시혁씨의 육성을 통해 2013년 데뷔한 방탄소년단은 지난 3월 일본 골든디스크시상식 신인상을 받는 등 최근 국내는 물론 해외시장에서도 점차 인기가 늘고 있다. 특히 YG의 빅뱅과 같이 주요 멤버들이 작곡에도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가 많아 지금보다 더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

씨그널은 해외 활동을 늘리고, 드라마 출연 등을 겸업시키는 등 방탄소년단을 통한 수익을 극대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일부 업계 관계자들에게서는 막 성장을 시작한 방탄소년단이 지나치게 다양한 수익 활동에 투입되는 것이 오히려 마이너스가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③ ‘묻지마 투자’ 화장품 사업, 득 될까?

엔터테인먼트와 함께 씨그널이 주요 성장동력으로 기대하고 인수한 사업은 화장품이다. 씨그널 측은 엔터테인먼트 사업 부문과의 시너지를 높여 최근 자회사로 편입한 스킨애니버셔리의 올해 매출액을 지난해보다 두 배 이상 증가한 1500억원으로 늘리겠다고 했다.

씨그널엔터테인먼트가 4월 인수한 스킨애니버셔리 체험관 이미지

그러나 금융시장 전문가들 중에서는 엔터 부문과의 연계를 통해 화장품 매출액을 두 배 넘게 키우겠다는 씨그널의 목표에 대해 현실성이 크지 않다는 의견을 가진 사람이 많다. 대표적인 화장품 업체인 아모레퍼시픽을 비롯해 코리아나, 한국화장품, 한국콜마, LG생활건강 등 기존 화장품사들의 중국 시장 내 경쟁이 점차 치열해지고 있다. 게다가 성장 한계에 부딪힌 제약사와 피부과 병원 등은 물론 화장품과 무관한 제조업체들까지 잇따라 뛰어들면서 화장품 사업도 점차 비집고 들어가기 어려운 상황이 되고 있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화장품 업체들이 스타 마케팅이 필요하면 돈을 주고 연예인을 광고에 투입하면 된다”며 “엔터테인먼트 업종과 화장품 사업과의 연계가 과연 기대만큼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 인수 이후가 더 험난한 길…의혹 섞인 시선에서 벗어나려면

엔터테인먼트는 종종 ‘화수분 사업’으로 불리기도 한다. 회사의 간판이 될 스타를 키우기까지 엄청난 비용과 시간이 투입될 뿐만 아니라 성공 가능성도 높지 않기 때문이다.

SM이나 YG 등 성공적으로 안착한 대형 엔터사들조차도 매년 국내와 해외 시장에서 각종 공연과 음원 판매, 광고 촬영 등을 통해 큰 돈을 벌어들이지만, 그만큼 신인 육성과 마케팅 등에 거액의 비용을 쏟아야 해 실제로 남기는 수익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 2년간 계속 적자에 허덕였던 씨그널은 업종 변경과 신사업 진출을 위해 필요한 자금을 주로 사모 전환사채(CB) 발행을 통해 조달했다. 씨그널이 지난해 8월부터 총 15차례에 걸쳐 CB를 발행해 조달한 자금은 400억원이 넘는다. 여기에 앞으로 회사의 성장과 신인 육성을 위해 인수 비용을 넘어서는 규모의 돈을 투입해야 한다.

씨그널엔터테인먼트가 자금 부담에도 불구하고 계속 공격적인 M&A 행보를 걷고 있는데 대해 금융시장과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는 의혹 섞인 눈길도 많다. 올 초부터 엔터 업체를 잇따라 인수해 800원대 불과했던 주가가 약 두 달만에 두 배 이상 뛰자, 주가 띄우기에 대한 의혹이 제기돼 금융당국이 조사에 나서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일부에서는 씨그널의 대주주가 금융투자를 본업으로 하는 코너스톤글로벌인베스트먼트라는 점을 들어, 엔터테인먼트 업체와 화장품 판매사 등을 계속 인수해 최대한 외형을 키운 뒤 한류와 화장품 산업에 관심이 큰 중국 등에 회사를 매각하려는 게 아니냐는 추측도 나온다.

한 코스닥시장 상장 엔터테인먼트사의 고위 관계자는 “CB 발행을 통해 얻은 자금으로 인수만 했던 지금까지의 경영 활동보다 회사의 성장을 모색해야 하는 앞으로의 경영이 더욱 험난할 것”이라며 “신인 육성과 기존스타에 대한 마케팅, 콘텐츠 제작 등을 위해 쏟아야 할 자금 조성과 인력 수혈이 시급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