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삼성동 코엑스 컨퍼런스홀 3층에서 열린 국제하이엔드오디오쇼의 청음실.

바이올린의 고음이 머리를 스치더니, 북소리의 중후한 떨림이 가슴을 지났다. 현을 누르는 바이올리니스트의 손가락 무게감이 느껴졌고, '챙'하고 세차게 진동하는 심벌즈의 모습이 보였다. 10평 남짓한 방 안에 오케스트라가 자리한 것 같았다.

5분여가 흘렀다. 클래식곡의 마지막 음이 흘렀다. 일사불란했던 오케스트라도 모습도 희미해지더니, 이윽고 사라졌다.

지난 13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 컨퍼런스홀 3층에서 열린 국제하이엔드오디오쇼는 '귀를 위한 휴식처'였다. 전시장 안에 마련된 청음실에는 최고의 소리를 찾는 사람들의 욕망이 가득했다.

국내외 130여개 하이엔드(고음질) 음향기기 제조사들이 저마다 기술력을 뽐냈다. '황금귀'들의 세계를 살펴봤다.

◆ 이건희 회장이 사랑한 음향기기 한자리에

오디오는 대표적으로 앰프와 스피커로 구성된다. 앰프는 기능에 따라 두가지로 나뉜다. 프리앰프는 음을 조절하는 기기고, 파워 앰프는 소리를 증폭하는 기능을 가진 기기다. 자동차로 비유하자면, 앰프는 엔진, 스피커는 바퀴, 프리앰프는 스티어링 휠에 해당한다.

하이엔드 음향기기들은 고가(高價)다. 기기와 기기를 연결하는 선이 수백만원을 호가하는가 하면, 스피커 한 대가 자동차 한대값을 능가한다.

영국 바우어스앤윌킨스(B&W)와 매킨토시의 한국 수입사인 로이코(ROYCO)는 전시장 입구에 전시관을 꾸렸다. 과거 언론 인터뷰 기사에 따르면 오디오 마니아인 이건희 삼성전자(005930)회장은 집무실 한 귀퉁이에 영국 B&W의 스피커와 매킨토시의 앰프를 두고 즐겼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서울 삼성동 코엑스 컨퍼런스홀 3층에서 열린 국제하이엔드오디오쇼에 전시된 매킨토시의 앰프.

전시된 B&W의 다이아몬드800 스피커는 쓰는 소재부터 다르다. 고음을 담당하는 상단 출력부는 다이아몬드를 썼다. 고주파수의 진동을 견뎌내며 안정적으로 소리를 전달하기 위해서다.

중음 출력부에는 방탄 소재인 케블라(kevlar), 저음 출력부는 우주공학 소재를 사용했다. 덕분에 소리가 고르게 퍼진다.

바우어스앤윌킨스의 다이아몬트800 스피커.

정민석 로이코 마케팅 팀장은 "좋은 소리를 내는 기기들은 사용자가 어느곳에 서서 들어도 고른 음향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가격은 4300만원이었다.

◆ 소리의 진화 한눈에 담아

전시회는 하이엔드 오디오 시장의 진화된 모습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LP, 진공관 앰프와 같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전환을 이뤘다.

이전까지 음악을 감상하려면 턴테이블에서 LP판을 갈아주어야 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네트워크 플레이어라는 새로운 트렌드가 등장했다.

PC나 대용량 저장장치(NAS)에 고음질 음원을 대량으로 담아놓으면 무선으로 음향기기들과 연결해 재생하는 방식이다. 태블릿PC인 아이패드에서 음원을 골라 재생하는 관람객들이 많았다.

아이패드와 네트워크 플레이어를 연동해 음악을 재생하는 모습.

2000년대 들어 아이팟과 MP3로 대변되는 디지털 음악의 시대가 도래했다. LP와 CD 등 고전 매체들의 필요성이 사라지게 된 계기였다.

그러나 고음질에 대한 수요는 계속 있었다. 음반사들은 방대한 음원 정보를 디지털로 변환해 음원 시장에 내놓았고, 하이엔드 음향기기도 디지털로 변신을 꾀했다. 최근에는 인기 가수나 아이돌 그룹도 고음질 곡을 쏟아내고 있다.

애플의 원격 무선전송 기술인 '에어 플레이'를 활용한 음향기기들도 전시회장에 대거 등장했다. B&W의 무선 스피커 '제플린(Zeppelin)'은 그 중 하나다.

한 사용자가 가진 모바일 기기의 수는 스마트폰 외에도 2~3가지를 넘는게 보통이다. 제플린은 여러 기기를 한꺼번에 연동해놓고 언제 어디서나 간편하게, 고음질을 즐길 수 있도록 한 스피커다.

액세서리들도 이목을 끌었다. 오포(Oppo)는 ‘헤드폰 앰프’를 선보였다. 헤드폰 앰프는 휴대용 앰프 역할을 한다.

오포 관계자는 "보통 고가의 헤드폰을 일반 휴대용 오디오 기기나 스마트폰에 연결하면 소리가 잘 안난다"며 "이 앰프를 스마트폰과 헤드폰에 연결하고 재생하면 앰프가 출력을 높여 헤드폰에서 충분한 소리가 나도록 한다"고 말했다.

관람객이 턴테이블과 LP를 둘러보고 있다.

아날로그의 향수를 되살리는 전시품들도 나왔다. 오디오 관련 잡지, LP를 살 수 있는 부스가 곳곳에 마련됐다.

머리가 희끗한 중년 관람객은 "80년대 용산전자랜드와 세운상가의 쇼윈도가 생각난다"며 "진열창 앞에 우두커니 서서 몸 달아 했던 제품들을 다시 만나니 좋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