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정례회의가 열리는 12일 한국은행 본관. 정례회의가 끝난 오전 10시, 한은은 기준금리를 기존 연 2.00%에서 25bp(1bp=0.01%) 인하한 연 1.75%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대부분 전문가의 예상을 뒤엎은 전격적인 결정이었다.

지난달 한은 금통위는 만장일치로 기준금리를 동결하기로 결정했고, 이주열 한은 총재 역시 “현재 통화정책 기조는 실물경기를 제약하는 수준이 전혀 아니다”라며 ‘매파(hawks·긴축적 통화정책 강조)’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전문가가 이달 기준금리는 동결될 것으로 예상했다. 이 총재가 취임 직후 꾸준히 ‘깜짝 금리 결정’은 없다며 통화정책에 있어 충분한 소통을 강조했고, 통상 금리를 내리기 직전 달에 금통위 내 소수의견이 나왔다는 점에서 이번 결정은 더 파격으로 읽힌다.

블룸버그.

한은이 이처럼 이례적인 금리 인하 결정을 내린 데에는 물가가 매우 낮고 경기회복세가 미약한 상황에 통화당국이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된다. 저성장·저물가로 인한 디플레이션 우려 논란과 세계 각국이 양적 완화와 금리 인하를 단행하면서 불거진 ‘환율 전쟁’ 논란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전날 공개된 2월 금통위 의사록을 보면 이런 논의는 이미 지난달부터 이어졌다. 한 위원은 “저물가가 이어지고 있지만 소비 진작 효과가 가시화되고 있지 않다”며 “디플레이션 위험이 커진 것 같다”고 우려했다. 또 다른 위원은 “소비와 투자가 뚜렷이 개선되지 않는 이상 올해 우리 경제가 당초 전망 경로를 유지할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일본과 유럽이 디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돈을 푸는 양적 완화 정책을 시행하자 유로화와 엔화 가치가 하락하고 이에 따라 우리나라의 대(對) 유럽, 일본 수출이 감소하는 상황도 위험 요인으로 꼽혔다. 한 위원은 “엔화 절하가 우리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더 이상 간과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또 다른 위원은 “최근 주요국 중앙은행이 정책금리 인하 등 완화적 통화정책을 통해 ‘디플레이션 파이터’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지만, 그 결과 자국의 디플레이션 문제를 외국에 전가하는 문제를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한은도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간접적으로 피력했다.

한은 관계자는 “유로화의 경우, 지난해 절하 폭보다 올해 1월 한 달간 절하된 폭이 더 클 정도로 빠르게 유로화 약세가 이어지고 있고, 이 때문에 우리 유럽 수출이 크게 감소하며 피해가 가시화되고 있다”며 “금통위원들이 세계 환율 전쟁에 따른 우리 수출 감소를 심각하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통화정책이 실물 경제에 영향을 미치기까지는 3~6개월 정도의 시차가 존재하는 만큼 선제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인식도 이번 금리 인하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정부와 시장 참여자들이 대부분 3월 금리 인하 시그널(신호)이 나오고 4월 금리 인하가 단행될 것으로 예상하는 상황에서 한은이 주도적으로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을 가능성도 있다.

한은이 1분기인 3월 금리를 인하함에 따라 앞으로 시장 참여자들의 관심은 추가 금리 인하 여부에 모아질 것으로 보인다. 임일섭 우리금융경영연구소 금융연구실장은 “저성장·저물가가 이어지고 있다며 상반기에 금리가 추가로 인하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