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은행 사외이사, KB금융 계열사 사장, 한국금융연구원장 등에 잇따라 서강금융인회(서금회)나 박근혜 캠프 활동 인사들이 낙점되면서 또다시 ‘정치 금융’ 논란이 일고 있다. 은행 사외이사 갈아타기 행태까지 보이는 경우도 있어 도를 넘어섰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은행의 사외이사 후보 4명중 정한기 호서대 교수, 홍일화 여성신문 고문, 천혜숙 청주대 교수 등 3명이 정치권 출신이거나 정치권과 관련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광구 우리은행장, 윤종규 KB금융 회장

정한기 호서대 교수는 이광구 우리은행장과 같은 서금회 출신이다. 서금회는 박근혜 대통령이 나온 서강대 동문 금융인들의 모임이다. 홍기택 산업은행장, 이덕훈 수출입은행장, 정연대 코스콤 사장, 홍성국 대우증권 사장, 이광구 우리은행장, 김병헌 KB손보 사장 등이 서강대 출신이다. 금융권에서는 ‘서금회 파워’가 다시 금융권 인사에 영향력을 미친다고 보고 있다.

정 교수는 유진자산운용 사장 시절이던 2011~2012년 서금회 송년회와 신년회 행사에 참석해 축사를 하는 등 고참 멤버로 활동했다. 또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이던 때는 선거 캠프에서도 일했다.

홍일화 여성신문 고문은 1971년 국회의원 비서관으로 시작해 한나라당 부대변인, 17대 대통령선거대책위 부위원장 등을 맡은 정치인 출신이다. 홍 고문은 오는 6월 산업은행 사외이사 임기가 만료되는 상황에서 우리은행 사외이사로 갈아타기한 ‘정피아’의 적나라한 행태를 보여줬다. 천혜숙 청주대 교수는 남편이 새누리당 소속의 이승훈 청주시장이다.

정한기 교수와 함께 박근혜 캠프에서 일했던 신성환 홍익대 교수는 최근 금융연구원장에 내정됐다. 신 교수는 지난해 경영진 내분으로 홍역을 앓았던 KB금융지주의 사외이사였다. 사외이사에서 물러나자마자 금융연구원장직을 꿰찬 것이다. 당초 금융연구원장직은 남주하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가 유력했으나 서금회 논란이 재연되면서 신 교수에게로 넘어갔다는 설까지 나온다.

KB금융에서도 서금회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지난 5일 KB금융 내분 사태의 핵심 관련자 중 한명으로 지난해말 물러났던 박지우 전 국민은행 수석부행장이 KB금융지주 대표이사후보추천위원회에서 KB캐피탈 사장으로 내정됐다. 박 내정자는 당초 내분 사태로 인해 금융당국으로부터 중징계를 받았었다. 이후 경징계인 주의 처분으로 감경되긴 했지만 당사자 중 한명이 불과 두달만에 복귀한 것은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특히 박 내정자는 서금회 창립 멤버로 2007년 창립 때부터 6년간 회장직을 맡았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당초 KB캐피탈 사장은 다른 사람으로 내정돼 있었으나 막판에 박 내정자로 바뀐 것이라는 설이 제기된다.

정치권에서는 올해초 금융 경력이 전혀 없는 한 정치인을 KB금융지주 사장직에 앉히려고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은 자신이 국민은행장의 역할에 더 집중할 수 있도록 다양한 금융 경력과 정무 감각을 갖춘 인사를 지주사 사장으로 뽑아 계열사 경영을 총괄하도록 하겠다는 방침이었다.

그러나 정치권의 난데없는 낙하산 압박에 곤혹스러워했다는 후문이다. 이 정치인은 18대 국회의원 출신으로 여권의 강력한 실세지만 금융을 전혀 몰라 윤 회장도 난색을 표명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정치권에서는 KB금융 출신인 A씨를 다시 사장 후보로 추천했다. A씨는 국민은행 부행장, 계열사 사장을 역임했지만 내부 일각에서의 평가가 좋지 않았다. 이와 관련 윤 회장은 최근 언론과의 만남에서 "외압에 떠밀려 역량없는 사람을 쓰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정치권의 인사 개입을 보면 막장 금융을 보는 것 같다”며 “우리나라 금융의 경쟁력을 갉아먹는 무분별한 낙하산 인사를 금지할 수 있는 대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