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의 ‘증세 없는 복지’ 기조가 실현 불가능하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복지 구조조정’과 ‘증세’에 대한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증세’를 가장 마지막으로 고려할 수단이라 하고, 야당은 당장 이명박 정부에서 감세했던 법인세부터 원상회복 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조선비즈는 3대 세목인 소득세, 법인세, 부가가치세의 도입 역사와 현황, 각 세목의 증세 찬반 논쟁을 정리했다. 그리고 부동산세, 금융세 등 자산세에 대한 내용도 추가했다. 독자 여러분이 증세를 해야 할지, 한다면 어느 세목에서 어떻게 증세를 해야 할지 판단해 보시길. [편집자 주]

야당 등 정치권을 중심으로 증세(增稅) 필요성이 제기되는 가운데, 경제 전문가들은 대부분 "증세는 최후의 수단으로 이뤄져야 한다"며 "세출·복지 구조조정이 먼저"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조선비즈가 17일 조세 전문가 5명, 경제전문가 5명 등 1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7명이 "지금은 증세 할 때가 아니다"라고 답했다. 이들은 "증세 논의 전에 복지 확대 여부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며 "현 상황에서 섣부른 증세 논의는 조세저항을 불러올 것"이라고 했다.

만약 증세를 한다면, 어떤 세목을 먼저 올려야 할 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소득세, 법인세, 부가가치세, 자산세 중 법인세를 먼저 올려야 한다는 의견은 4명, 부가세의 인상이 먼저라는 의견은 4명이었다. 소득세가 먼저라는 의견은 2명이었다. ‘당장 증세해야 한다’는 의견을 낸 전문가 3명은 법인세를 우선적으로 올려야 한다는 의견을 내 눈길을 끌었다.

◆ 전문가 7명 '증세 신중론'…"진짜 증세 필요할 때 증세 여력 없어져"

'증세 신중론' 의견이 압도적인 것은 증세 논의 전에 증세의 근본 목적인 복지 확대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더 필요하다는 인식에서 비롯됐다. 또 지금 우리 경제가 증세를 할 체력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과 함께 세출·복지 구조조정이 먼저라는 의견도 주요하게 작용했다.

전문가별 증세 찬반 입장

유경준 KDI 재정복지정책 연구부장은 "지금 (경제)상태에서는 증세보다는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는 세출 구조조정이 더 필요하다"며 "증세 이전에 해야 할 게 많다"고 말했다. 유 부장은 "‘증세 없는 복지’는 현재의 복지수준이라면 가능하다"며 "(증세는) 경제상황에 따라 실시해야 한다"고 했다.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공공정책실장도 "우선 복지를 우리 (경제)수준에 맞춰 세출 구조조정을 하고 그 다음에야 증세를 논의해야 한다. 증세는 최후의 수단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박상수 지방세연구원 연구위원은 "증세 논의보다는 과세 기반을 확대하고 비과세 감면을 축소하는 게 먼저"라고 말했다.

지금 우리 경제 상황과 국민 정서를 감안할 때 증세가 무리라는 의견도 있었다. 김학수 조세재정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증세를 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다. 연말정산 파동 등을 봐도 국민들은 세금을 더 내고 싶어 하지 않는다"며 "아직까지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부담으로 자신의 복지를 누리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정서에서 증세는 시기상조"라고 지적했다. 홍기용 인천대 교수도 "증세를 논하기에는 지금 경기가 너무 안 좋다"며 "정치인들은 세율을 올리면 세수가 늘어난다고 생각하지만 지금처럼 경기가 좋지 않을 때는 세율을 올려도 세수는 늘지 않는다"고 했다.

복지가 정말 절실한 시점에 증세를 해야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한상완 현대경제연구원 총괄연구본부장은 " ‘증세 없는 복지’는 쉽지 않은 일로 궁극적으로 복지를 하려면 증세를 할 수밖에 없다"면서도 "지금 증세를 해 복지를 늘려야 하는 시기인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 본부장은 "저출산·고령화 때문에 2050년쯤에는 (복지에 대한) 국민부담률이 40%까지 늘어난다"며 "지금 증세하면 나중에 진짜 증세를 안 할 수 없는 상황에 갔을 때 증세할 여력이 없어진다"고 지적했다.

안종석 조세재정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단기적으로는 (증세보다) 부채를 얻어서 운영하고 경제를 활성화하는 게 (경제 전반에) 더 나을 수도 있다"고 했다.

◆ "증세 없는 복지는 불가능…선별적 복지든 보편적 복지든 복지재원 필요"

증세가 필요하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은 '증세 없는 복지는 불가능하다'는 전제에 기반하고 있었다.

구균철 한국지방세연구원 박사는 "경제 상황이 좋으면 남는 재원을 쓰겠지만 (지금은) ‘마른 수건도 짠다’고 할 정도로 상황이 안 좋다. 이런 상황에서 증세를 안 하면 어디선가 복지를 대폭 줄여야 한다"며 "(정부·여당이 주장하는) ‘선별적 복지로 가자’는 기조도 ‘증세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합의·전제 아래 이뤄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구 박사는 "지금 정부는 복지 예산 중 보육 부분은 지방자치단체에 넘기고 누리과정은 교육청에 넘기고 있다"며 "결국 정부가 ‘증세 없는 복지’ 부담을 지자체와 교육청에 떠넘긴 것이고 결국 이것은 지방세를 올려달라는 말이다. 과연 증세 없는 복지가 가능하냐"고 반문했다.

안창남 강남대 교수도 "‘증세 없는 복지’는 가능하지 않다"고 말했다. 안 교수는 "정부가 비과세 감면 축소 등을 통해 복지재원을 마련한다고 하지만 이미 세수결손액이 14조원이 넘는다"며 "우리 복지는 이미 적자가 많이 나는 상태이기 때문에 복지도 재정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신석하 숙명여대 교수는 "기본적으로 현재 우리나라 복지 수요가 저출산·고령화 같은 구조 변화 때문에 (늘고 있어) 증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복지 수요가 워낙 빨리 늘고 있어 아무리 경제활성화를 통해 세수가 늘어나도 그것만으로는 필요한 재정 수요를 충당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 "법인세 먼저 올려야"…증세 의견 낸 전문가 전원 ‘先법인세 인상’ 꼽아

증세를 한다면, 법인세부터 올려야 한다는 의견을 낸 전문가들은 "우리 법인세의 실효세율이 너무 낮다"며 "공평 과세 차원에서 법인세부터 증세해야 한다"고 밝혔다.

증세 시 세목 우선 순위에 대한 전문가별 입장

유경준 KDI 재정복지정책 연구부장은 "증세를 한다면 순서는 법인세, 소득세, 부가세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유 부장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와 비교하면 우리나라 법인세의 실효세율이 낮은 편"이라면서 "많이 올리면 부담이 되겠지만, 법인세를 낮춰도 기업이 투자를 안하고 사내유보금으로 쌓고 있기 때문에 법인세부터 올려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소득세 같은 경우는 38%로 OECD 평균이지만, 소득구간 지정 등 손 볼 필요는 있다"고 말했다.

구균철 한국지방세연구원 박사는 "한시적으로 법인세를 올려야 한다"며 "소득세는 이미 증세돼 있고, 부가세도 국민 정서상 올리기 힘들 거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안창남 강남대 교수는 "조세 부담을 경제 주체 모두 짊어져야 하는데 지금은 노동자가 집중적으로 지고 있다"며 "그런 의미에서 법인세와 (자영업자의) 소득세, 재산세를 먼저 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안 교수는 "소득 관련 세금을 먼저 올리고, 최후의 수단으로 부가세를 올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신석하 숙명여대 교수는 "법인세 같은 비중이 큰 항목에서 증세를 해야 실질적인 재원 확충이 가능하다"고 했다.

◆ "법인세 올리면 개인에게 부담 전가…부가세 인상이 사회적 비용 가장 낮아"

법인세를 가장 후(後)순위로 인상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은 법인세를 올리게 되면 기업경쟁력이 약해지고 오히려 그 부담이 개인에게 전가된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안종석 조세재정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법인세는 안 올리는 게 좋다"라며 "사람들은 기업에 내는 세금이 오르고 개인이 내는 세금이 낮아지길 바라는 것 같은데, 실제 그렇게 되면 효과는 거꾸로"라고 밝혔다. 안 연구원은 "법인세는 중간 단계의 세금으로 법인세 인상은 경제활동을 위축시킨다"라며 "그것보다는 최종 단계 세금인 부가세나 소득세를 올리는 게 좋다. 이 둘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적다"고 말했다.

박상수 지방세연구원 연구위원도 "경제에 영향을 덜 미치는 세금은 부가세와 재산세"라고 밝혔다. 박 위원은 "법인세 인상은 (소비자가격 인상, 임금 억제 등으로 전가할) 조세 회피 수단이 많고 투자 축소 위험이 있으니까 후순위로 가야 한다. 소득세도 근로의욕 저하와 같은 이유로 (증세) 후순위로 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공공정책실장은 "증세를 한다면 부가세, 소득세, 재산세, 법인세 순서로 가야 한다"며 "법인세는 오히려 낮춰야 한다. 국제 경쟁이 워낙 치열한 상황이라 (법인세 인상은)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많다고 본다"고 했다. 조 본부장은 "부가세가 증세를 한다면 세목 중 사회적 손실 등을 고려한 비용이 가장 낮다"며 "부가세를 먼저 올려야 한다"고 밝혔다.

김학수 조세재정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법인세는 정치적 이유에서 쉽게 올릴 수 있다고 (흔히) 생각하지만 경제에 나쁜 영향을 미치게 된다"며 "보편적 복지를 지향한다면 보편적인 세 부담을 위해 조세 왜곡 현상이 가장 적은 부가세를 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소득세를 우선적으로 인상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한상완 현대경제연구원 총괄연구본부장은 "제조업을 기반으로 하는 나라는 법인세를 높이지 않는다"며 "과세 기반을 넓게 가져가고 누진율을 강화해 고소득 자영업자 등에게 소득세를 더 거두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밝혔다.

◆ "자산세 필요…고소득자에게 세금 더 걷어야"

전문가들은 종합부동산세와 주식양도차익 과세 등 부(富) 자체에 세금을 부과하는 자산소득세 도입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신석하 숙명여대 교수는 "우리나라는 재산 관련 세제가 선진국에 비해 부족한 측면이 있다"면서 "예를 들어 선진국에서 일반화된 자산소득세가 우리나라에는 없다"고 자산세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안창남 강남대 교수는 "대(大)법인과 대자산가들도 세금 부담을 (고루) 부담해야 한다"며 "증세를 한다면 자산소득 관련 세금을 먼저 올려야 한다"고 밝혔다.

안종석 조세재정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자산세는 개인 소득에 대한 최종 세금인데, 이런 세금을 올리는 게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적다"고 자산세에 긍정적 입장을 보였다. 박상수 지방세연구원 연구위원도 "재산 과세에 좀 더 증세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경제성장에 미치는 영향도 최소한"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