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에 창업한 바이오 벤처기업인 오믹시스. 유전자 정보를 활용한 종자 기술 등에 관한 특허만 수십 건 보유했지만, 수년간 투자자를 찾지 못했다. 자금난으로 위기에 처한 오믹시스는 온라인상에서 기업 지분 투자를 중개하는 크라우드펀딩(Crowdfunding) 업체인 오픈트레이드를 찾았다. 1년간 오픈트레이드를 통해 회사 재무 실적과 사업계획을 홍보한 오믹시스는 지난해 27명으로부터 3억5900만원을 투자받아 사업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

크라우드펀딩이란 오프라인의 투자자나 제도권 금융에서 자금을 받기 어려운 개인·기업이 온라인상에서 투자자들로부터 소액 투자를 받는 온라인 플랫폼으로 영국에서 2005년에 처음 나왔다. 국내에서도 크라우드펀딩 바람이 불면서 모집 금액이 2012년 약 50억원에서 지난해 400억원으로 늘었다. 하지만 업체들은 "지금 시스템으로는 성장하기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사업자등록, 투자자 보호 등을 위한 법체계가 마련되지 않아 활성화되기 힘들기 때문이다.

◇수천개 기업이 크라우드펀딩 투자를 희망

국내 크라우드 펀딩업체는 지난 3년간 30여 곳 설립됐다. 사업 방식에 따라 지분투자형(온라인상에서 투자자들이 기업 지분을 투자), 대출형(개인끼리 이자율을 제시하고 대출), 기부·보상형(기업 프로젝트 등에 기부하거나 투자 후 물품으로 보상) 등 3가지로 나뉜다.

제도권 금융의 문턱을 넘지 못해 200만~300만원 수준의 생활비 등을 온라인상에서 개인으로부터 대출받게 해주는 크라우드펀딩 업체인 머니옥션은 회원 수가 10만명, 누적 대출 신청 규모도 2300억원을 넘었다. 벤처기업 등의 프로젝트에 투자자들이 투자하고 기업 제품으로 보상받도록 하는 와디즈도 매달 거래 규모가 2억~3억원에 이른다. 와디즈는 설립 첫해인 2013년 투자 기업 수가 50개에 불과했으나 작년엔 230개로 늘었고 올해엔 1000개로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오픈트레이드의 경우 현재 투자를 희망하는 기업이 3600개가 넘는다.

◇법적 장치 없어 활성화 안 되고, 투자자 보호도 어려워

그러나 크라우드펀딩 업체들을 정식 온라인소액투자중개업자로 인정하는 법체계가 마련돼 있지 않아, 업체들은 우회적으로 사업자등록을 하고 영업하는 실정이다. 오픈트레이드는 통신판매업자로, 머니옥션은 대부업자로 사업자를 등록했다. 정식 크라우드펀딩 업체로 인정받지 못해 기업들과의 제휴나 보험 가입조차 어렵다.

투자자들을 위한 법적 장치가 없다는 점은 언제라도 금융 사고가 터질 수 있는 리스크 요인이다. 머니옥션 강대호 상무는 "사회 취약계층 등을 위한 대안 금융으로 낮은 금리의 상한선을 제도적으로 정해두고 사업할 필요가 있지만, 대부업으로밖에 허용해주지 않아 고금리를 내걸어도 막지 못하고 이로 인해 떼이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현재로는 금융 사고가 터지면 그대로 투자자들이 부실을 떠안아야 한다. 연 20% 이상의 금리로 투자자를 모집하는 머니옥션의 2013년 대출자 상환율은 약 83%에서 지난해 76%로 내려갔고, 연체율도 10%를 웃돈다. 직장인 이모씨는 "머니옥션을 통해 대출자 90명에게 400만원을 빌려줬지만, 40건(150만원)은 연체되고 있어 돈을 떼일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크라우드펀딩 업체에는 1인당 투자 한도, 투자자 소득 증빙, 투자받은 개인이나 기업의 연체나 파산을 막아줄 수 있는 법적 기준이 없어 업체들은 자체적으로 기준을 정하고 사업하고 있다. 고용기 오픈트레이드 대표는 "개인·기업이 파산했을 때 나타날 손실 위험에 대해 법적 규정이 없어 누가 책임져야 하는지 애매하다"고 말했다. 지분투자형 크라우드펀딩의 경우 공모 방식으로 다양한 투자자를 끌어들일 필요가 있지만, 현재는 50인 이하의 사모투자만 가능해 사업 활성화를 가로막는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선진국들은 정부가 나서 크라우드펀딩 육성

우리나라는 지분투자형 크라우드펀딩을 온라인 소액투자중개업자로 인정하고 투자자를 보호하는 법이 지난 2013년 6월에 국회에 올랐지만, 1년 반이 넘도록 통과되지 못하고 있다. 그 사이 미국·영국·이탈리아·일본 등은 크라우드펀딩을 허용하는 법안을 통과시키고 정부가 직접 육성에 나섰다. 미국의 대출형 크라우드펀딩 업체인 렌딩클럽은 지난해 12월 뉴욕증시에 상장해 64억달러의 시가총액 공룡으로 떠올랐다.

국회입법조사처 김정주 박사는 "초기 기업에 대한 투자자가 부족하고, 제도권 금융의 장벽에 막힌 개인들이 많은 우리나라의 경우 법적 장치를 조속히 마련해 크라우드펀딩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크라우드펀딩

‘대중으로부터 자금을 모은다’는 뜻으로, 소셜미디어 등 온라인으로 개인·기업 등을 통해 소액 자금을 십시일반 모집해 투자하는 방식을 말한다. 제도권 금융사나 벤처캐피털로부터 자금을 받기 어려운 개인이나 벤처기업이 주로 이용한다. 목표액과 모금 기간이 정해져 있고, 일정 기간에 목표액을 채우지 못하면 모금이 취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