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비 코스그로브 지음|홍상진 옮김|김앤김북스|307쪽|1만3800원

만삭의 임산부가 가슴에 심한 통증을 느껴 병원 응급실에 왔다. 응급 검사를 해 보니 심장 대동맥 이상이 확인됐다. 환자는 어느 진료과로 먼저 가야 할까?

만약 환자가 찾은 곳이 미국 클리블랜드 클리닉이었다면 그런 고민조차 할 필요가 없다. 이 병원은 2008년 진료과 개념을 완전히 없앴기 때문이다. 이곳은 진료과 대신 27개의 질환별 통합 진료팀을 두고 있다.

앞의 임산부 환자라면 흉부외과, 혈관외과, 심장내과, 산부인과, 영상의학과, 마취통증의학과 등 10여명의 통합 진료팀 의사를 동시에 만나게 된다. 흉부외과와 심장내과 의사가 수술 여부를 판단하고 수술실로 옮긴다. 산부인과 의사가 제왕절개 수술을 실시해 태아를 꺼낸다. 그 다음 흉부외과와 마취통증의학과 의사가 대동맥 수술을 진행한다. 수술이 끝난 뒤에는 모든 의사들이 표준 진료 지침에 맞게 수술이 진행됐는지 평가한다.

1921년 설립된 클리블랜드 클리닉은 미국 4대 병원 중 하나다. 오하이오주에 있는 중심 병원과 8개의 지역 병원, 16개의 가정건강센터로 이뤄져 있다. 하루 환자 수 100만명, 직원 수 4만3000명에 연 매출은 60억달러(약 6조5000억원)가 넘는다.

흉부외과 전문의인 저자는 1975년 이 병원에 합류했다. 1989년 심혈관수술 부문 책임자를 맡은 이래 혁신의 리더십을 발휘했다. 그 결과 이 병원은 1995년 미국 병원평가에서 심혈관 분야 1위를 차지한 이래 20년간 선두를 뺏긴 적이 없다. 저자는 현재 클리블랜드 클리닉 이사회 의장 겸 최고경영자(CEO)를 맡고 있다.

저자는 혁신의 비결로 ‘환자 중심’의 경영 철학을 꼽는다. 클리블랜드 클리닉은 치료가 어려운 환자라도 포기하지 않는다. 통합 진료팀 의사들이 끊임없이 논의해 치료 방법을 찾아준다. 모든 치료 과정은 투명하게 공개한다. 환자가 언제든 자신의 전자의무기록(EMR)에 접근할 수 있다. 선후배 의사간 발생할 수 있는 진료 격차도 줄인다. IBM의 수퍼컴퓨터 ‘왓슨’에 특정 질환을 입력하면 정확한 표준 진료지침을 안내받을 수 있다.

저자가 가장 강조한 것은 ‘환자경험(Patient Experience)’이다. 병원 직원들이 환자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마음 깊이 공감하자는 의미다. 저자는 “치료를 잘하는 병원이 경쟁력을 갖던 시기는 끝났다”며 “환자 중심의 병원이 되기 위해 환자의 정신과 영혼까지 관심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국내에서는 서울아산병원을 비롯해 삼성서울병원, 세브란스병원 등 주요 병원들이 저마다 클리블랜드 클리닉 따라잡기에 나섰다. 이 병원들은 지난해 혁신센터를 설립하고 환자경험 개념을 도입하기도 했다. 박성욱 서울아산병원장은 추천사에서 “변화와 혁신에 대한 강한 신념, 협업을 통한 의료의 질 향상이 지금의 클리블랜드 클리닉을 만들었다”라며 “세계에서 가장 신뢰받는 병원으로 성장하게 된 과정을 감동적으로 기술한 책”이라고 밝혔다.

국내 병원들이 그동안 얼마나 따라잡았는지 이 책을 읽고 나면 확연히 눈에 들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