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거릿 헤퍼넌 지음|김성훈 옮김|알에이치코리아|604쪽|2만원

‘경쟁(競爭)’을 미덕으로 여기는 시대다. 기록과 점수 경쟁이 생명인 스포츠 경기는 말할 것도 없다. 학계와 기업, 예술계 종사자들도 남보다 앞서야 살아남는다. TV에서는 연일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을 내보낸다. 가수, 댄서, 패션모델, 패션디자이너는 물론 순수미술을 하는 예술가까지 ‘최후의 1인’ 자리를 놓고 경쟁한다. 열띤 노력의 결과에 대한 보상과 찬사는 대개 경쟁의 승자에게만 돌아간다.

경쟁은 과연 ‘최고’를 가려내는 최선의 방법인가. 저자는 반기를 든다. 오히려 무자비한 경쟁이 어떻게 개인과 조직을 망가뜨리고 있는지 다양한 사례를 들어가며 웅변한다.

2013년 초 하버드대학교의 얘기다. 100명이 넘는 학생에게 자퇴 권고를 내렸다. 집에 가져가서 풀도록 한 시험에서 똑같은 내용의 답안지가 수두룩했다. 학교는 학점 경쟁이 학생에게 더 많은 동기를 유발하고 성취도를 높일 것으로 기대했지만, 학생들은 경쟁 압박을 견디다 못해 커닝의 유혹에 빠진 것이었다. 저자는 예일대 졸업생 알렉산드라 로빈스의 말을 인용한다. “(지금의) 교육은 아이들이 서로 상대방을 물리치고 교육제도를 이리저리 빠져나갈 전략을 짜는 생존게임이다.” 지나친 경쟁이 학생의 동기와 창의성을 오히려 갉아먹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저자는 비판한다.

경쟁의 부작용은 기업에서도 일어난다. 작가 커트 아이켄월드가 마이크로소프트사 직원을 대상으로 인터뷰한 결과, 사내에서 가장 파괴적인 제도로 ‘스택 랭킹(Stack Ranking)’을 꼽았다. 임직원을 성과에 따라 서열을 매겨 하위권은 강제 해고하는 제도를 말한다. 저자는 “마이크로소프트사가 십 년 동안 진정 혁신적이라고 할 만한 기술을 개발하는 데에 실패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지적한다. 직원 모두를 지속적으로 위협한 나머지, 뛰어난 사람이 되겠다는 야심보다는 안전해지려는 욕망만 불어넣었다는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결국 2013년 이 제도를 폐지했다.

하버드대 총장을 지냈고 한때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OMC) 의장 후보로 유력시됐던 래리 서머스의 경험담도 소개된다. 그가 헤지펀드 D.E.쇼에서 근무하면서 만난 동료들에 대한 얘기다. “회의실에는 똑똑한 사람들로 가득 차 있는데 아무도 얘기를 꺼내는 사람은 없어요. 상세히 설명하는 순간 그 아이디어는 회사 소유가 되니깐, 괜찮은 아이디어가 있을수록 입을 다물죠.” 지나친 경쟁이 오히려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죽이는 사례다.

경쟁의 역효과를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한 저자는 “차라리 경쟁에서 패하라”고 말한다. 사람의 경쟁 본능이란 패하기 전에는 멈출 줄 모르니, 차라리 경쟁에서 지고 대가를 치르는 게 낫다는 것이다.

대안으로는 ‘협력’을 제시한다. 인간의 경쟁심과 욕심을 부인할 순 없지만, 함께 힘을 모아 일하는 것도 인간의 엄연한 본성이라는 설명이다. 저자는 과열 경쟁 대신 협력이 성공한 사례 중 하나로 스티브 잡스를 든다. 그가 홀로 넥스트를 이끌었을 때에는 실패했지만 스티브 워즈니악(애플), 존 라세터(픽사), 조나단 아이브(애플) 같은 똑똑한 조력자를 만났을 때에는 성공을 거뒀다는 얘기다.

저자는 경쟁보다 협력과 상호의존을 통해 더 큰 보상을 얻을 수 있다고 조언한다. “친구와 연인들은 서로에게서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를 발견할 수 있고, 이것이 사회적 유대를 풍부하게 하고 이어주고 또 새로이 만들어 준다. 게임과 스포츠를 재미로 즐기면 공정성과 도덕성, 지구력, 자제력, 공동체 의식을 가르쳐줄 수 있다. 이것들이야말로 누구에게나 평생 열려 있는 더 큰 보상이다.”

너무 쉽고 이상적인 결론 아닌가. 그런 의구심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BBC 프로듀서 출신 저널리스트이자 기업가인 저자가 제시하는 사례가 꽤나 실감나게 다가온다. 과학, 언론, 기업, 교육, 결혼, 스포츠, 종교, 영화, 음악 등 다양한 분야에 걸친 경쟁의 실패와 폐해의 진상이 설득력을 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