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담합으로 인한 소비자 피해를 방치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공정위는 담합 과징금을 매길 때 기업의 부당이득 규모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매출액에 비례해 산정한다. 이 때문에 소비자들은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걸기 위해 스스로 기업의 부당이득 규모를 알아내야 하지만, 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본지 8월 21일자 담합 대해부] 손해는 있고 배상은 없다…"소비자가 대기업 상대 손해배상 받기 어렵다"> 참고)

담합에 가담한 대기업들이 과징금 감면, 자진신고 감면제도(리니언시), 행정소송 등을 통해 손쉽게 권리 행사에 나서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공정위는 소비자 피해액 산정을 위한 인력을 한 명도 보유하지 않고 있고, ‘손해액 인정제’ 등 소비자보호를 위해 시행되고 있는 제도 현황 조차 파악하지 않고 있다.

◆ 담합 피해규모 정확히 모른 채…’깜깜이’ 과징금 부과

17일 조선비즈는 한명숙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에 의뢰해 국회 입법조사처로부터 공정위 과징금 산정 과정의 문제점에 대한 법리해석을 받았다.

입법조사처는 “공정위가 관련매출액에 대한 일정 비율을 과징금으로 산정하는 현행 방식으로는 부당이득을 구체적으로 산정하기 어렵다”고 해석했다. 조사처는 “공정거래법상 과징금 산정 시 부당이득 규모를 고려하도록 명시하고 있음에도 공정위 과징금 고시는 부당이득을 적절히 산정할 수 있는 기준이 없다”며 “과징금 부과를 통한 실질적인 부당이득 환수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공정위가 정한 고시가 공정거래법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원래 부당이득 환수는 과징금 부과의 주요 목적 중 하나다. 헌법재판소는 과징금 성격을 행정제재는 물론 부당이득 환수 성격이 담겨 있다고 판시한 바 있다.

한명숙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공정위에 소비자 피해액을 산정하는 인력이 한 명도 없다”며 “실질적인 피해 규모도 산정하지 않고 과징금을 부과하는 것은 소비자 피해를 방치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 의원은 이어 “공정위가 과징금 부과 과정에서 관련 매출액을 산정하고 있고, 담합 기업으로부터 자료를 받아 조사를 할 수 있기 때문에 공정위가 소비자 피해액을 산정해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 “과징금 분리 산정해야 소비자에 유리”

공정위가 소비자 피해를 구제하려는 노력에 게으르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한 의원은 공정위가 공정거래법에 규정돼 있는 ‘손해액 인정제’ 적용 내용은 물론 공정거래법 위반행위로 인한 소비자 피해액 내역, 손해배상 소송 현황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손해액 인정제는 손해액을 입증하는 것이 곤란할 경우, 법원이 변론 전체의 취지와 증거조사 결과에 기초해 상당한 손해액을 인정하는 제도다. 이에 대해 공정위는 “법원이 공정위에 소 제기 사실과 그 결과(판결문)를 통보하지 않아 알 수 없다”고 설명했다.

한 의원은 “공정위가 손을 놓고 있는 동안 소비자들은 피해만 입고 배상은 못받고 있다”며 “공정거래법 주무부처인 공정위가 법원 탓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협력 등을 통해 제도 시행 현황 등을 챙겨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 의원은 이 같은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과징금을 크게 두 부분으로 분리해 산정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행정적 제재 성격을 지니는 부분과 부당이득 환수의 성격을 지니는 부분으로 나누자는 것이다. 부당이득 환수 부분으로 산정된 과징금은 소비자 손해배상 소송에서 소비자 피해 입증에 결정적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

이 제안에 대해 조사처는 “법률상 과징금 산정에서 중요한 고려요소로 명시돼 있는 부당이득을 공정위가 더욱 체계적으로 분리 산정하는 것은 공정거래법 취지상 적절하다”고 해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