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케미칼·에쓰오일 등 파라자일렌(PX)을 만드는 국내 석유화학업체들은 올 들어 초비상 상태에 들어갔다. 중국 기업들은 그동안 국내 업체들이 수출한 PX를 중간재(최종제품이 아닌 반제품이나 부품)로 합성섬유(폴리에스테르) 원료인 PTA(고순도테레프탈산)를 만들어 세계 각국으로 수출하는 의류를 만들었다. 그런데 중국산 PX 공급이 넘쳐나면서 한국산 수입을 줄이기 시작했다. 올 들어 8월 말까지 대(對)중국 PX 수출액은 25억달러에 그쳐,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1%나 줄었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올 들어 7월까지 대중국 중간재 수출은 작년에 비해 0.6% 증가하는 데 그쳤다. 중국 기업들이 자체적으로 중간재를 공급하면서, 우리나라가 중간재나 부품을 수출하고 이를 중국 기업들이 가공해 최종 제품을 만들어 미국·유럽 등지에 수출하는 무역 모델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뜻이다. 한국의 대중국 수출은 지난 5~8월 4개월 연속 전년에 비해 쪼그라들었다.

중국·EU 수출, 동시다발 경고음

겉으로 보기에 지난 9월까지 수출 코리아는 무려 32개월째 무역수지 흑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속으로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우리 수출이 일부 품목, 일부 지역에 너무 편중돼 있다는 구조적인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 수출은 자동차와 자동차 부품의 흑자를 제외하면 전체 무역수지는 2013년 194억달러 적자다. 지역적으로는 중국 무역을 제외하면 지난해 187억달러 적자다.

주력 품목과 지역이 휘청되면 전체 수출이 휘청대는 구조다. 권도하 한국무역협회 중국실장은 "지난해 한국 대중 수출에서 가공무역 비중은 48%에 달해 수출 경쟁국인 일본(35%), 홍콩(36%)을 훨씬 웃돌며 미국(14.5%)보다는 3배 이상 높다"고 말했다.

2010년까지만 해도 148억달러 흑자를 냈던 EU와의 무역은 적자로 돌아서는 추세다. 지난해 73억달러 적자를 본 데 이어, 올 들어 8월까지 55억달러 적자를 봤다. 서진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무역통상실장은 "EU 수출에 조선업이 큰 몫을 담당했는데, 재정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유럽에서 배를 주문하는 곳이 많지 않은 게 영향을 줬다"고 말했다.

주력 산업 경쟁력도 허물어져

주력 산업의 경쟁력이 허물어지는 것은 더욱 근본적인 문제다. 스마트폰, 자동차 등 주력 수출 업종도 중국산 저가 스마트폰 공세와 현대차 파업 등으로 원고의 장벽을 뛰어넘을 원동력을 잃고 있다. 올 1~9월 달러화 기준으로 무선통신기기는 수출이 11.2% 늘었지만, 원화로 환산하면 고작 5% 증가에 그쳤다. 자동차의 경우 수출 3.5% 증가(달러 기준)에서 수출 2% 감소(원화 기준)로 타격을 받았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원화가 강세라서 마치 달러화로 집계한 수출액이 늘어나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를 오판하고 정책을 펴선 안 된다"며 "경쟁력을 강화해 중국 수출을 최종 소비자를 겨냥한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동향분석실장은 "엔저보다도 스마트폰 등 주력 수출품의 경쟁력 약화가 우리나라 수출의 핵심적 문제"라며 "더 늦기 전에 수출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