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제철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 등 9개 채권금융기관이 추진하는 경영정상화 방안을 둘러싸고 형평성 논란이 일고 있다. 채권단이 제시한 경영정상화 방안에 동부제철 대주주인 김준기 회장과 특수관계인이 보유한 주식에 대해 100대 1을, 다른 소액 주주 지분에 대해서는 4대 1로 무상감자를 추진하는 차등 감자안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채권단 방안대로 무상감자가 실시되면 김 회장과 장남 남호 씨 등 특수관계인이 보유한 지분은 36.94%에서 1.2%로 줄어 김 회장은 동부제철의 경영권을 상실한다.

동부제철 인천스틸공장 전경

채권단은 STX조선해양과 금호산업의 경영정상화 과정에서도 ‘100대 1’ 감자가 이뤄졌다며 형평성 논란을 일축한다. 채권단은 김 회장 등 그룹 오너 일가의 경영책임을 묻기 위한 필요한 조치라는 설명이다. 동부그룹 측은 경영 부실의 내용과 규모는 감안하지 않고 천편일률적으로 대주주 지분을 휴지조각으로 만드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고 주장한다. 부실의 규모와 내용에 따라 구조조정 강도가 달라져야 한다는 항변이다.

◆ 왜 동부만 ‘공시지가’ 적용했나?

동부그룹과 산업은행의 기싸움은 동부제철의 자산실사 결과에서 촉발됐다. 채권단이 실시한 자산실사에 따르면, 동부제철은 지난 6월 완전 자본잠식 상태에 빠졌다. 회사 자본금을 다 까먹고 적자만 5000억원에 이른다.

동부 측은 이 같은 자산실사 결과에 대해 “납득할 수 없다”고 맞선다. 동부제철의 순(純)자산 가치에 대해 턱없이 깍아내렸다는 것이다. 채권단은 총 1조2566억원(회사 장부가 기준)으로 평가되는 동부제철 당진, 인천공장의 토지·건물 가치를 6326억원으로 평가했다. 동부제철이 보유한 공장 토지·건물 가치가 반토막났다. 동부 관계자는 “채권단이 자산실사 과정에서 인천, 당진의 냉연공장은 공시지가를 적용하고, 당진 열연공장은 청산가치를 적용했다”며 “자산실사에 공시지가를 반영하는 것은 다른 기업 사례와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동부와 유사하게 워크아웃 과정에서 대주주 지분 100대 1 감자를 실시한 STX조선해양과 금호산업은 자산실사 과정에서 회사 장부에 나온 가격을 그대로 반영하거나, 부동산 가치 감정을 실시해 회사 장부가격보다 더 높게 가치 판정을 해줬다. 산업계에서는 채권단이 동부제철에 대해 대주주 책임론을 부각시키기 위해 실사 평가를 지나치게 가혹하게 적용했다는 시각도 있다.


◆ STX·금호보다 부실 적은데 책임 더 커

채권단의 실사결과가 오히려 100대 1 감자가 부당하다는 주장의 근거로 작용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사 결과에서 나온 숫자들만 보면 이미 대주주 지분 100대 1 감자를 실시한 경험이 있는 STX조선해양과 금호산업에 비해 동부제철의 상태가 심각하지는 않다는 지적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대표적인 지표가 채권단의 제시한 출자전환 규모다. 채권단이 각각 2조원 이상 출자전환을 한 STX조선해양, 금호산업과 달리 동부제철은 채권단 출자전환 규모가 530억원에 머문다. 동부제철이 STX조선해양, 금호산업과 똑같은 처방을 받는 것이 부당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동부그룹은 STX조선해양 등과 달리 분식회계 의혹이 나오지 않았다는 점도 강조했다. 동부제철의 외상매출, 우발부채, 미수금, 재고자산 등으로 인한 손실이 230억원에 머무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같은 항목은 일반적으로 분식회계 가능성과 연결되는 지표들이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2조원대 분식회계가 발견된 STX조선해양은 관련 손실이 2조8000억원에 이르렀고, 금호산업의 관련 손실도 2조2000억원으로 집계됐다.

동부그룹 관계자는 “매출채권과 우발채무로 인한 손실이 230억원이라는 것은 동부제철에서 사실상 분식회계가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분식회계 등으로 총수가 사법처리된 기업과 유동성 위기로 경영이 어려워진 기업을 동일선상에서 놓는 것이 합리적인 판단인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 산은 “구조조정 위해 대주주 배제 불가피”

동부 측의 이런 반발에 대해 산업은행은 “차등감자는 손실분담과 부실경영 책임 측면에서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산업은행은 ‘100대 1 감자’가 지나치게 가혹하다는 논란이 일어나자 보도자료를 내고 “구조조정의 기본 원칙인 이해관계자간 손실분담 측면에서 부실경영의 책임이 있는 대주주에 대해서는 차등감자를 적용해 소액주주의 피해는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저항 가능성을 최소화하고, 속도감있게 경영정상화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기존 대주주의 지분을 대거 소각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번 조치가 김 회장 등 대주주의 재산권 침해라는 주장에 대해서 채권단은 “말도 안된다”는 입장이다. 한 관계자는 “대주주 지분 35% 중 15.8%가 담보제공 중이고, 김준기 회장 지분 4%는 전부 담보로 잡혀있기 때문에 자본잠식 및 차등감자에 따른 경제적 피해는 담보권을 가지고 있는 금융기관이 입게 된다”고 반박했다.

산업계 일각에서는 산업은행의 무조건식 ‘100대 1 감자’가 채권단 자율협약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도 나온다. 동부제철에 적용된 채권단 자율협약은 STX조선해양, 금호산업에 적용된 워크아웃보다는 강제성이 한단계 떨어지는 구조조정 방식이다.

워크아웃은 기업구조조정 촉진법에 따라 채권단이 제시한 조건을 적용 기업이 무조건 응해야 하지만, 자율협약은 채권단과 기업의 자율적인 협약을 맺고 경영 정상화 조치를 밟도록 하고 있다.

이번에 동부제철에 적용되는 정상화 방안도 채권단 전체 의결을 거쳐 동부측과 MOU(상호양해각서) 등을 체결해 추진되도록 정해져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산업은행이 동부그룹 측의 요청이나 의견을 묵살하고 더 가혹한 구조조정을 밀어붙이는 것은 유동성에 문제가 있는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구조조정을 추진하도록 유도하자는 자율협약제도 취지를 흔든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