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형 기자

"세계 경제는 수요부족으로 인한 장기침체 가능성이 높다."-로렌스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전 미국 재무부장관)

"유로존의 유휴 경제력(Economics Slack)이 상당한 수준인 것으로 판단되며 축소 속도가 매우 느릴 것이다."-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경제가 발전할 수록 자본의 이익률은 하락한다. 가격 기능과 자유경쟁이라는 시장원리가 작동하는 경제라면 그렇다. 경제가 발전할 수록 자본이 축적되고 공급자가 늘면서 경쟁이 치열해지기 때문이다. 경제 전체적으로 보면 장기적으로 성장률이 둔화되는 것이다.

자본의 이익률 하락을 막는 것은 대규모 전쟁이나 전염병, 아니면 기술혁신이다. 전쟁이나 전염병은 설비나 노동인력 등 생산능력을 파괴해 공급을 축소시키는 것이며, 기술혁신은 새로운 시장 또는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는 것이다.

글머리로 돌아가 보면, 서머스 교수는 '수요 부족'을 강조했고 드라기 총재는 노동과 설비의 유휴력, 즉 '공급 과잉'을 강조했다. 결국은 똑같은 얘기다. 관점만 다를 뿐이다.

전세계적으로 수요 부족, 공급 과잉 상황이다. 균형으로 가려면(경제가 정상궤도로 가려면) 수요를 늘리든지, 공급을 축소하든지 해야 한다. 공급을 축소하기 위해 대규모 전쟁을 일으킬 수는 없고 강도높은 긴축으로 대응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수요를 확대할 수밖에 없다.

미국 EU(유럽연합) 일본 등이 제로금리를 유지하고, 그걸로도 안 되니 양적완화를 지속하면서 수요가 살아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정책은 시간을 벌어주는 역할 뿐이다. 진짜 방법은 기술혁신이다.

20세기는 혁명의 시대였고 전쟁의 시대였지만, 발명의 시대이기도 했다. 전구, 전화, 비행기가 발명됐고 자동차, 냉장고, 세탁기 등 혁신제품이 대량생산돼 일반화되면서 생산성을 비약적으로 높였다. 컴퓨터, 인터넷도 마찬가지다. 최근 약 200년간의 경제발전이 그동안 인류가 수천년간 달성했던 성과보다 더 컸던 이유는 이런 기술혁신과 그에 따른 생산성 향상, 자본 축적 등 때문이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1990년대 인터넷 혁명 이후에는 스마트폰 등 소소한 혁신적 성과가 있었지만 대규모 신규 수요를 창출할 정도의 기술혁신이 일어나진 않았다. 그것이 2000년대초 IT버블 붕괴 후 장기간 저금리를 유지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이며, 그 부작용이 쌓여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이어진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수요 부족을 겪고 있고, 저성장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은 경천동지할 만한 기술혁신이 없어서다. 기술혁신을 기다리며 제로금리와 양적완화로 시간을 벌고 있지만 기술혁신이 없는 한 지금의 세계적 경기침체와 저성장을 극복할 수 없다. 그래서 지금의 경기침체와 저성장은 예상보다 훨씬 길어질 가능성이 높다.

각 국 상황을 보면 혁신이 이뤄지고 있는 미국이 그나마 낫다. 구글 애플 테슬라 등 세계적으로 혁신을 주도하는 기업들이 있으며, 셰일가스라는 새로운 시장이 열렸기 때문이다. 유럽은 독일을 제외하고는 제조업 경쟁에서 뒤쳐졌고 제약, 화학, 명품, 관광 등 그동안 쌓아놓은 아성으로 버티고 있을 뿐이다. 오죽하면 구글 등 미국 IT기업들이 무주공산인 자국 시장을 휩쓸자 이들을 규제할 생각까지 할까. 유럽이 더 암울한 이유다.

미국 유럽 일본 등이 제로금리를 유지한 기간이 벌써 6년째다. 이미 부작용은 쌓일대로 쌓여 있다. 경제가 이렇게 나쁜데도 미국 주식은 사상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주식시장이 미래가치를 선반영한다고도 하지만 양적완화로 인해 시장에 막대하게 풀려 있는 돈의 힘을 빼고는 그 이유를 설명하기 힘들다. 미국 주택시장은 2006년 이후 약 6년동안 지속됐던 약세장을 마감하고 2012년부터 상승했다. 지난해부터는 주택가격지표가 10%대의 상승률을 기록하고 있다.

또 다른 새로운 위기가 잉태되고 있고, 그 위기가 어떤 형태로 올지 예측하기 힘들다. 지난해에는 미국이 양적완화 규모를 축소할 것이라는 발언 하나로 신흥국들은 위기를 겪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수습되기는 했지만 미국이 기존에 풀린 자금을 회수하는 것도 아닌, 시장에 매달 풀어대는 자금 규모를 줄이겠다는 것만으로도 그 정도 충격이었다. 미국이 기준금리를 인상한다고 하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가늠하기 어렵다. 어쨌든 위기는 또 다시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