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5년 한국의 첫 토종 사모펀드(PEF)로 출발했던 보고펀드가 출범한 지 10년째인 올해 중대한 변화의 시기를 거치고 있다.

설립자였던 변양호 대표가 곧 경영과 운용에서 발을 떼고, ‘보고인베스트먼트’와 ‘보고인베스트먼트그룹’의 한 지붕, 두 가족 체제로 운영되던 회사도 곧 완전히 분리된다. 독립하는 보고인베스트먼트그룹은 곧 회사의 이름을 바꾸며 완전한 독자노선을 걷게 되고, 홀로 남은 보고인베스트먼트는 지금껏 해 오던 바이아웃(기업 지분과 경영권 인수 후 매각) 방식의 투자를 벗어나 대체투자 등 새로운 영역에 도전할 예정이다. 전혀 다른 성격의 펀드가 되는 셈이다.

◆ ‘엘리트 관료’와 ‘외국계 금융맨’ 합작으로 화제

보고펀드는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을 지냈던 변양호 대표와 리먼브라더스 한국 대표 출신의 이재우 대표가 각자 대표로 손잡고 2005년 설립했다. ‘보고인베스트먼트’라는 이름의 국내 첫 토종 PEF였다. ‘보고(VOGO)’는 해상왕 장보고에서 따온 명칭으로 외국 자본이 주름잡던 한국 PEF 시장에서 토종 펀드의 실력을 보여주자는 의미를 담았다.

변 대표는 경기고, 서울대 무역학과를 졸업한 후 1977년 행정고시에 수석으로 합격하며 화려하게 공직에 입문한 인물이다. 이듬해부터 재무부에서 일을 시작한 그는 외환위기였던 1997년부터 재정경제원 국제금융담당관과 국제금융과장 등을 거치며 외채 협상을 진두지휘했고, 2001년부터 2004년까지 3년간 금융정책국장을 맡으면서 부채에 허덕이던 국내 금융사들의 매각을 주도했다.

보고펀드 설립 후인 2006년에는 관료 시절 현대차그룹에서 금품로비를 받고 론스타에 외환은행을 헐값으로 매각했다는 혐의 등을 이유로 구속되기도 했지만, 2010년 최종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관료가 소신껏 일하면 언젠가는 탈이 난다는 이른바 ‘변양호 신드롬’이란 말이 생기기도 했다.

공동 설립자였던 이재우 대표 역시 만만찮은 경력과 배경을 가진 인물이다. 성균관대 경영학과와 조지워싱턴대 경영학석사(MBA) 출신인 그는 씨티은행 부대표와 나라종합금융 상무, 리먼브라더스 한국 대표 등을 거친 금융 전문가다. 주로 외국계 금융사에서 일하며 잔뼈가 굵은 그는1997년 외환 위기 직후 재무부실에 빠진 회사를 매입한 뒤 우량 회사로 되살려 수익을 얻는 업무를 통해 이름을 날렸다. 특히 사모펀드인 H&Q 한국법인의 초대 대표이사 시절 쌍용증권을 인수해 굿모닝증권으로 사명을 바꾼 뒤 가치를 높여 매각한 것은 국내 PEF 업계의 첫번째 바이아웃 투자 성공사례로 꼽힌다.

◆ M&A, 기업성장 전문가 등도 합류하며 6인 대표체제로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것은 외환위기를 겪던 1998년. 당시 외국계 사모펀드였던 에이치앤큐의 대표였던 이재우 대표는 재경부 국제금융과장으로 외국자본 유치에 열을 올리던 변양호 대표에게 강한 인상을 받게 된다. 이들은 이후 리먼브라더스 대표와 재경부 국제금융국장으로 점차 얼굴을 맞대는 일이 잦아지면서 더욱 깊은 관계를 맺었고, 결국 외국 자본과 경쟁하는 토종 PEF를 설립하자는 변 대표의 제안을 이 대표가 받아들이면서 보고펀드는 출범하게 된다.

두 사람 외에 모간스탠리 한국지사의 기업금융 대표를 맡았던 신재하씨도 파트너로 설립에 참여했다.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일했던 법조인 출신의 신 대표는 주로 기업 인수합병(M&A) 업무를 맡았던 인물로 조흥은행 매각 등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변 대표의 주목을 받고 보고펀드 설립에 함께 나섰다.

외환은행 헐값 매각 혐의를 받았던 변 대표가 무죄 판결을 받은 이후인 2010년 말에는 역시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 출신의 박병무씨가 공동대표로 합류한다. 그는 김앤장 입사 전 로커스홀딩스와 미국계 사모펀드인 뉴브리지캐피탈코리아, 하나로텔레콤 대표 등을 역임한 인물이다.

이들 네 명은 각자 경력에 맞춰 업무를 분담하며 펀드를 이끌었다. 변 대표가 사실상 회사 경영과 운용 전체를 총괄한 가운데 이재우 대표는 펀드의 조성과 운용을, 신 대표는 M&A를 맡았다. 박 대표는 과거 기업체 대표로 일하며 회사의 가치를 높여 성공적으로 매각한 경험을 살려 2012년 출범한 ‘보고인베스트먼트그룹’에서 주로 인수한 업체의 가치를 키우는데 주력했다.

올해 5월에는 설립 초창기부터 일했던 이철민, 안성욱 파트너가 공동 대표로 승진해 6인의 대표 체제가 됐다.

◆ 노비타, BC카드 투자 성공했지만…LG실트론 암초 부딪혀

보고펀드의 투자방식은 크게 '바이아웃'과 '블라인드'로 나뉜다. 바이아웃펀드란 직접 경영권을 인수한 뒤 회사를 성장시켜 높은 값에 매각해 수익을 얻는 방식이고, 블라인드펀드는 경영권 인수 없이 특정 회사의 지분에 투자한 뒤 상장이나 매각을 통해 이익을 보는 것이다. 지금껏 2가지 투자방식을 통해 보고펀드가 집행한 투자규모는 약 2조원에 가깝다.

보고펀드는 설립 이후 진행한 몇 건의 프로젝트에서 큰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설립과 동시에 출범시킨 ‘보고1호’ 펀드가 2006년 지분을 인수한 비데업체 노비타는 3년 뒤인 2009년 약 2000억원의 수익을 남기며 매각했다. 2009년 투자했던 BC카드도 2년만에 역시 2000억원 규모의 차익을 얻으며 파는데 성공했다. 역시 보고1호 펀드가 투자한 동양생명 역시 인수 이후 회사 가치가 높아졌다.

2012년 출범시킨 보고인베스트먼트그룹의 ‘보고2호’ 펀드 역시 성과가 괜찮았다. 2012년 인수한 버거킹은 이후 보고펀드가 경영에 참여해 배달 서비스를 시작하고 프랜차이즈 체제로 전환하면서 매장 수도 확대해 이듬해부터 두자릿수의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승승장구할 것만 같았던 보고펀드의 발목을 잡은 것은 지난 2007년 펀드를 통해 조성한 자금과 인수금융으로 조달한 자금을 합쳐 4264억원을 투입한 LG실트론에 대한 투자가 실패하면서부터다. 태양광 사업을 주력으로 하는 LG실트론은 당시 1000억원대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던 성장성이 높은 회사로 보고펀드는 이후 회사의 가치가 높아져 상장을 하게 되면 많은 시세 차익을 거둘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태양광 사업의 경기가 크게 나빠지면서 LG실트론의 경영 사정도 악화됐다. 지난해 1663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한 데 이어 올해도 적자를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실적 악화로 상장을 위한 기업공개(IPO)가 늦어지면서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인수금융을 통해 조달한 차입금 1800억원은 2650억원까지 늘었고, 결국 보고펀드가 LG실트론 인수를 위해 설립했던 SPC(특수목적법인)는 올해 7월 25일 부도가 나고 말았다.

◆ 변 대표 퇴장 이후의 보고펀드, 두 개로 나뉘어 각자 운영

변 대표는 LG실트론 투자 실패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힌 상태다. 그의 거취는 이르면 이달 안에 결정된다. 보고펀드 1호의 조성에 참여했던 투자자(LP)들 중 3분의 2 이상이 변 대표가 핵심인력(키맨)에서 빠지는데 동의할 경우 설립 후 지금껏 보고펀드를 이끌어왔던 변 대표는 9년만에 퇴장하게 된다.

보고펀드는 현재 두 개의 법인으로 나뉘는 절차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문제가 된 LG실트론과 동양생명 투자를 맡는 보고1호 펀드를 운용하는 보고인베스트먼트(VI)와 버거킹을 포함한 바이아웃펀드를 운용하는 보고2호 펀드를 운용하는 보고인베스트먼트그룹(VIG)으로 분리되는 것이다.

보고인베스트먼트그룹은 현재 ‘보고’라는 명칭을 삭제하는 사명 변경이 진행 중이다. 변양호, 이재우 대표는 완전히 손을 뗀 채 나머지 4명의 대표 체제로 운영될 예정이다.

보고펀드의 뿌리인 보고인베스트먼트는 사실상 이재우 단독 대표 체제로 운영된다. 변 대표가 경영과 운용에서 손을 떼겠다는 뜻을 LP가 수락할 경우, 변 대표는 고문(어드바이저)의 직함만 달게 된다. 앞으로 보고펀드에서 변 대표가 지분을 그대로 유지할 지, 정리할 지 등은 아직 정해지지 않은 상태다.

현재 보고인베스트먼트는 인수금융 채권단의 LG실트론의 지분 매각을 돕는 한편 아직 보유 중인 동양생명 지분 13.5%를 매각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만약 동양생명 지분이 주당 1만8000원 넘는 가격에 매각될 경우 보고1호는 최종 플러스 수익률을 기록할 수 있을 전망이다.

분리되는 보고인베스트먼트그룹이 기업 지분과 경영권 인수 등 원래 하던 영역의 사업에 계속 집중할 예정인 점과 달리, 이재우 대표가 이끌어 갈 보고인베스트먼트는 보고1호 펀드의 만기 이후에는 부동산과 사회간접자본(SOC) 등 대체투자 사업에 주력할 계획이다. LG실트론 투자를 통해 큰 홍역을 치른 이후 기대이익은 다소 줄더라도 보다 안정적인 수익을 낼 수 있는 중위험, 중수익 구조로 펀드를 운용하겠다는 것이다.

최근 한국투자신탁운용과 한화자산운용 등이 내놓은 MLP 사모펀드(북미 자원개발 인프라와 관련된 합자회사 주식에 투자하는 펀드)가 셰일가스 개발 붐을 타고 높은 수익률을 거두는 등 대체투자 분야의 전망도 밝은 편이다.

이 대표는 “사모펀드로 들어오는 자금은 연기금 등 기관의 비중이 높기 때문에 안정적인 수익 창출을 목표로 하는 대체투자나 다른 PEF가 경영 상황을 개선시킨 회사 지분에 투자하는 세컨더리펀드 등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며 “이 분야에 대한 전문인력의 영입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